20년 전 포대기에 싸여 이역만리 미국에 왔던 그 때 그 작은 아기, 이제는 훌쩍 커버린 키만큼이나 성숙한 마음으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방문하는 아이들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활발한 성격에 시원시원한 웃음,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 톰(20)과 함께 아리랑 라이온스 클럽 주최 한인 입양인 ‘코리안 컬추럴 투어’에 참가한 멜린다(약칭: 민디) P. 우살리스(21)양은 “처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기부터 냄새가 달랐어요”라고 말한다. 지난 6월 16일 오후 5시 30분 중서부 지역의 미국 가정에 입양된 13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디딘 민디양은 “뭔가 머스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나는 공항 대기실에 나오자마자 혹시 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매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는지를 살펴봤지요”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총 14명의 참가자 중 한국에 가본 경험이 있는 입양인은 월터 Y.H. 히치혹(17)군뿐이었다.
“집에 있는 한국에 관한 책과 사진엽서를 보면 그런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국에 실제 와서 보기 전까지 내가 상상했던 한국은 농촌에서 까맣게 그을려 탄 아주머니가 아기를 옆구리에 매고 있는 모습, 그런 것이었거든요. 물론 대기실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죠. 다들 말쑥한 옷차림에 친절한 매너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지하철에 벽걸이형 플랫 스크린이 걸려있는 걸 보고는 한국은 시카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욱 현대화된 나라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죠”고 그는 말했다.
남동생 톰(20) 역시 한국 방문이 썩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다. 톰은 민디가 입양된 지 1년 후 민디와 형제가 되었다. 자신이 입양된 해를 잊은 톰에게 민디는 누나인만큼 “넌 85년에 태어나 86년 4월에 우리집에 왔잖아”라고 말해줄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 다녀온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직까지 머릿속에 한국 거리 곳곳, 음식 맛 냄새가 진하게 떠오르는 걸요”라고 톰은 소감을 밝혔다.
혈기왕성한 청소년이다보니 한국의 밤놀이문화가 무척 신기했나보다. “한국은 24시간 내내 할 일이 있잖아요. 찜질방도 그렇고 노래방도 그렇고, 소주 마시는 것도 참 재밌었어요. 전 시카고 살 때도 한국 친구들이랑 많이 어울려 한국 소식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친구들이 멋지다고 했던 말은 사실이었구요”라고 그는 전했다.
열흘 동안 아이들은 서울, 강릉, 경주, 통일대 등 다양한 곳을 여행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얼굴은 같지만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낯선 한국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네이퍼빌에 거주하는 세라 E. 스쳅커(18)양은 “아웃사이더처럼 느끼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단 지하철 타는 것과 언어문제만 빼고요”라고 말하며 세라는 꺄르르 웃어댔다.
“심지어 한국 가는 비행기에서도 스튜어디스 언니가 우릴 보며 한국말을 했어요. ‘우린 한국말 못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내 정체성을 생긴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느낌, 그 사람들과 연결(Connect)되는 느낌이었어요. 자라오면서 정체성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들이 나를 당연히 한국인으로 본다는 것, 그런 경험은 처음 겪어봤어요”라고 민디는 답했다. 이에 세라는 “입양인 간담회 때문에 한국일보에 들어와서도 이곳 직원이 내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탐 역시 “이곳에서 자라면서는 내 자신이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언어가 문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괜찮아졌다”고 전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넘어갔다. 열흘간의 한국 체류동안 배운 한국말은 무엇이 있을까?
“민디가 제일 한국말 잘해요”라고 세라가 선수쳐 답했다. 자신에게는 묻지 말아달라는 것. 그러면서도 세라는 “난 ‘감사합니다’밖에 못말해요. 아! ‘안녕하세요’도 말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박수치며 웃어댔다.
민디는 “제발 웃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후 입을 열었다. “화장실이 어디에요? 깎아주세요. 얼마에요? 너무 비싸요.”
이어 그는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쉬운 것 같았어요. 미국에서 백인 부모님과 함께 살며 밖을 다닐 때는 내가 부모와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한국에서는 내가 좀 특이하게 생겼거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한국 사람들을 다 비슷하게 생겼고 또 좁은 곳에서 모여 살다보니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라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을 나이일 청소년들이다보니 한국에 가서 쇼핑을 한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나보다. 특히 올 여름 이탈리아의 패션 스쿨인 산타 레파라타 인터내셔널 스쿨 오브 아트에 입학할 예정인 세라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세상에 신발을 사러 갔는데 종류가 너무 많은 거예요. 미국서 몰에 가면 다 비슷한 것만 있잖아요. 그렇게 많은 신발이 모두 다른 모양, 사이즈, 스타일로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선택범위가 너무 넓어서 오히려 고를 수가 없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한국에서 특이한 패션을 너무 많이 봤다”고 말하며 웃어댔다. “설악산에 갔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는 스니커를 신은 우리보다 더 빨리 산을 타는 거예요. 그걸 보고 우리가 어찌나 신기했던지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말았죠.”
민디는 할머니, 어머니, 딸 셋이서 똑같은 등산복을 맞춰 입고 산을 오르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얼핏 보면 우습긴 했지만 보기 좋았어요. 가족간에 그렇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이요.”
대화는 다시 정체성 문제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한국으로 떠나기 전 풀고 오고 싶은 질문들을 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했다. 탐은 한국 가정에 들어가 그 속내를 보고 싶었다고 했고, 민디는 고아원에 가서 입양되기 전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세라는 정확히 자신이 찾으려 한 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랐을지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열흘동안의 한국 체험으로 아이들은 어떤 대답을 안고 돌아왔을까? 무엇이 바뀌었고 또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가고 싶은 것일까? 송희정, 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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