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여름의 한국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는 X파일 사건의 전개와 그 보도를 따라가다 보면 궁금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태평양 건너에 있으니 떨어진 거리만큼은 감(感)이 둔하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더 중요한지, 누구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현장에 있는 인사이더의 느낌이 우리에겐 없어서다. 그러나 때로는 아웃사이더의 상식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지난 주말 그 실체를 드러낸 안기부 불법도청 X파일의 내용은 요즘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 ‘제5공화국’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대한민국 최고기업 삼성의 이건희회장과 중앙일보 사주인 홍석현 주미대사, 그리고 97년 대선의 여야 후보 사이에서 오고간 불법정치자금 거래가 고스란히 생생하게 담겨있다. 군사정권 아닌 문민정부의 불법도청이 잡아낸 ‘현장’이다. 우선은 어느 것이 거악(巨惡)이고 어느 것이 소악(小惡)인지 그것부터 알고 싶다.
정치-경제-언론의 유착이 거악이라고 확신하는 참여연대가 위의 세사람을 포함한 20여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그보다는 불법도청 쪽에 비중을 둔다. 어느 언론은 검찰 잘한다고 손뼉치고, 다른 언론들은 물타기로 본질을 흐리지 말라고 질타한다. SBS는 여론조사 결과 76.5%가 도청내용이 담긴 테이프의 완전공개를 원하고 있다고 전한다.
상식과 함께 가는 여론에 밀렸던지 검찰은 ‘도청의 전모가 파악되고 수사하기로 결정되면’ 내용에 대한 전면조사도 하겠다고 일단 물러섰다. 불법자금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위한 로비등 대가성 뇌물로 특가법 적용은 아직 가능하다. 진짜 처벌은 어느 선까지 갈 것인지, 이회장이나 홍대사도 처벌대상이 될 것인지, 아니면 공모씨, 박모씨등 도청관련자들만의 실형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그것도 궁금하다.
사실 한국의 정·경·언 유착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아닌 다음에는 늘 추측과 유언비어의 선을 넘지 못했다. 이번처럼 명백한 물증 확보는 불법 수단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청에 대한 엄중한 단죄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도청팀장의 자술서와 유포 당사자의 체포로 이 부분 수사는 완연 활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또 상당히 궁금해지는 것은 지금은 정보기관의 불법도청이 ‘정말 없어졌는가’이다. 요즘엔 셀폰 도청이라 한결 쉬워졌다는 전직 정보요원들 주장의 진위도 꼭 알고 싶다.
수백개 내지 수천개의 테이프들이 더 있다는 주장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망서려진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자괴감을 누른채 사주보호에 나섰을 중앙일보 기자들의 보도대로 ‘안다칠 언론사 없고’ 돈 안받은 정치인 없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극복하기 힘들었던 그 시대 한국사회의 한계였을까. 속내는 각기 다르지만 진상규명만은 한목소리로 외치는 현 정치권의 명암은 또 어떻게 갈릴 것인가. “공개되지 않은 다른 범죄행위와의 형평문제 발생”을 언급한 노대통령의 우려는 아마 이런 테이프들의 내용을 보고받은 후에 나온 게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납득하기 쉽지않은 발언이다.
시간이 갈수록 알고싶은 것은 꼬리를 문다. 낙마한 홍대사가 중앙일보 발행인으로 돌아갈 것인가는 그리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그의 대사 임명을 전후해 국정원은 X파일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데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2002년 대선때 삼성이 이회창 후보에게 건넨 돈이 3백억원에 달했다고도 하고, 아직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삼성자금이 1백억이 넘는다고도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과거의 X파일만이 아니라 현재의 X파일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한가지만은 궁금하지 않다. 이 같은 사태발생의 근본원인에 대해서다. 그건 확실하게 알 수 있을듯하다. 기본 윤리의 실종이다. 이렇게 단정하고 나면 사태해결에 대한 희망보다는 체념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편안치 않아지지만 그 기류는 삼성과 중앙일보의 ‘사과문’에서도 단적으로 읽혀진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보다는 왜 나만 걸렸느냐는 억울함이 앞서 있고 네 탓이 내 탓을 압도한다.
과오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도층이 건재하는 사회는 건강해 지기 힘들다. 그 지도층을 겉으로 욕하면서 속으로 선망하는 병든 정서가 은밀하게 스며들면서 사회전체를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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