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초상화 16점
렘브란트 특별전
때로 뮤지엄의 전시는 우리들의 관심사,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을 여러 면에서 바꿔놓기도 한다. 게티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램프란트 전시회가 그렇다. 전시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건만 그 열기는 조금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검색 엔진에서도 렘브란트는 인기 있는 검색어다. 예술 복제품 판매 사이트에서도 렘브란트 작품에 대한 문의는 지난 한 달 사이 배 이상이 늘었다. 지난 주말의 전시장 내, 관객들의 발걸음 옮기는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거장의 작품이 오랜 시간을 들여다봐야 할 만큼 훌륭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실제적인 이유는 너무나 많은 관객들이 장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티 뮤지엄 소장품인 렘브란트의 1661년 작, 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초상화.
아내, 하인드리케를 모델로 한 슬퍼하는 성모. 16년을 함께 해온 하인드리케의 돌연한 사망으로 그의 삶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피폐했었다.
부활한 그리스도.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한 예수의 이미지를 잘 담고 있다.
‘사도 바울로 그린 자화상’에서 이탈리아 풍 옷을 걸친 채 베레모를 쓰고 의연히 앉아 있는 렘브란트.
성자들의 인간적 모습 친근감
이번 전시를 위해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의 뮤지엄에 흩어져 있던 렘브란트의 성화들이 비행기를 타고 LA 게티 센터로 모여들었다. 비탄하는 성모, 부활한 그리스도, 책을 읽는 성 프란체스코, 사도 시몬, 사도 바울, 사도 바르톨로메오...
위대한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거룩한 이미지는 400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렘브란트는 삶의 말년에 어느 누구의 의뢰도 받지 않고 성모, 성자, 사도, 전도자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가 당시 왜 성인들의 초상화 그리기에 몰입했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역사상 드러나지 않은 특별한 후원자를 위해 그림을 그렸던 걸까, 아니면 새로운 예술 운동을 시작하려 한 걸까.
당시 그의 삶은 경제적 파산에 더해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아내, 하인드리케의 돌연한 사망으로 인해 말할 수 없을 만큼 피폐했었다. 어쩌면 그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삶의 무게들을 보통 사람 몇 배의 고뇌를 극복한 성인들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이겨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관성도 한정된 틀도 없는 12사도와 성인들의 초상화지만 몇 가지 공통점들이 흐르고 있다. 어두운 톤의 배경 색, 그리고 어딘가에서 비쳐오는 스포트라이트에 투영된 듯한 모델의 이미지, 절제된 색채, 몇 겹이나 되는 두꺼운 물감 덧칠, 거친 붓의 터치...
사실 그가 처음부터 이런 풍의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라파엘로만큼 풍부한 색감에 매끈하게 고운 터치로 화폭을 장식했던 걸 알 수 있다.
그의 후기 초상화에 나타난 그의 거친 붓놀림과 절제된 색채는 당시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점차 인기 작가의 대열에서 비주류로 뒤처지게 된다.
하지만 그가 창조한 인물들의 얼굴 표정과 힘줄 가득한 손은 캔버스 위에 새긴 조각처럼 살아 꿈틀댄다. 그는 전통적인 종교적 상징을 최소화한 대신 흔들리는 내면세계, 영혼의 불확실성과 같은 깊은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의 성자들은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는 완벽한 선의 집합체라기보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갈망하는, 인간적 고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 고뇌와 갈등 가득한 표정의 인물들은 우리 존재의 심연을 노크한다.
17세기 네덜란드와 유럽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초기에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는 종교, 신화, 초상, 풍경, 풍속, 정물 등 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따뜻한 애정과 섬세한 연출력이 엿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후대의 화가들도 교과서로 여길 만큼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정식 아트 스쿨을 다닌 적 없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모사하는 것으로 예술 개론을 마스터했으니까.
그는 자화상 속 스스로의 이미지를 대단한 영웅이 아닌, 더 없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내 더욱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도 바울로 그린 자화상’에서 이탈리아 풍 옷을 걸친 채 베레모를 쓰고 의연히 앉아 있는 렘브란트의 표정에는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화가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도 엿보인다. 생생한 표정 묘사, 대담한 구도, 덤덤한 터치에 의한 정확한 질감 처리... 감정 충만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 존재들이다.
그의 별명은 빛의 화가.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대체 광원도 없는 이 평화로운 불빛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의문을 갖게 된다. 의도적으로 시선을 모으기 위해 꾸민 빛이지만 이 조작은 더없이 어울리고 아름답다. 그가 초상화에 쓴 라이팅 기법은 현대 포트레이 전문 사진작가들도 감탄할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전시 그림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Christ, 1657-1661, Hyde Collection, Glens Falla, New York)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안고 있다. 렘브란트 주변에 있던 유대인 커뮤니티 가운데 한 명을 모델로 그린 이 초상화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모스크바의 푸시킨 뮤지엄에 소장됐다가 1930년대 초기, 도난을 당한다. 뮤지엄에 잠입한 도둑은 그림의 가운데 부분을 동그랗게 잘라내 프라이빗 컬렉터에게 팔아넘겼다. 후에 나머지 부분을 인수받은 컬렉터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정교하게 붙이고 덧칠을 했지만 그 흔적이 감쪽같이 없어질 수는 없는 일.
마음의 문을 열고 전시를 돌아보면 캔버스 앞에서 고뇌하던 한 화가의 상처받은 영혼이 만나진다. 그 앞에서 불살랐던 예술가의 화혼은 40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당신 영혼의 문을 노크할 것이다.
렘브란트 특별전 TIPS
램브란트의 후기 종교 초상화 전시:
16점의 종교적 초상화를 모두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최초의 전시. 워싱턴 National Gallery of Art와 게티 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전시는 오는 8월 28일까지. 게티 센터의 입장료는 무료, 주차비는 차 한 대 당 7달러. 예약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주소: 1200 Getty Center Dr. Los Angeles, CA 90049. 10번 W. 405 N. Getty Dr.에서 내려 우회전하면 입구가 나온다.
전시와 함께 열리는 무료 이벤트
아티스트의 그림 시범: 화가 실바나 바렛이 램브란트 등 17세기 네덜란드 아티스트들의 그림 테크닉 시범을 보인다. 전시 기간 중 목요일과 일요일 오후 1-3시. 장소, Exhibitions Pavilion
큐레이터 갤러리 토크: 7월 12일(화), 8월 9일, 오후 1시30분. Exhibitions Pavilion 입구 층계에서 만난다.
전시 투어: 갤러리 큐레이터와 교사들이 이끄는 1시간짜리 전시 개관. 화-일요일 오후 1시30분. 전시관 입구 층계에서 만난다.
패밀리 페스티벌: 램브란트 시대, 해상 무역의 주도 국가였던 네덜란드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가족 행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음악 밴드인 Spice Islands, 스페인 플라멩꼬, 전통 중국 음악 등 다양한 월드 뮤직 공연이 마련된다. 튤립 가득 피어있는 네덜란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여행 정보도 나누며 초상화를 직접 그려보는 시간도 갖는다. 8월 6일(토) 오전 10시-오후 6시. 뮤지엄 코트 야드.
영화 시리즈: Celluloid Hagiography: Looking at Rembrandt on Film란 주제로 일련의 영화를 상영한다. 장소: 해롤드 윌리엄 강당. 7월 8일(금) 정오부터 시작해 오후 7시까지 계속된다.
강의: 보스턴 대학의 미술사 부교수인 마이클 젤이 램브란트와 그의 후원자들의 관계에 대해 강의한다. 8월 4일(목) 오후 7시.
성인 그리기: 램브란트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을 성자의 모델로 삼았을까. 성당의 태피스트리 시리즈에 성인을 그릴 때 LA의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삼았던 화가 존 나바의 발표는 흥미롭다. 8월 11일(목) 오후 7시.
Point-of-View Talks: 베스트셀러 작가 로저 후젠이 그의 신간, “How Rembrandt Reveals Your Beautiful Imperfect Self”를 소개하며 어떻게 램브란트의 삶과 작품이 우리 삶을 비쳐보는 거울이 될 수 있는가를 발표한다. 8월 5일(금) 오후 4시30분, 6시 두 차례.
행사의 대부분은 Harold M. Williams Auditorium에서 열린다. 예약과 자세한 정보는 (310) 440-7300.
<박지윤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