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봉 엘브루즈를 정복한 재미산악회 대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놓고 쾌거를 자축하고 있다.
유럽의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정복하기 위해 5월25일 장도에 오른 재미한인산악회(회장 배대관)회원들이 5월31일 정오(현지 시간)등정에 성공했다.
이날 악천후와 고소적응 문제 등으로 16명의 대원 가운데 8명만이 정상을 정복했다. 정상을 밟은 대원들은 김중석 단장(67), 배대관 원정대장(54), 브라이언 최 등반대장(54), 장원서(56·행정), 유재일(53·촬영), 최기선(56·의무), 샌드라 백(55·회계), 김동찬(46·섭외)씨 등이다.
원정대는 지난달 26일 저녁 모스크바에 도착, 하루를 쉬고 국내선으로 미네럴 보디를 거쳐 등반의 기점이 되는 마을의 여관에서 1박하고 28일 고소적응차 인근의 체켓봉에서 등반을 마친 후 29일 베이스 캠프로 본격 진출해 31일 마침내 등반에 성공한 후 지난 8일 무사히 LA로 귀환했다.
재미한인산악회가 엘브루즈를 원정대상지로 선택한 이유는 첫째 세계 7대륙의 최고봉 가운데 유럽에서 제일 높은 산이기 때문에 등반가치가 높으며 둘째 해발 5,642m 정도는 우리 산악회의 많은 회원들이 등정을 시도할 수 있고 셋째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들고 일정 또한 10일 이내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재미한인산악회 해외원정위원회에서 선발된 16명의 대원들은 약 5개월간 고소적응을 중심으로 한 체력훈련과 설산등반훈련을 마쳤으며 대원들의 사기와 체력은 최고조에 도달해 있었다. 배대관 원정대장이 기록한 등정기를 정리했다.
대원들이 60도의 설사면을 오르면서 코카서스 산맥의 해돋이를 맞고 있다.
5,000m 지점에서 대원들이 정상 등정의 각오를 다지면서 산을 오르고 있다.
해발 5,100m 지점에서 코카서스 산맥을 배경으로 대원들이 등정하고 있다.
재미한인산악회 등반기
악천후 하산길 스노 켓 타고 1시간 단축
■5월26일(목)
어린 시절 무서운 나라, 공포의 상징으로 기억에 남아있던 나라 러시아의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 국내선을 갈아타기 위해 객실 4,000여개 규모의 모스크바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 시절, 전국 공산당 전당대회를 개최할 때 당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옛날 건물이어서 모든 시설이 낙후되어 있었다.
■5월27일(금)
우리 대원들은 국내선을 이용, 모스크바에서 남동쪽,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민보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자동차로 4시간정도 달려가서 엘브루즈의 등반기점인 쩨레스콜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차편으로 10분정도 더 들어가서 베이스 캠프로 올라가는 리프트 출발역 아자우(Azau)가 나타났다. 아자우 역에서 약 150m 떨어진 호텔에서 대원들은 여장을 풀었다. 이곳의 고도는 해발 2,700미터로 계단을 오르거나 잠을 잘 때 호흡곤란을 약간 느낄 정도이다.
■5월28일(토)
정상등정을 위한 고소적응 훈련으로 해발 3,700미터의 마운틴 체켓봉의 정상을 올랐다. 리프트를 이용, 해발 3,000m이상을 올라가서 산행이 시작됐다. 해발 4,500m의 마운틴 휘트니에서 전지훈련을 마친 우리 대원들은 이곳 체켓봉을 오르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엘브루즈 정상의 아름답고 웅혼한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했다.
약 2시간 정도 산행을 마치고 마을로 내려와서 이곳의 별미 양고기 꼬치구이로 점심식사를 하며 해외원정 산행의 즐거움을 한층 만끽했다.
■5월29일(일) 오전
오전 9시께 엘브루즈 정상을 위한 베이스 캠프로 전 대원이 모든 등산 장비를 갖추고 이동했다. 아자우 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역인 미르역과 가라바쉬역을 거쳐 해발 3,700의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이때 시간이 오후 12시30분. 숙소로 사용되는 곳은 원유 드럼통을 눕혀놓은 형태로 배럴 캠프로도 부른다. 6명까지 잘 수 있으며 전기시설도 있고 베이스 캠프로 부족함이 없는 시설이다.
■5월29일(일) 오후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에 우리 대원들은 정상 등정을 위한 본격적인 훈련으로 약 4,500m까지 설산을 오르는 훈련을 실시했다. 4,200m 지점까지는 모든 대원들이 정상적인 상태로 움직였으나 4,500m 지점에 도달할 시점에서는 2-3명의 대원이 두통과 멀미, 구토의 증세로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베이스 캠프로 돌아온 오후 6시께, 2명의 대원이 고통을 못이겨 드러눕고 말았다. 3-4명의 대원들도 두통과 현기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모두 잘 참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5월30일(월)
5월31일 정상등정에 대비해 1시간정도 산행을 했으며 나머지 시간은 각자 휴식을 취하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정상등정을 위한 회의소집 결과 9명의 대원들이 정상등정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는 날부터 날씨의 변화주기를 세심히 관찰한 결과 내일을 D-Day로 선택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5월31일(화)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의 정상. 왼쪽 봉우리 바로 뒤쪽이 정상이다.
배대관 원정대장이 엘브루즈 saddle(안부)에 도착하기 전 5,000m 지점에서 승리의 V자로 손을 흔들고 있다.
새벽 3시에 모든 대원이 기상, 햇반과 깻잎 등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후 불도저 형태의 스노 켓을 타고 대원 9명이 4,500m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이때가 새벽 4시20분께, 대원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인천 상륙을 앞둔 해병대처럼 비장한 각오로 말없이 등정을 시작했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칠흑같이 어둡고 적막한 밤에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때린다. 한발한발 60도의 설사면을 오르면서 대원들은 말이 없었지만 사기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1시간동안 약 200m를 오르고 나니 동쪽편 저멀리 산너머에 시뻘건 햇살이 보이고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햇볕만 받으며 고통스러운 추위는 점차 사그라지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어느 덧 주위는 환해지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대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한 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두고 두고 잊지 못할 장엄한 장면이었다.
출발 후 5시간이 조금 지난 오전 9시40분께 이스트 피크와 웨스트 피크사이의 saddle(안부)에 도착했다. 고도 약 5,300m지점이다. 이곳에서 웨스트 피크(5,642m)의 정상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원가운데 1명이 추위와 체력의 한계로 이곳 안부에서 하산하고 말았다.
시작할 때처럼 60도 이상의 설사면을 비스듬히 올라가기를 1시간 30분여. 저멀리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통과 멀미를 참고 견디는 대원들의 모습이 한층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딘 결과 정오에 대원 8명이 정상을 밟는 쾌거를 이룩했다. 어깨를 얼싸안고 서로를 축하해주며 즐거은 기념촬영을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영원한 추억거리였다.
지금부터 약 5시간에 걸쳐 하산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반환점에 도착한 것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산시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는 과거의 등반 사례에서 한 두 건이 아니었다.
오후 2시가 될 무렵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일때는 다소 불안했으며 지친 대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하산했다. 천둥과 번개는 정말 무섭고 기쁜 나쁜 경험이었으나 다행히 4,500m지점에서 스노 켓을 타고 내려온 결과 하산 시간이 1시간 정도 단축됐다. 베이스캠프의 도착시간은 오후 6시. 고소적응의 어려움으로 정상등정을 포기한 대원들이 모두 우리를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들 대원의 협조와 희생정신에 힘입어 대원 8명은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를 정복할 수 있었다.
■6월1일(수)
이 날은 날씨관계로 등반이 어려울 경우 예비일로 잡은 날이다.
이미 정상등정을 완료했으므로 모든 등산장비를 정돈해 호텔로 이동했다. 하산 길에 모든 대원들의 얼굴 표정은 큰 일을 해내고 난후의 후련한 모습이었다. 국제전화를 이용해 재미 한인산악회에 등정 성공 소식을 전해주었다. 모두 환호하며 축하인사를 해줬다.
■6월8일(수)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5일동안 관광을 마치고 마침내 귀국길에 올랐다. 몸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비행기안에서 다음 원정 계획을 이야기하며 또한 재미 한인산악회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하면서 LA 공항에 도착했다.
모든 대원들이 큰 일을 마치고 무사고로 돌아온 것이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다.
<정리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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