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LA 필하모닉의 새집 디즈니 콘서트 홀도 좋아한다. 프랭크 게리의 날아갈 듯 디자인된 금속의 외관도 경쾌하고 컬러풀한 의자에 푹신하게 파묻혀 앉으면 코앞에 다가온 듯 가까워진 무대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레퍼터리가 무엇이든 간에 우선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길 건너 LA필의 옛집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시절의 콘서트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그 시절의 연주회 길은 마치 하나의 의식 같았다. 조금은 긴장되고 가슴 설레고 경외로웠다. 옷의 차림새도, 마음의 차림새도 무엇 때문이었을까, 더 포멀했었다.
20여년 전 어둠이 내린 다운타운 언덕 뮤직센터에서 행복했던 몇 번의 저녁, 연주된 곡목들이 말러의 교향곡이었는지 베토벤의 피아노 콘첼토였는지는 솔직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긴 팔을 조용히 우아하게 움직이며 깊고 원숙한 선율로 우리를 숨죽이게 하던 큰 키의 지휘자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그가 지난주 고향 이탈리아에서 91세로 타계했다.
1978년 거장 줄리니가 LA 필하모닉의 지휘자 겸 뮤직디렉터로 부임을 수락했을 때 세계의 음악계는 깜짝 놀랐다. LA와 줄리니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줄리니는 옛 고전의 전통을 아끼는 사색적인 음악가였다. LA는 화려한 무비 스타들로 북적대는 젊은 내일의 도시였다. 이렇다 할 전통이 없어 동부 예술인들이 ‘플래스틱 연꽃’이라고 빈정대는 역사 없는 도시였다. 당시 LA 필하모닉은 마치 펜싱하듯 번뜩이는 젊은 주빈 메타의 지휘아래 화려하게 길들여진 오케스트라였다. 무려 17년간 메타에 의해 갈고 닦여져 국제적 명성뿐 아니라 상업적 효과도 적지 않게 맛본 후였다. 라스칼라 오페라와 시카고심포니의 수석 지휘자, 빈 심포니의 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후 부임한 60대의 줄리니는 자기 선전이라곤 한번도 해본 적 없이 음악의 본질만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철학적 예술가였다. 이미 카라얀, 번스타인과 함께 당대 최고의 거장으로 꼽혔던 노련한 대가였다.
그러나 전혀 걸맞지 않아 보였던 줄리니는 곧 LA를 사로잡았다. 청중들뿐 아니라 까다로운 연주자들의 집단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가슴까지도 사로잡았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소명이고 종교였다. 다른 욕심 없이 음악에 헌신했던 그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리며 깊고 영적인 음악을 이끌어냈다. LA필 못지 않게 그를 사랑했던 시카고심포니는 ‘그의 음악은 아름답고, 그의 헌신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따뜻한 인간성은 우리 모두를 감동케 했다’고 조의를 표한다. 다른 지휘자들은 존경을 받았지만 줄리니는 숭배를 받았으며 다른 지휘자들은 퍼스트 네임으로 불렸지만 줄리니는 ‘마에스트로(거장)’라고 불렸다. 그는 청중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서 기립박수를 받는 흔치 않은 지휘자였다.
줄리니 시절은 한인들이 LA필과 부쩍 가까워진 때였기도 하다. 정명훈이 그와 거의 동시에 LA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줄리니를 자신의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는 당시 20대의 정명훈은 “줄리니에게서 진지하고 무게 있는 음악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기대”라며 눈을 빛냈었다.
줄리니가 84년 떠날 때까지 6년 동안 LA에 남겨준 유산은 ‘깊고 진지하고 원숙한 음악’이었다. 메타가 골격을 세워놓은 LA 음악에 풍부한 시의 정서를 가미했다고 평가받는 줄리니는 단 한번의 연주도 의례적인 것으로 넘겨본 일이 없었다. 언제나 철저했고 완벽을 추구했다. 존재의 바탕은 인간의 선의라고 확신했던 그는 “인간관계가 없는 음악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단언했는데 줄리니의 이런 철학은 그의 사임 이유에서도 잘 드러났다. 아내 마르셀라의 건강 때문이었다. 음악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에게 헌신적인 내조자이며 동반자였던 아내가 뇌일혈로 쓰러진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녀를 돌봐주어야 할 때”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70세의 대가는 미련 없이 지휘봉을 반납했었다.
90년대 말 완전히 은퇴한 후엔 산책과 독서로 소일했을 뿐 ‘내 나이쯤 되면 이젠 조용해지고 싶어서…’ 음악조차 멀리했다는 그를 생각한다. 음악이건 문학이건 자기 선전의 마케팅이 필수인 요즘, 본질에 앞서 튀는 포장이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이 시대가 일견 천박스럽고 피곤해서 일까, 그의 정중한 기품이 그리워진다.
그의 손길 따라 완벽하게 연주되었던 아다지오 악장처럼 시간 저편으로 천천히 조용히 사라져버린 마지막 거장을 추모하며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한 부분도 함께 저물어 버린 듯 잠시 아쉬워진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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