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인의 삶 이야기다. 그는 21세 때 사업에 실패한다. 22세 때는 주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한다. 24세 때 또 사업에 손댔으나 역시 실패. 26세 때는 애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그 다음해에는 신경쇠약에 걸려 한때 자살까지 기도한다. 34세에 연방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2년 후 또 다시 낙선. 45세에는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47세에는 부통령이 되려는 시도를 벌이다 좌절한다. 그러다 52세 때 미국 대통령이 된다.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이야기다. 워싱턴 근무시절 워싱턴 포스트에서 읽었던 칼럼의 한 구절이다.
이 칼럼을 읽을 당시 서울 상황은 IMF가 터진 직후로, 새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이를 수습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절이다. IMF야 외자를 빌려 막더라도, 차제에 정쟁만이라도 우선 극복하는 계기가 되리라 싶어 링컨의 족적을 취재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서울 본사에 송고했던 글 ‘링컨이 고른 장관’의 원문을 새삼 꺼내 읽어본다.
“… 그에게는 정적이 유달리 많았다. 매사에 반 박자 늦고, 평소 다투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 탓이었다. 제일 막강했던 정적은 (민주당이 아니라) 같은 공화당 내 대통령후보 지명전의 선두 주자였던 시워드 뉴욕 주 지사였다. 여야 모두가 그를 가장 유력한 대통령 감으로 여기고 있었다. 1859년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링컨은 대권 후보를 따내자 그 정적을 최고의 각료직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시워드 역시 링컨의 도량에 감복해 마침내는 미 역사상 유례가 드문 명 국무장관이 된다. 보고(寶庫)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거의 공짜로 사들인 인물이 바로 시워드 국무이다”
워싱턴에 사는 문객 김명희씨가 얼마 전 서울에 왔다. 요절 시인 이 상의 난해한 시를 최근 영어 시집으로 출간해서 미 각지의 지성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인물로, 워싱턴에서 30년간 살고 있다. 이번 귀국은 링컨에 관한 전기를 우리말로 출간하기 위해서다. 미 각지의 도서관을 돌며 링컨 전기만 20여 권 넘게 읽었다 한다. 또 링컨의 족적을 현장을 통해 캐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남북 전쟁의 격전지만 50군데 넘게 탐사했다.
화제가 예의 ‘링컨이 고른 장관’에 이르자 그녀는 장관 명단에 한명을 더 추가했다. 링컨의 노예 해방을 대놓고 반박했던 또 하나의 대권주자 체이스 오하이오 주지사의 경우 재무장관에 임명됐다는 것이었다.
재무장관은 그 후의를 입고도 장관 경력을 오히려 차기 대권 도전에 활용, 재선 출마가 다가오자 집권당내 쿠데타를 벌이다 탄로가 났다. 장관이 사의를 표하자 링컨은 오히려 이를 만류했다. 장관도 마침내 개심, 전비를 모아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링컨의 집권당시 각료는 모두 7명에 불과했으나 일단 임명된 뒤 3년 안에 경질된 장관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남북 분단으로 인재가 턱없이 모자랐던 탓이다. 얘기를 듣다 보니 가슴이 저며 온다. 건국 이후는 차치하고 아예 상해 임시정부시절부터 반목과 대립으로 일관했던 우리 정치사 아닌가.
얘기가 자칫 링컨 예찬론만으로 치닫는다 싶어, 나는 슬쩍 친닝 추라는 중국계 미국인 여류가 쓴 `Thick Face, Black Heart` 라는 책 내용을 소개했다.
링컨이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유산은 가난과 무지였다. 그는 스물한 살에 집을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과히 알려지지 않은, 링컨의 비정한 대목이다.
이 대목에 대한 김명희씨의 해석이 또한 압권이다. 아버지에 대한 링컨의 기여는 그가 스물한 살까지 “말처럼 일만 해 준 것”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이들 부자는 서로가 서로의 부채를 청산한 만큼, 남의 눈치 안보고 자기 소신대로 산 링컨이야말로 정말 링컨답다는 해석이었다.
동감한다. 그는 아버지가 넘긴 가난과 무지와 싸워 마침내 항체를 지녔던 것이다. 그리고 이 항체를 흑인들의 가난과 무지를 겨냥한 백신으로 개발, 대량 공급에 나선 것이다. 노예 해방은 바로 이 백신 개발에 다름 아니다.
워싱턴 한인동포 김명희씨의 출판을 손꼽아 기다린다. 누구보다도 먼저 이 나라 불쌍한 청년 실업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책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김승웅
한국 해외동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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