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주제는 김정일과 김일성. 반세기도 넘게 이어지는 ‘김일성-정일 왕조’-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하나같이 그걸 파고들었다. 6월 들어서만 서너 권의 신간이 미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3,000만 이상이 학살됐다. 스탈린을 말한다. 모택동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대약진운동기간에만 3,000만 이상이 기아로 죽었으니까. 그런데 한 수 더 뜨는 인물이 있다. 누구일까.
그 답은, 제스퍼 베커에 따르면, 김일성-정일 부자다. 6.25동란을 일으켜 300만의 민간인을 죽게 했다. 기아로 200여만이 희생됐다. 거기다가 정치적 고문, 숙청, 처형 등으로 최소한 100만을 학살했다. 합치면 적게 잡아 600여만이다.
‘북한의 사이즈’를 감안할 때 분명히 스탈린을 능가하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김일성-정일 왕조’보다 더 사악한 정권은 이 세상에 없다. 북한체제가 저지른 온갖 악행을 그는 ‘깡패 정권’(Rogue Regime)이란 저서를 통해 이런 식으로 밝히고 있다.
상당히 객관적으로 다루었다. 특별한 악감정도 없다. 발전상은 발전상대로 소개했다. 균형이 잡혀 있다고 할까. 브래들리 마틴이 쓴 ‘북한과 김씨 왕조’다.
선입견 배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의 저서는 결국 김일성-정일 의 북한을 아주 냉혹하고 섬뜩한 체제로 묘사했다. 왜. 체제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다보니 보니 이런 그림이 나온 것이다.
그 총평은 ‘악몽의 체제’로 귀결된다. 대별해 두 가지가 악몽의 요소로 지적됐다. 견디기 힘든 경제적 빈곤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수령절대주의의 가혹한 정치적 압제다. 엄청난 수의 기아 사망자를 낸 빈곤이다. 그런데도 정치적 압제에 비하면 오히려 견딜 만 하다는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주체사상은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 3위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이 신정(神政) 체제에 가까운 북한은 스탈린주의, 유교사상, 사교(邪敎)적 요소 등이 혼합된 체제로 소수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누인 양반제도를 방불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이 뚜렷이 나타난다. 북한의 핵에 대한 집착은 미국의 공격과 또 공산동맹국으로부터의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그 하나다. 그리고 체제수호의 강박증세가 또 다른 하나다. 이 강박증세는 모든 정치적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비밀이 해제된 북한과 과거 동구 공산국간의 외교문서를 우드로우 윌슨 센터가 분류해 밝힌 내용의 일부다.
이 문서에 따르면 북한체제에 있어 한국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정전 후에도 김일성은 미국이 공격해올 것으로 보았고, 그 자신도 적화통일 목표를 결코 포기한 적이 없어서다.
과거 냉전시대의 외교문서다. 그러나 핵, 체제수호 등 핵심적 문제에 대한 평양의 멘탈리티를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평가다. 북한의 통치자는 김일성과 김정일, 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무엇을 말하나. 북한체제, 김일성이 세우고 김정일이 계승한 체제의 성격이다. 그 체제를 폴란드의 한 전문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인민 각 개인을 위한 국가가 아니고 인민이 한 통치자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체제다.”
이는 다름 아닌 북한체제에 대한 고발이다. 전쟁이란 코드 워드에, 그리고 수령에 대한 절대충성 요구에 휘몰려 공포와 조울증에 시달리는 인민대중. 그 병든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이는 동시에 한국에 대한 준엄한 논고 같이도 들린다.
‘한국 사회는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상황에 전혀 관심이 없다’- 국제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인식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인권 이야기가 나와도 혈압을 올리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이 북한 인권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외로 꼰다.
“왜 한국인들은 북한의 인권외면에 분노하지 않는가.” 조지 W 부시가 탈북자 강철환씨를 만나 던진 질문이다. 그것도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386’으로 상징되는 한국적 현실에 대한 우방 대통령으로서 안타까움의 표현인가, 아니면 모종의 시사인가.
‘만나지 않으려다 만났다’는 김정일을 만났다. 그 모습이 마치 개선장군 같다. ‘경애하는 위원장’의 미소 띤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가운데 그 만남을 아주 소상히 밝힌다. 핵 위기는 벌써 해결됐다는 듯이.
누가 말했나. 한국의 북한 다루기는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된지 오래다고. 김정일과 악수를 나누는, 그래서 환희에 찬 6.15 5주년 방북 대표의 모습이 어쩐지 작아 보인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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