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소니 크로포드는 당시 남부에서는 보기 드물게 부유한 흑인이었다. 토지 소유주였고 등록유권자였으며 흑인을 위한 학교와 노조도 설립한 커뮤니티 지도자였다. 1916년 어느날 들이닥친 백인들은 무조건 그를 두들겨팬 후 트럭에 매달아 온 마을을 끌고 다녔다. 그리곤 장터 소나무에 매달아 총살형에 처했다. 사격연습을 하듯 2백여발을 쏘아댔다. 그의 ‘죄명’은 목화씨 가격을 속인 백인상인과의 언쟁이 전부였다.
1930년 16살짜리 구두닦이 흑인소년 제임스 캐머런은 두 친구와 함께 백인청년을 죽이고 그의 애인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재판은 커녕 아직 유치장에 있던 세 소년을 끌어내 단죄한 것은 동네 백인청년들이었다. 무자비한 구타로 만신창이가 된채 마을광장 단풍나무에 달려진 세 소년중 두명이 먼저 처형되고 캐머런의 목에 올가미가 죄어지는 순간 누군가가 “저애는 아니야”라고 소리쳤다. 기적처럼 살아난 캐머런은 백인여자가 흑인소년들의 짓이 아니라고 증언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미시시피주 사촌집에 놀러왔던 시카고의 흑인소년 에멧 틸이 백인청년들에게 끌려나간 며칠후 시체로 발견된 것은 1955년 한여름이었다. 백인여자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죄로 처형당한 틸은 그때 겨우 14살이었다.
1882년부터 1968년까지 백인들의 린치로 희생당한 4,700여명의 스토리는 거의가 이렇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흑인이었지만 중국계등 이민자들도 상당수라는 기록이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하면서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지나간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무죄평결 뉴스에 온 미국의 시선이 쏠렸던 지난 월요일 연방상원에선 하나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미 근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었던 백인들의 집단린치를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용서를 구하는 사과결의안이었다. 방청석에는 무법의 암흑기를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인 91세의 캐머런과 함께 2백여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조용히 앉아 착잡한 표정으로 이 뒤늦은 참회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백인들의 집단린치는 미국판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대학살)로 불리울 만큼 잔인하기가 그지없었다. 처형당하기전 눈알과 이가 뽑혀지는가하면 사지가 절단되거나 거세당하는 린치자체도 잔혹했지만 더욱 기막힌 것은 이같은 처형이 사법당국의 묵인하에 마을의 축제처럼 치러졌다는 사실이었다. 처형당일엔 학교도 상가도 문을 닫았고 신문엔 ‘처형행사’를 선전하는 안내광고가 실렸으며 수천수백명의 주민들이 일요일 교회가듯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처형장행 특별열차를 타고 모여들었다. 카니발에 온 듯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던 주민들은 참혹하게 매달린 시체에서 손가락이나 귀를 기념품으로 잘라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끔직한 행위가 위법이 아니었다.
순전히 연방상원 탓이었다. 린치를 연방범죄로 규정해 금지한 법안은 1백여년전부터 수십년동안 2백번이나 의회에 상정되었다. 역대 7명의 대통령이 의회에 입법을 청원했고 하원에선 3번이나 통과되었다. 그런데 상원에선 번번히 무산되었다. 린치는 백인여성을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해 나갈 각 주의 자율권이라고 주장한 남부출신 막강한 상원의원들의 방해를 못막은 것이다.
훨씬 폭넓은 민권법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으니 린치금지법안은 이젠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수천명의 희생을 초래한 이 무책임한 방관은 미 상원역사의 최대 오점의 하나로 남았고 1백여년이나 늦었지만 지난 13일 마침내 연방상원은 사과 결의안 통과로 참회의 고해성사를 한 것이다.
아무런 보상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법적 구속력도 없지만 사과 결의안은 의미가 깊다. 린치당하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정부가 아무것도 안한채 방관했음을 사죄하고 있다. 사회 머조리티의 기세에 눌려 헌법이 보장한 마이너리티의 기본 인권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자백이기도 하다.
세계는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미국이 모든 인간에게 진정한 기회의 땅으로 성문화된 것은 불과 40년밖에 되지않았다. 2백년넘게 자라온 인습속의 차별을 뿌리 뽑자면 40년 세월은 어림없이 짧다. 흑인들이 당한 부당대우에 대한 의회의 첫 사과라는 이번 결의안은 미국식 과거사 청산의 뜻 깊은 한 걸음인 셈이다. 흑인들의 처절한 민권투쟁의 역사를 되새기며 미국사회의 소수민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진 빚의 무게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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