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사회와 한인회장 다시 보자
▶ ’당사자는 어디있나?’
요즘 시카고는 연일9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한인사회도 찌는 듯 무덥고 짜증나게 하고 있다. 선거 후유증 때문이다. 화창한 하늘, 녹음도 좋지만 살을 태우는 열기는 때론 기운을 잃게 만든다.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듯 뭔가 시원하고 극적인 해결책을 바라는 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회장 선거가 한번 치러지면 올드 타이머들, 기관 단체장들, 2세들, 유학생, 가족들까지 동원돼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는 커뮤니티 발전책을 내놓느라 눈코뜰 새가 없다. 주변인물들이 지지인사의 승리를 위해 순수하게 참모, 도우미 역할에만 집중한다면 선의의 경쟁 분위기에서 더 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이 도를 넘어선다면 뻔한 청사진이 그려진다. 상대방에게 비방과 음해, 심지어는 욕설도 서슴지 않고, 몸싸움까지 벌이는 행태가 전개된다면 선거전은 험악해 진다. 과거 누구와 누구의 선거에서 어느 참모가 상대방의 참모의 얼굴을 가격했다느니, 멱살을 잡았다느니 하는 등의 이야기는 매 2년 한인회장이 바뀔 시기가 되면 마치 구전 동화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경선에 대한 뚜렷한 주관도 없으면서 시끄러움으로 무장한 100여명 남짓 주변 인물들은 분열을 피하려는 조용한 다수의 침묵을 외면한 채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다. 선거전 참여의 이유를 물어보면 모두가 다 한인사회를 위해서라고 그럴듯한 답변을 내 놓는다. 그러면서도 커뮤니티의 화합을 위해서 2년 더 기다릴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면 한치의 양보도 못한다고 못박는다. 한인사회가 깨지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더더구나 대답할 사람은 없다. 회장 출마 당사자가 공명선거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여론은 그를 선거 싸움의 중심인물 정도로 밖에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사자야 손가락질 한번 받으면 그만이지만 과열된 선거전으로 인해 커뮤니티가 분열에 이른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처음에 한번 붙었으니까 다음 선거에서 또 대립하고, 다음 선거에서 또 대립하는 질긴 인연은 계속된다. 결국 커뮤니티는 분열과 혼란이 빚은 증오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제27대 한인 회장 선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선거가 김길영, 이성남 두 당사자들의 경쟁이었다기 보다는 김길영 당선자를 지지하는 팀과 이성남 출마예정자를 지지하는 인사들간의 해묵은 갈등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모 기관단체장은 현재 양 후보 뒤에 서있는 인사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만나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 진다는 것은 결국 본인들이 패배하는 것이라는 전쟁심리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길영 회장은 27대 한인회장 선거를 앞두고 재출마할지 안할지에 대해 적지 않게 고민했던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끊임없이 거론되던 재출마설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만 두자니 주위에서 일 벌려 놓고 안한다고 그러고, 계속 하자니 욕심 때문에 그런다고 말한다며 확답을 피했었다. 연간 적어도 15만달러 정도는 써야 하는 재정 문제가 부담이 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지난 2년간 적지 않은 돈을 썼던 김 회장으로서는 향후 2년간 더 그만한 액수를 들여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 회장 주변인사들은 재력 있는 이사장을 물색, 이사장이 5만달러 정도를 지원하고 이사회비를 5백달러씩 걷어들인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적지 않은 주위의 비방과 음해 때문에 가족들이 큰 상처를 입었던 부분도 망설임의 이유가 됐다. 김 회장은 내가 잘못해서 비판을 받는 일은 괜찮지만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 음해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커다란 아픔이 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처럼 김 회장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이성남씨의 갑작스런 출현은 경선을 예측하지 못했던 그를 자극했음은 틀림없다. 여기에 하던 일 마무리는 하고 떠나야지하는 주변인사들의 권유 또한 주요 배경이 됐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김 회장은 ‘경선을 하자’거나 ‘사퇴를 하겠다’는 등의 여부를 떠나 당사자 끼리 한번 만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남씨를 전면에 내세운 박중구 전 한인회장은 박 전 회장은 최근 퍼플호텔에서 열린 공청회 석상에서, “만약 회장 으로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내가 출마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날 이성남 씨는 후원회측이 마련한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식순에는 아예 이씨의 순서는 포함돼 있지도 않았다. 이씨는 이날 공식 순서가 어느 정도 끝난 후 당사자도 몇 말씀하시라는 한 참석자의 요청을 받고 한인회장에 출마한 배경을 설명한 후 앞으로 김 당선자에 대한 공개 제안서대로 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공청회 당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법정 소송이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문제는 이미 내손을 떠났다. 지금은 내 주위에 계신분들의 뜻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었다.
이번 선거전이 전개되면서 선관위의 운영이 미숙했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당시의 상황이나 과정이 왜곡된 부분이 많지만 어쨌든 선관위의 실수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그 안 이 출마예정자측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의를 제기하며 선관위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였었다. 김길영 당선자가 사퇴하지 않거나 선관위를 재구성,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면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선거전이 법정 소송으로 치닿게 될지 아닐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씨가 주변 인물들 없이 본인의 의지만 가지고 선거전에 나왔더라면 더 좋은 평가를 얻었을 텐데’ 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박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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