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건 한국이건 요즘 신문업계의 넘버원 화두는 ‘신문의 위기’다.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신문편집인협회 총회와 지난주 서울서 열린 세계신문협회 총회의 주제도 같았다. 신문의 미래다.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무료로, 무제한으로 실시간 뉴스를 공급해주는 시대에서 종이신문은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활로는 무엇인가, 신문을 읽지않는 젊은 세대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위기설의 배경은 급락하는 구독률이다. 매일 신문을 읽는 미국인은 25년전 6,220만명에서 지난해 5,46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은 더욱 심해 구독률이 96년 72%에서 최근 50%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인들이 신문을 가장 애독했던 것은 1950년 무렵인듯 싶다. 10가구당 12부 꼴로 신문이 팔렸다. 시장점유율 124%였던 황금기였다. 그 1950년 창간된 신문이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던이라는 소도시의 커뮤니티 페이퍼, ‘데일리 레코드’였다. 올해로 창간 55주년을 맞는 데일리 레코드의 발행부수는 1만부. 던의 인구도 1만명. 던의 모든 주민이 매일 읽고 있으며 인근 타도시에서도 구독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신문 전체의 구독률이 53%로 떨어진 같은 기간동안 이 신문은 100% 이상으로 올라선 것이다. 발행부수 감사기관인 ABC가 시장점유율 112%로 미 일간신문중 최고라고 공인해주고 있다.
신문시장 위축의 원인으로 지적된 요소들은 이곳에도 다 존재한다. 흑인등 마이너리티가 인구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공장노동자, 점원, 농부 등으로 생활수준도 중하층에 속하며 이곳의 젊은 세대 역시 인터넷에 빠져 산다. 그런데 왜 여기엔 신문의 위기가 안 온 것일까.
사주 후버 아담스가 창간 때부터 강조한 것은 우리동네 소식이었다. 데일리 레코드에 새로 입사한 기자에겐 필독해야할 메모가 전달된다. 지역신문은 지역주민의 이름과 사진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아담스의 지론이다. 신문지면이 따뜻한 시선으로 공정하고 정확하게 다루어진 그들 자신들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한 부수나 광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매체에서도 읽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안읽겠느냐고 그는 오히려 반문한다.
데일리 레코드의 비결은 한마디로 말해 ‘우리들의 신문’이다.
미국의 일간신문은 약 1천5백개다. 주간, 격주간, 월간까지 합한다면 미국의 ‘뉴스페이퍼’는 9천개에 달한다. 이중 많이 잡아 수십개를 제외하곤 모두 소규모의 커뮤니티 페이퍼다. 한국일보를 비롯한 이민자들의 모국어 신문도 여기에 속한다.
저널리스트라면 마땅히 가져야할 ‘인쇄할 수 있는 모든 사실’의 정당한 보도자세가 커뮤니티 페이퍼라고 다를 리 없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의 신문’으로 자리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쌓기다.
신문의 생명인 신뢰성은 정확하고 공정할 때 얻어진다. 그래서 정확과 공정은 신속보다 훨씬 앞서는 보도의 기본이다. 커뮤니티페이퍼에선 더욱 그렇다. 신문의 기사자체가 바로 주민의 일상생활이다. 인쇄되는 이름 하나하나가 대부분 낯익은 이웃의 얼굴이다. 심증이 뚜렷했던 루머가 사실이 아닐 경우, 프린트된 기사가 당사자에게 끼친 피해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되기 힘들다. 그래서 쓸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신문의 갈등은 전국지보다 더욱 잦고 더욱 심하다. ‘어떤 사람에 대한 기사를 쓴 후 그 기사에 당신 이름을 넣어보고 공정하고 정확하게 느껴지는가를 확인하라’는 견습기자뿐 아니라 30년기자에게도 해당되는 수칙이다.
한국일보 미주본사가 오늘로 창간 36주년을 맞았다. 한글타자기로 찍혀졌던 초라한 도화지 한 장짜리로 출발해 달려온 긴 세월이었다. 커뮤니티의 성장과 함께 신문도 많이 성장했다. 한인사회에도 인터넷을 비롯, 언론 매체가 다양해졌지만 지금 당장 신문의 위기를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힘들었던 긴 세월을 견디어 얻은 오늘은 자축 못지않게 자성의 날이어야 한다. 언론의 신뢰란 독자와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함께하지 않고선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 내일에도 한국일보가 재미한인사회의 ‘우리들의 신문’으로 창간 50주년, 1백주년을 맞을 수 있도록 오늘 최선을 다해 그 터전의 일부를 닦아놓기 위해서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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