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하면 알만한 사람들이므로 굳이 이름표를 붙이지 않고 그저 베이지역 어떤 사람들이라고만 하자. 물론 한인들이다.
어떤 사람 A는 명함이 서너종류라고 한다.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별수없이 좀 정직한 명함을 내밀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슨단체 전직이면서도 현직인 것처럼 유효기간 한참 지난 가짜명함을 천연덕스럽게 내민다고 한다. 베이지역에서는 A의 인물됨이 어지간히 소문난 탓에 그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이곳 사정에 어두운 다른 지역, 특히 한국에서는 휘황찬란한 그의 명함 약발이 보통 아니란다. 단순한 소문이나 물먹이기용 음모가 아니다. 정부주관 큰 행사를 위해 서울을 다녀온 어느 인사가 참다못해 귀띔해준 ‘못말리는 A의 서울나들이’ 목격담이다.
어떤 사람 B는 점잖게 에둘러 이름붙일 가치조차 없이 상습 사기꾼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위험한 사기꾼이란 걸 다들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바보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도 자신이 싫지만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사기밖에 안남은 불쌍한 사람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설령 사기행각이 발각돼도 산 목숨을 어찌 하랴 하는 배짱과 너 말고도 당할 사람 많다는 여유까지 넘치는, 양심과 낯짝에 두겹세겹 철판을 깐 사람같기도 하다. 까마득히 몰라서 혹은 훤히 알면서도 이번에는 달라졌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B의 사탕발림에 깜박 넘어가 물건값 인건비 등을 떼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어떤 사람 C는 ‘티끌 모아 태산형 사기꾼’이다. 구멍가게주인 식당종업원 노약자 등을 상대로 푼돈적립 목돈마련 계를 한다든지 곧 숨넘어갈 듯이 죽는 소리를 해 얼마간 돈을 빌어쓴다든지 했다가 일단 손에 쥐고나면 꿩궈먹은 소식인 철면피다. 피해자들이 달라고 아우성치면 계 피해는 법으로 보호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법으로 해결하자고 되레 약을 올리기도 하고 대개는 영수증 하나 없이 신용거래인지라 돈을 빌어간 사실 자체를 딱 잡아떼기도 한다. 변호사를 사서 해결하자니 액수가 적고 그냥 놔두자니 분통이 터져 ‘돈 주고 병 얻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D는 소위 ‘신규입하’ 한인들을 등쳐먹는데 이골이 난 모양이다. 이민·연수·유학·지상사 근무 등을 위해 갓 미국땅을 밟은 사람들에게 접근해 한동안 온갖 친절을 베풀다 슬그머니 마각을 드러낸다. 미국행 신참자들은 비교적 현금사정이 낙낙한데다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친절을 베풀어준 귀인이 뜻하지 않은-실은 각본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지만-어려움에 처했다는데 나몰라라 할 사람도 드물다는 점에 착안한 ‘위장친절 계획사기’ 수법이다. 뒤늦게 알고 열이 잔뜩 난 피해자가 미국물정 모르고 한국식으로 한두마디 험한 소리(죽이겠다 등)를 하면, 기회는 찬스다 하고 그걸 물고늘어져 살해협박 운운하며 당국에 고소, 이중으로 골탕을 먹이고는 유유히 빚갚기의 사슬을 벗어난다.
D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이 수법으로 모름지기 한인이라면 도저히 그래서는 안될 죄(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하면 이렇게 표현한 까닭을 수긍하겠지만 피해자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남겨둔다)를 저질러놓고 요즘 희희낙락 새 먹이를 찾아 배회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니 입 더러워지고 안하자니 속 뒤집혀지는 낯 두꺼운 인간군상이 어디 A부터 D까지 뿐이랴. 한인사회 무슨단체 감투를 부정부패 면죄부라도 되는 양, 한 일은 쥐뿔도 없으면서도-실은 아무일도 안했으면 차라리 다행스러울 정도로 어물쩍 공금을 빼서 제 생색내는 데 쓰거나 되지도 않을 일로 한인사회에 덤터기 피해를 안겼으면서도, 버젓이 한인사회를 활보하는 E도 있고 F도 있고 G도 있고 H도 있다. 그런 I, 그보다 더한 J, J 뺨치는 K가 모여앉아 00게이트니 xx비리니 한국발 음울뉴스를 놓고 거품을 무는 품새는 희극이다.
매를 맞겠다고 종아리를 걷어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거룩한 한말씀을 하겠다고 마이크 앞에 서서 목청을 가다듬거나 상이니 패니 하는 것에 눈독을 들이고 군침을 삼키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 용기에 경탄을, 그 철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희한한 경탄과 진귀한 경의에 마침표를 찍게 될 날은 언제 올 것인지, 오기는 올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방데를 샅샅이 뒤지고 악취나는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 세상을 밝게 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이 제 먼저 흐물흐물 풀꺾이지 않을까 두려울 따름이다. ‘이상한 A부터 괴상한 Z까지’는 아무리 말려도 끝끝내 기웃거릴 것이므로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그대로 놔두자. 다만 기억하자. 그리고 다짐하자. 한인사회를 보다 밟게,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책임은 이미 밝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사람들, 적어도 아직은 때가 덜묻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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