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이 유독 강조된다. 이런 사회에서 진정한 애국자는 보기 힘들다. 오직 민주주의만 되뇌어진다. 그런 시대는 ‘민주주의 부재’ 시대이기 십상이다.
한 때의 유행어는 이처럼 그 시대상에 대한 반어법적인 표현일 수 있다. 편가르기만 일삼으면서 ‘참여’의 구호만 외쳐대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발견되는 것 같이.
요즘 미국의 최대 유행 검색어는 단연 ‘바이블’이다. 저마다 바이블을 인용한다. 그리고 내리는 결론은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것이다. 다시 불이 붙었다. ‘레드 스테이트 대 블루 스테이트’- 문화전쟁이 재연되면서 불거지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의 사법부는 반종교적이다. 보수세력의 공격이다. 하나님은 결코 파당적이지 않은 분이다. 진보세력의 받아치기다. 주장의 근거를 저마다 바이블에서 찾는다. 성서가 문화전쟁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미국의 10대들이 바이블에 무지하다는 내용이다. 모세를 예수의 열두 제자의 하나로 알고 있다. 노아의 방주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른다. 이런 청소년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카고 트리뷴지가 사설로 다루었다. 10대들이 바이블에 대해 잘 모른다. 이 사실을 상당히 심각히 받아들인 것이다. 영어실력이, 수학실력이 형편없어 우려된다는 게 아니다. 2세들이 말씀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사설을 쓴 것이다. 다분히 ‘미국적인 현상’ 같다.
왜 심각한가. 바이블을 모르고 미국의 문학과 역사를 이해하려 든다. 이건 마치 생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바다를 이해하려 드는 꼴이라는 이유에서다. 문맹 수준의 바이블 지식은 미국적 가치관, 다시 말해 기독교에 바탕을 둔 가치관의 세대간 단절을 가져올 것을 우려한 것이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원칙을 잘못 적용됐다. 그 결과 바이블은 학교에서 ‘터부’가 됐고, 10대들은 바이블에 무지하게 됐다. 사설의 논조다. 이 역시 가치관 전쟁의 연속이다.
정작 우려할 사항은 그게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바이블을 왜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미국인이 많다는 사실이다. 가치관 전쟁이 근원적인 ‘말씀의 문제’로 심화되면서 새삼 제기되는 지적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 성서의 가르침이다. 과연 믿을 수 있나.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성서가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바이블 교육 주창자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탄생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은 열정적인 영적 폭발에서 탄생했다. 그 폭발은 다름 아닌 바이블에 의해 이루어지고 촉진됐다.” 미국 건국에 대한 설명이다.
모든 시작은 바이블에서 비롯됐다. 성서, 영어로 번역된 성서가 영국에서 청교도를 탄생시킨다. 그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와 미국 건국의 초석이 된다. 그리고 성서에 기초한 아메리카 문명을 탄생시킨다.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영국이 의회 민주주의 확립과 함께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를 구가하게 된 근본적 원인도 성서에서 찾는다. 영어 성경이 나오면서 말씀 읽기는 생활화된다. 바이블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된 것이다. 성서는 사람들의 사고는 물론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지배한다.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서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9세기로 이어지기까지 영국의 사회상을 간략히 기술한 것이다. 이 시기, 다시 말해 성서가 일반적 사고에서 정치, 사회 그리고 예술에 이르는 모든 분야를 지배하게 되는 시기에 영국은 세계적 파워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국과 발전, 그리고 수퍼 파워로 부상하기까지의 궤적도 같은 시각으로 쫓는다. 미국 문화는 한 마디로 성서중심의 문화다. 말씀이 전 사회에 스며들면서 미국은 결국 전 세계가 동경하는 ‘빛이 가득 찬 언덕 위의 마을’이 됐다는 것. 그러므로 바이블에 대한 이해 없이 미국의 역사, 문화, 정치, 사회를 이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점의 숨겨진 포인트는 말씀이다. 말씀이 함께 함으로써 미국이, 또 그 전에는 영국이, 수퍼 파워로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킹 제임스판’ 영어 성경은 이런 의미에서 그 어느 책보다도 영향력이 큰 서적이라는 주장이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합친 것보다도.
맞는 말인가. 판단은 역시 자유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이 갑자기 스친다. 바이블의 중요성이 새삼스레 강조된다는 것, 그건 혹시 미국 사회에 내재한 위기에 대한 반어적 표현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부질없는 기우(杞憂)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곧 있으면 기나 긴 여름방학이다. 뭘 할까. 자녀들과 여행을 떠나야겠지. 그도 좋지만 이건 어떨까. 성경 일독을 권하는 거다. 가능하면 부모와 함께 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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