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 아버지역 떠나보내려니 허전
보람있고, 연기하는 내내 행복했다. 이제 떠나보내려니 허전하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며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모았던 KBS 2TV ‘부모님 전상서’(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가 6월 5일 종영을 앞두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눈에 띄었던 인물은 아버지 안 교감 역의 송재호와 어머니 옥화 역의 김해숙.
이 시대 아버지상을 보여줬던 송재호(66)는 이 배역을 연기한게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안 교감은 자식들에게 예의와 우애를 가르치고, 아내에게 잔잔한 사랑을 보이며,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편지로 그리움을 전한다. 송재호는 넉넉한 품으로 자식들을 품어안고, 욕심부리지 않는 안 교감의 삶을 성심껏 연기했다.
어느 시청자 한 분이 게시판에 ‘이 작품은 송재호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썼는데, 맞는 말이다. 연기 생활 46년이 됐는데, 이 나이에도 대표작이 나왔다는 게 연기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고 말했다.
2000년 1월 사랑하는 막내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후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젊은 배우가 중심이 되는 여타 드라마에서 아버지 역이란 대사 한 두마디가 고작. 대사도 대충 생각나는 대로 읊기도 했다.
그랬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는 10회 정도 지날 때까지 죽을 것 같았다. 김 선생작품은 토씨 하나하나 의미가 살아있지 않느냐. 연출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다. 왜그리 실수를 많이 하느냐고. 그 만큼 연기자로서 긴장을 되살아나게 한 작품이라는 뜻. 김수현 작가와는 ‘안녕’ 이후 30년 만에 만났다.
’부모님 전상서’는 소소한 사건의 해결이 부모를 통해, 특히 아버지를 통해 이뤄졌다. 2남2녀, 그리고 여동생까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늘 아버지를 먼저 찾는다.
둘째 아들이 약간의 문제를 일으키고 어머니가 화난 목소리로 부르자 아버지를 보며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무릎 꿇어요?’였다. 요즘 젊은이들중 부모가 화나면 무조건 자신의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릎을 꿇는 젊은이가 몇이나 되겠나. 젊은이들에게 부모와 가족의 의미를 새삼 깨우쳐 준 작품이라고 뿌듯함을 내보였다.
그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김수현 작가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졌다.
많이 변했더라. 예전엔 날카롭게 긴장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봐. 김 작가에게서 인생을 앞서 살아간 이의 책임감을 느꼈다. 정을영 PD의 군더더기 없는 영상과 작품 전체의 통찰력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김 작가와 정 PD는 ‘목욕탕집 남자들’, ‘불꽃’ 등에서 호흡을 맞춘 콤비다.
보통 주말극을 촬영하는데 사흘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주일 내내 촬영한 적도 많았다. 주요 배경이 되는 기와집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500년된 집이다. 아내, 큰 아들 지환과 새벽 운동신을 찍기 위해 이틀을 촬영해야 했던 적도 있다.
이 장면을 찍는 날엔 새벽 4시에 집합했다. 겨울엔 해가 늦게 떴는데 봄 이후엔 (그의 표현대로라면) ‘해가 갑자기 쑥 올라와버려’ 하루에 다 못찍는 경우도 있는 것.
손주까지 본 그이지만 마음은 청춘이다. 그가 수준급의 사격 솜씨를 자랑하는건 널리 알려진 일. 대한사격연맹 부회장, 대한수렵관리협회 회장직 등을 맡고 있다. 자동차 드라이브도 가끔 적당한 곳에서 스피드를 즐긴다.
마음은 젊은이들과 똑같다. 체력에도 자신있어 아직 힘에 부치는 게 없다고말하는 뜻엔 ‘날 늙은이 취급하지 마라’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있는 듯 했다.
열정과 체력, 모두 받쳐주는 데다 ‘부모님 전상서’는 그에게 ‘자신감’이란 큰무기까지 쥐어줬다.
이제 어느 작품이 와도 덤벼들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준비돼 있는 상태에서 ‘나 여기 있습니다’라고 손들면 된다. 1959년 성우로 연기를 시작했던 그는, 64년 영화로 데뷔했고, TV에는 KBS ‘아로운’이라는 드라마로 첫 선을 보였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흑맥’,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 등에 이어 최근에는 ‘살인의 추억’, ‘그 때 그 사람들’까지 출연했다. 드라마로는 ‘열풍’, ‘사랑이 꽃피는 나무’, ‘보통 사람들’ 등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그는 난 참 운이 좋은 편이다. 의미있는 영화, 좋은 드라마에 출연해왔다고 스스로 연기 인생을 되돌아 봤다.
이제 곧 ‘부모님 전상서’가 끝난다. 흐트러진 게 많고, 잘못 생각하는 게 많은 요즘 세상에서 이 드라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침을 줬다고 평하는 그의말은 시청자들이 느끼는 공감대일 것.
나이가 90이 되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란 직업을 택한게 후회없고, 행복하다는 말로 앞으로의 ‘계획’을 갈음했다.
인터뷰는 세트 녹화가 이뤄지는 KBS 별관에서 리허설이 끝나고 녹화가 시작되기 전 점심 시간을 이용해 이뤄졌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큰 아들 역의 장현성이 조용히 일어섰다. 아버지가 혼자 점심 드실까봐 기다렸다는 것. 어느새 연기자들도 ‘가족’이 돼있었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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