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국 새 역사를 창조했다.
그러나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될 ‘133년만의 LA 첫 라틴계 시장’은 이번 캠페인에서 그가 애써 그 의미를 축소시켜온 부분이기도 하다. ‘라티노들의 시장’으로 각인될까 우려한 것이다.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의 시장당선 과정은 여러모로 LA 첫 흑인시장 탐 브래들리와 비슷하다. 둘 다 두 번째 도전에서 현직을 꺾었고 첫 번째 실패한 원인도 맥락이 같았다. 4년전 비아라이고사가 마약거래 라틴갱과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상대의 전략에 치명타를 입었듯이 1969년 브래들리 역시 그가 당선되면 극좌 흑인과격파 블랙팬더가 LA시청을 점령할 것이라는 샘 요티의 흑색선전이 패배의 요인이었다.
임기제한이 없었던 때 무려 20년동안 집권한 브래들리는 1973년 취임당시부터 흑인커뮤니티의 긍지 그 자체였다. 인종차별의 아픔을 딛고 수많은 희생을 치루며 민권운동이 키웠다고 자부해온 ‘흑인정치의 아들’이었다. 이 political son은 기대이상으로 성장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흑인 공직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브래들리와 그의 뿌리인 흑인 커뮤니티와의 관계는 그리 편안치만은 못했다.
그의 3선 캠페인이 시작될 무렵 와츠지역에서 한 흑인여교사가 살해당했다. 시의회는 곧 범인체포에 현상금 책정을 결의했다. 그런데 브래들리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 바로 몇주전 웨스트 LA 살해사건의 현상금 결의안은 브래들리의 서명을 받았었다. 와츠는 흑인 빈민촌이고 웨스트LA는 백인 부촌이었다. 흑인 커뮤니티는 분노했다. 그래, 흑인 살해는 대단치 않단 말이냐. 현상금 책정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대책강구를 위해서였다는 브래들리의 해명은 이 분노를 잠재우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찰국과 소방국의 인종통합을 명령한 연방정부에 맞서 대법원까지 투쟁해 올라간 것도 브래들리의 LA시정부였다. “어떻게 흑인 시장이…” 연방 법무성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시의회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원칙을 지켰을 뿐이라고 그는 담담히 설명했다.
10여년전 4선을 앞둔 브래들리 시장을 인터뷰했을 때 ‘LA최초의 흑인시장’으로 자신이 흑인 커뮤니티를 위해 충분히 일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대한 그의 고충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소수계 출신 정치인들이 공유하는 고민일 것이다. 그때 브래들리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흑인커뮤니티의 대부노릇과 시장을 겸직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배신당했다고 실망한 민권운동가들은 “그가 흑인이 아니라면 세상에서 가장 인종편견이 심한 시장이 되었을 것”이라는 극언도 서슴치 않았다.
워낙 신중한 브래들리는 흑인사회의 분노 표출에 대체로 초연했다. 원칙에 의해 흔들리지않고 중립을 지켰다. 브래들리는 소수계와 여성을 위해 시청의 문을 활짝 열고 도시 빈민층 대책을 강구했으나 ‘흑인들의 시장’으로 머물지는 않았다. 그의 중립적 자세는 당시 LA 주민들에게 흑인이지만 흑인만의 시장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그의 5선 달성의 근저에는 바로 이런 확신이 자라잡고 있었다.
흑인사회와 흑인시장. 이 편안치만은 않은 과제를 이제 라티노 커뮤니티와 새 시장 비아라이고사가 직면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밤 비아라이고사 당선 축하파티에서 제일 크게 울린 함성은 “Si, se puede!”였다. ‘그래, 우린 할수 있다’는 뜻의 스패니시다. 그가 원했던 안했던 이제 비아라이고사는 미 정계에서 급부상하는 라티노 파워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라티노 사회가 자랑스럽게 키워낸 political son이다. 그러나 전폭적 지지를 보낸만큼 그들 또한 머지 않아 노여워 할 것이다. 그가 라티노 사회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 다혈질인 그들은 흑인보다 더 크게 외칠 지도 모른다.
대다수 주민의 요구와 라티노 커뮤니티의 기대, 이 두가지를 어떻게 균형잡을 것인가는 앞으로 임기 내내 LA의 새 시장 비아라이고사가 깊게 고민해야할 과제가 될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뿌리를 잊으라는 강요는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거듭 거듭 공약해 온 “모든 사람을 위한 시장”이다, 다같이 웃으며 손잡는 개인 날만이 아니라 각 커뮤니티의 이해가 위태롭게 상충하는 궂은 날에도 양쪽이 똑같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정한 리더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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