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기념사업 치중 자성 확산
첫 발포명령자·美개입 규명 등
5·18 기념재단 올해부터 추진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17일 오전 국립 5ㆍ18묘지. 5ㆍ18 추모제를 마치고 나오던 이근례(66ㆍ여)씨가 쉰 목소리로 ‘5월의 노래’를 읊조리더니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날만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져. 어제는 가슴이 벌렁벌렁해 밥도 못 먹었어.”
이씨의 장남 권호영씨. 당시 20세이던 그는 시민군의 마지막 항쟁이 있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26일 오후 음료수를 사 들고 전남도청에 갔다 행방불명이 됐다. 그리고 23년 만인 2003년 5월 구 망월동 묘역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그 녀석, 살아있다면 이제 불혹이 훨씬 넘었을텐데. 매년 5월이면 몸살을 앓지 않은 적이 없었어. 언제까지 이 생채기가 계속될는지. 그런데도 벌써 5월이 잊혀지는 것 같아 가슴이 찢어져.”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씨에게 5ㆍ18은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의 역사였다.
그랬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는 언제나 그 날의 상처와 아픔을 되새겨야 했다. 피로 얼룩졌던 금남로와 충장로에는 그 때의 참상을 알리는 수많은 사진과 걸개그림들이 내걸렸고, 5월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흐느낌도 계속됐다. 이렇듯 유족들의 눈물을 앞세운 광주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사이 정작 광주에서조차 ‘5월 광주’의 진실은 점점 희미해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로 5ㆍ18 4반세기를 맞는 광주는 예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인권과 평화라는 그림자에 가려 5ㆍ18의 ‘진실’이 역사에 묻혀서는 안 된다”는 광주시민들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5월 단체에서는 “솔직히 그 동안 5ㆍ18 진상규명 작업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는 자기 반성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5ㆍ18기념재단은 올해부터 다시 ‘5ㆍ18 진실 조사사업’에 나섰다. 최초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미국의 책임론 등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대해 2009년까지 대대적인 진상규명작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다른 5월 단체들도 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5ㆍ18학살’에 대한 진상조사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5ㆍ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김태현 사무총장은 “5ㆍ18이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한 뒤에도 유족들의 고통과 한풀이에 관심과 초점이 맞춰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광주의 진실과 항쟁정신은 사라져 가고 있는 느낌”이라며 “이제라도 5월 정신의 현실화를 위해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작업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신군부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 쓰러지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했다. 더구나 광주의 진실이 은폐되고 비극의 현장에서 상처 받은 이들이 여전히 치유되지 못했는데도 5ㆍ18은 민주제전이라는 ‘서글픈’ 축제로 부활했다.
이렇다 보니 최근 서울에서는 ‘추모’가 아닌 ‘경축’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5ㆍ18 선전탑이 서울역 앞에 세워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광주에서조차 “또 5ㆍ18이냐, 이제 그만 얘기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외면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5ㆍ18이 피해보상과 국가기념일 지정, 5ㆍ18묘역의 국립묘지 승격 등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5ㆍ18관련자들의 생각이다.
5ㆍ18기념재단 차명석 상임이사는 “각종 기념사업 등 5ㆍ18의 외형에 비해 5월 정신과 진실 찾기 노력이 소홀해지면서 ‘경축탑’ 같은 역사오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진상규명에 앞서 피해보상과 기념사업이 먼저 진행된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5ㆍ18 25주년 기념행사위원회가 올해 행사의 주제를 ‘진실 평화 그리고 연대’로 정해 시민참여와 기념행사의 전국화에 초점을 맞추고, 더불어 5월정신 계승작업에 박차를 가한 것도 바로 이 같은 5ㆍ18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좁혀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광주 유혈진압작전의 직접 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진짜 가해자’들의 참회와 반성이다. 이들이 진정 5월 영령 앞에 머리를 숙여 광주의 상처를 치유할 때 5ㆍ18은 역사 속에 살아있는 민주주의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광주시민들은 말한다.
전남대 5ㆍ18연구소장 최영태(사학과) 교수는 “광주의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되며, 새로운 역사 속에서 5ㆍ18을 살려나가는 것 또한 이 땅에 살아남은 자들의 엄숙한 과제”라고 말했다.
광주=글ㆍ사진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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