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후보는 너무 비슷하다. LA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이슈에 대한 해결책이 대동소이다. 경찰력 증강에 대해서도, 교통체증 해소나 밸리분리 제안에 대해서도 생각이 같다. 대화창구 오픈, 경제 활성화등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약속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가린채 공약만 보면 누가 당선되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목소리를 살려놓고 악수를 하고 마주앉아 얼굴을 대하면, 두 사람은 정말 다르다. 닮은 점이 없다. 누가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스타일이 정반대다. LA시장 결선의 두 후보를 잇달아 만나며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느낌이다.
지금은 같은 결승점을 향해 뛰고 있지만 두 사람은 출발부터 극히 대조적이었다. 캐나디안 이민3세인 제임스 한시장은 LA정계 명문가 출신이고 멕시칸 이민3세인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시의원은 가난한 결손가정에서 태어났다. LA다저스 첫 명예 배트보이로 선정된 9살짜리 지미가 시청 파티에서 저명인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을 때 이스트LA 빈민가의 7살 어린소년 토니는 신문배달, 구두닦기로 생계를 도와야 했다.
거친 성장기를 지나며 평균학점 1.4의 열등생 토니는 풋볼구경후 패싸움에 휘말렸다가 퇴학당했고 학교신문 스포츠 편집장이며 우등생인 지미는 10선 수퍼바이저 케네스 한의 모범가정에서 정치를 일상의 한부분으로 익히며 사회적 양심과 책임감을 배웠다.
헌신적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으로 갱생한 안토니오는 UCLA를 졸업한후 노조의 지도자로 민권의 기수로 활약하며 정계에 입문, 주하원의장까지 올랐고 페퍼다인 법대를 졸업한 제임스는 30세에 시감사관으로 당선된후 젊은 엘리트로 정계의 기대를 받으며 시 선거에서 6연승을 거두었다.
엊그제 번갈아 본보를 방문했던 두 후보의 진영에서 허물없는 취재기자에게 ‘어땠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각각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 “역시 에너제틱한 리더라 마음이 끌린다” “역시 실적이 돋보여 믿음이 간다.”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비아라이고사의 최대 강점은 카리스마다. 함박웃음에 힘찬 악수를 나누며 “새 이민에게 꿈을 이루어줄 LA의 미래를 위해 소매를 걷어 붙이겠다”고 외친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답게 친화력이 뛰어나다. 가는 곳마다 신명과 활기를 끌어내며 연대능력이 탁월해 각계각층 진보파와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조와 대기업 양쪽 모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네트워킹은 이중적 태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잘만 균형을 잡으면 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이 될수있다는 기대를 갖게한다.
어느 선거에서나 도전자가 ‘변화’라는 절대 무기를 들고 나오면 현직은 그만큼 불리하다. 거기에 더해 한시장의 최대 약점은 ‘카리스마 부재’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같은 자리라도 사람에 따라 비중이 달라진다. 활기찬 이민의 도시, 화려한 스타의 도시 LA의 사령탑이 지난 4년간 맥빠진 리더십 탓에 빛을 잃었다는 원망이 쏟아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구멍 뚫린 인사다.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혀온 정직과 성실은 한시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런데 그의 측근 스탭들이 불법자금 스캔들로 조사를 받고 있다. 자신이 직접 연관되지 않았다 해도 최소한 관리소홀의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적극성도, 사교성도 부족해 ‘조용하기로 이름난’ 한시장의 최대 강점은 ‘4년전 보다 안전해진 LA’라는 실적이다. 흑인표의 반란을 감수한 경찰국장 교체로 29% 범죄 감소라는 확실한 성과를 쌓은 것이다. 역시 자신의 표밭이었던 밸리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밸리분리 저지에 성공했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교육과 주택 기금도 마련했다. LA에 관해서라면 한 시장만큼 속속들이 아는 정치가도 흔하지 않고 시 재정도 주정부에 맞서 싸운 덕분에 훨씬 안정을 이루었다. 그런데도 ‘실패한 리더’라는 비난에 그는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고 “유권자들은 실체를 볼 줄 알지요”라고 말 할 뿐이다.
익사이팅한 변화를 갈구하는 도시에 최선의 해답이 될 법한 비아라이고사에게도 약점은 있다.
혼란스런 과거가 늘 따라 다니고 지난 2년 시의원으로 별 실적을 쌓지 못했다. 한 직책에 안주하기 보다는 늘 다음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의회, 시의회, 시장, 다음은 ?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적 상충을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폭발하는 그의 ‘한 성질’은 이미 정가에서 꽤 소문나 있다. 열정적인 스타일에 비해 알맹이는 빈약하다는 지적도 있고 라티노라는 그의 인종배경에 대한 거부감도 표면화되지 않은채 생각보다 견고해 보인다.
한인사회의 표밭은 과거 그 어느 선거 때보다 갈리고 있는 듯하다. 두 후보 모두 낯익은 데다 그들의 향방이 우리 생활과 너무 밀접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안정’중 택일하라는 분석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이민3대에 이르러서도 피부빛깔의 벽을 뛰어넘기 힘든 소수민의 동질감은 비아라이고사 후보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한다. 그러나 민감한 각 커뮤니티간 이해가 상충되었을 때 누가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 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한시장 쪽에 신뢰가 실린다.
여론조사 결과보다는 더 접전이 될 것이라고 정계 소식통들은 관측한다. 우리 한표 한표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는 뜻이다. 누구를 찍을 것인가 - 5월17일까지 조금 더 관심 갖고 조금 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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