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사냥
화가가 창조한 작품은 이를 알아보는 수집가에 의해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화가의 예술혼을 알아보는 컬렉터들은 김춘수의 시처럼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의 이름을 불러 꽃이 되게 하는 시인이다. 별다른 관심이 없다가도 미국 살면서 한 번쯤은 팔자에 없는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고르러 다니게 된다. 바로 처음 주택을 구입했을 때다. 병원처럼 휑하기 짝이 없던 흰 벽은 눈을 둘 만한 그림 한 점으로 인해 비로소 표정을 갖는다. 그림을 산다는 것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의 주인이 돼 시리도록 두 눈에 그림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아주 순수한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론 부동산, 증권에 못지 않게 미래를 내다 본 머리 회전 빠른 투자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컬렉터가 되려면 많은 전시를 둘러보고 안목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어렵사리 비딩에 참여해 번호판을 들었지만 이내 다른 경쟁자들에 의해 밀리고…
유명작가 작품 투자 적합
해마다 가격 15%나 올라
전시장 돌며 안목 익혀야
벼룩시장서 보물 찾기도
경매장 가도 비딩참여보다 자료 챙기기
소더비 - 크리스티선 걸작품 메이저 세일
투자인 만큼 철저한 자료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적어도 1년에 15% 정도는 가격이 인상된다 하니 예측이 어려운 증권이나 사업체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투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창수(45·오리온 바디샵 대표)씨가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한 지도 이제 약 3년째에 접어든다. 그저 그림이 좋았던 그는 주말이면 갤러리와 앤틱샵, 벼룩시장, 경매 등 다양한 경로를 쫓아다니며 미술품 사냥에 바빴다.
매주 장소를 달리하며 열리는 벼룩시장은 보석을 주울 수 있는 좋은 마당. 이른 아침 서두르지 않으면 이 계통의 선수들이 모두 알짜배기를 싹쓸이 해가고 난 뒤다. 그래서 그는 주말이면 평소보다 더 일찍 알람시계를 맞춰 놓으며 유난을 떤다.
패사디나 로즈보울, 롱비치 플리마켓 등 장소를 달리하며 다니다 보면 가끔 다른 곳에서 만났던 소위 ‘꾼’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마음에 들었는데 좀 더 생각해 본 후 가보면 반 이상은 이미 팔리고 난 뒤다. 직관력과 순발력은 예술작품 수집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다.
앤틱샵 역시 그가 그림 사냥을 위해 자주 찾는 장소다. 매장의 가장 후미진 곳, 겹겹이 쌓여 있는 캔버스 사이에 믿지 못할 만큼 훌륭한 예술작품이 숨어 있을 때도 있다.
그 순간 그가 느끼는 희열은 금은보화 가득한 보물섬을 발견한 후크 선장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갤러리 역시 규칙적으로 찾는다. 예술작품 수집도 사람이 하는 것인지라 주인의 취향에 따라 전시하는 작가의 작품이 사뭇 다르다.
이제 그는 멜로즈 선상의 단 오맬버니 갤러리, 다운타운의 아스토 갤러리 등에서 오프닝을 할 때면 놓치지 않고 찾을 만큼 LA 갤러리 계의 빠꿈이가 됐다.
경매에는 꾸준히 참석하고 있지만 사실 경매를 통해 예술 작품을 구입해본 적은 없다.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기 전 꼼꼼히 작품을 살펴본 뒤 비딩에 들어가는데 큰 맘 먹고 번호판을 들어올리기까지 왜 그리도 오랜 시간을 망설이게 되던지.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인 소더비(Sotheby)와 크리스티(Christie)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메이저 세일이 있다. 박물관에서나 접할 수 있는 진귀한 미술작품들이 세계 각국에 순회 전시되고 난 뒤 경매 당일에는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이 두 번의 세일을 위해 경매회사는 일년 내내 바쁘게 움직이고 미술 애호가들 역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니 가히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제라 부를 만하다. 특히 2002년 11월 런던에서 열렸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박수근 화백이 그린 ‘악’(樂)이 53만2,000파운드에 낙찰돼 화제를 불러모았었다.
지난 4월 초 선셋 가의 버터플라이 사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이 모두 200여점이나 출품됐다. 그동안 이 보물들은 누구의 거실에 걸려, 그들을 바라다보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걸까. 세상에 빛을 드러낸 걸작들을 눈앞에 대하자니 캔버스 앞에서 예술혼을 불사른 화가와 그들의 재능을 알아본 컬렉터들의 영혼이 화답하듯 가깝게 헤아려지는 것 같다.
정작 경매 시작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사람들은 2~3시간 전부터 찬찬히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작품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전시장에 있는 이들 모두가 장래 이 예술작품들의 주인이 될 리는 없다.
경매시간이 가까워 오자 장내에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매물 1번. 진행자가 짧지만 버릴 것 없이 알차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고 비딩을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번호표를 들어올려 가격은 금시 비딩 시작의 몇 배로 뛰어오른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작품의 비딩에 망설이다 어렵사리 번호표를 들어봤지만 앞자리에 앉아 있던 노신사와 은발의 노부인이 자꾸만 가격을 높이고 있다. 마음만 굴뚝같은 그는 침을 꼴깍 넘길 뿐이다.
피카소나 모네, 세잔 등 유명화가의 작품의 낙찰가는 1,000만달러를 훌쩍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매가 이런 가격대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미술품이란 예술가와 그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그 참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경매현장에 간다는 것이 꼭 구매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매에서 그는 비딩 참여보다 미술품 자체를 즐기며 안목을 키우는 것으로 충분히 그 의미를 찾는다. 여러 번의 경매 참가 후라야 경매에 부담 없이 다가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1년에 더도 말고 약 3점 정도씩 꾸준히 구입했더니 어느덧 소장작품 전시회를 해도 될 만큼 작품 숫자가 불어났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는 경매 회사도 탐낼 만큼 굵직한 것들도 제법 된다. 장욱진의 ‘가족’, 김환기의 ‘무제’ 등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를 맞아주는 그림들로 인해 그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멀지 않은 가을의 어느 날, 그의 사랑 어린 눈에 선택된 작품들을 한데 모아 동포들 앞에 선보이고 싶다는.
우리는 그의 눈에 많이도 어여뻤던 그림들을 보며 또 다른 꿈을 꾸게 될 터이다. 예술 작품 컬렉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독자들에게 그는 기꺼이 도움말을 약속했다.
(323)525-0400.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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