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조국’이란 말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아, 그것 유럽 어느 나라 교향곡의 이름일거요 하고 유식한 척하면 무식해 집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세운 작전 계획입니다.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루즈벨트 미 대통령이 원자탄 개발을 위해 세운 ‘맨해턴 프로젝트’처럼, 푸틴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의 전 국력을 모아 개발한 프로젝트입니다.
지금부터 4년전, 푸틴의 특명으로 가동된 이 작전계획은 소연방 해체후 쇠락일로를 거듭해 온 러시아의 자존심과 영광을 되찾기 위해 마련된 문화작전 계획으로, 일단 만 16세 미만의 러시아 전국의 어린이들을 겨냥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러시아 전역에서 음악에 탁월한 4만명의 꿈나무들이 모여 기량을 겨뤘습니다. 과연 러시아답습니다.
여기서 건져 올린 대어가 ‘알렉산드라 리’라는, 올 해 9세 난 소녀입니다. 한국계 러시아 이민 후손으로 러시아 아명은 샤샤. 그 대회에서 바이얼린 분야의 그랑프리를 차지했습니다.
그 후 3년에 걸친 샤샤의 입상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입상 또는 1등이라는 수상 기록은 아예 없고 모두가 그랑프리로 일관해 있습니다.
샤샤에 대해 한마디만 더 자랑하겠습니다. 올해 1월 한디만시스크에서 열린 전 러시아 신인 콩쿠르에서 샤샤는 역시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전 심사위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분은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장 에드와르 다비도비치 교수. 그는 심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아이는 2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재능을 지녔다”고 평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샤샤에 뒤지지 않을 천재들을 세계 도처에 여럿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샤샤의 경우는 다릅니다. 샤샤는 한마디로 피맺힌 우리의 러시아 이민 140년 역사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러시아 이민 작업은 극동 연해주에 주둔했던 제정 러시아군의 식량 공급을 위한 밭갈이로 시작됩니다. 조선 안에 농사 지을 땅 한 뙈기 없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땅에 몰래 발을 들인 1865년 조선왕조의 함경도 주민들이 초대 이민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왕조가 버린 기민들입니다.
이들은 그러나 나라가 일본에 합병되자 독립군을 편성해서 일제와 맞붙어 싸웠습니다. 자기들을 버린 조국을 위해 총칼을 들었단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한심한 나라, 이런 갸륵한 국민들이 어디 또 있습니까. 그나마 1937년 스탈린의 조선인 강제 소개 명령이 떨어져 카자크스탄 키르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에서 반 이상이 굶어 죽거나 중앙아시아 허허벌판 사막의 혹한에 동사했던, 눈물의 이민사 주인공들입니다. 샤샤는 그 후예입니다.
사막은 무섭습니다. 사막은 바로 죽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 황량한 사막이 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에게는 아름답게 비쳤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곳 어딘가에 샘이 있기 때문”이라던 작가의 사막 예찬론을 오늘 샤샤한테 그대로 원용하고 싶습니다.
사막처럼 황량했던, 아니 사막 그 자체였던 우리의 러시아 이민사가 오늘 샤샤라는 작은 샘 하나를 통해 훌륭한 미학으로 승화됐기 때문입니다.
이제 해외동포들을 보는 국내의 시각도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같은 하늘을 봐도 천문학자가 보는 하늘과 기상학자가 보는 하늘은 다릅니다. 천문학자는 하늘의 별만을 보고, 기상학자는 하늘의 구름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재외동포는 천문학자와 기상학자를 겸해야 정확히 보입니다.
동포들이 동포 서로를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좋은 나라에서 잘 사는 동포들은 열악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동포들을 함께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선 멀리도 말고 미합중국 바로 밑 쪽의 두 나라 멕시코와 쿠바부터 봐 주셨으면 합니다. 100년전 그곳 애니깽 농장에 팔려왔던 구한말 동포들의 후예가 벌써 이민 5~6대에 걸쳐 아직도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부자 나라에 사는 동포든 가난한 나라의 동포든 우리 모두에게는 구약시대 하나님이 몰래 비치해 놓은 ‘남겨놓은 자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끝으로 우리 샤샤를 위해 다시 한번 박수 쳐주십시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 이사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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