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김 커맨더가 13년전 한인 업주와 폭동 시민들간 총격이 벌어졌던 웨스턴과 9가 로데오 갤러리아 주차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서준영 기자>
오늘 4·29폭동 13돌…폴 김 당시 현장 커맨더 회고
당시 LAPD국장·시장
비상시국 인식 없어
한인들 무장해제 못하게
부하들에 명령 내려
“바퀴벌레 같았습니다. 우리가 다가서면 흩어졌다가도 뒤돌아서는 순간 다시 스왑밋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약탈하려는 시민들과 한인업주들 사이에 벌어지는 총격전을 바라보며 강제진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난 다문 이빨이 깨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글간판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속에 한인들의 울부짖음이 섞여가던 13년전 오늘 폴 김 커맨더(53)는 그 한복판에 일선 지휘자로 서있었다.
당시 LA경찰국 윌셔경찰서 형사과장이던 그는 폭동발발 후 한인타운 현장지휘커맨더(Field Tactical Commander)로 뛰었지만, 마비된 보고와 통신체계는 경찰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지금도 4.29는 지독한 타는 냄새로 떠오른다”는 김 커맨더로부터 그날의 상황과 현장에서 뼈저리게 터득한 소중한 교훈을 들었다.
◇나는 한인 경찰이었다
한인타운 남쪽 라브레아와 베니스 코너의 윌셔경찰서 옆 스왑밋에서 총격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옥상에서 상황을 바라보며 본부의 투입명령을 기다리는데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스왑밋 주차장으로 뛰어나갔고, 부하들도 나를 보고 따라 나왔다. 경찰이 다가서자 그들은 물러섰지만 허공에 대고 휘두르는 파리채 같을 뿐이었다.
비상사태는 계속 터져 가는데 당시 경찰국장과 시장은 비상시국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보고와 지시란 지휘계통을 준수하던 부하들은 불타 쓰러져 가는 건물을, 오열하는 주민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결국 현장 지휘관들은 자체 판단에 따라 대응에 나서게 됐다. 난 무장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선 시민들을 무장해제 시키지 말고, 이재성군에게 총을 쏜 당사자를 체포하지 말라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난 LA경찰국 경관으로는 유일하게 진상조사 청문회에 나가 증언하게 됐다.
“그때 한인 커뮤니티
너무 힘이 없었다”
주류언론 왜곡으로 ‘폭력적 한인’그려져
정치적 파워 키워 아픈역사 반복 막아야
◇그들에게 한인들은 폭도로 그려졌다=웨스턴과 9가의 현 로데오갤러리아몰 주차장으로 몰려오던 폭도들을 향해 한 한인이 권총 2정으로 공포를 쏘며 제지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ABC7 방송에 잡힌 후 각종 통신과 전세계 방송에서 수백 번 방영됐고, 그들에게 LA폭동의 상징처럼 남겨져 한인들의 폭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반대에서 몰려왔으니 쐈겠지 그냥 쐈겠냐. 이것이 주류 언론이 한인들을 왜곡해 보도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역사는 쓰는 사람이 창조한다.
사우스 LA의 흑백과 빈부차이, 정부 정책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버림받았다는 복합적 요소가 수십년 쌓였다 터진 것이 폭동이었고 피해를 당한 한인들이 원인제공자란 오명도 뒤집어쓰게 됐던 것이다.
LAPD가 맨체스터와 플로렌스에서 소요가 났을 때 공격적으로 진압했으면 그렇게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인 커뮤니티는 힘이 없었다. 지금도 그 교훈은 유효하다.=우린 너무 힘이 없고, 조직이 없었고, 정치파워는 물론 대변인도 없었다. 세금을 낸 만큼 대접받아야 하는데 요구조차 없던 것이다.
싸움은 A, B가 하는데 피해는 C가 보는 방정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 파워를 키워야 한다. 그렇게 피를 흘리고 배웠는데 아직까지도 우리끼리 싸우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과연 무엇을 배운 것인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예방을 위해서는 시스템을 기초로 한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 한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고, 지독하리 만치 팔로업을 하는 단체들이 생겨나 아무도 무시 못하는 관록이 붙어야 한다.
정치운동도 치어리더 수준에서 벗어나 정책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고, 방문객 정신이 아닌 주인의식으로 바뀌지 않으면 커뮤니티의 수준은 영원히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다시 일어섰다=폭동 3일후 한인들은 서울국제공원에 모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행진을 했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이슈가 있으면 뭉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더 이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우리는 피해자라고만 강변해서는 그 다음은 무엇인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그 때 우린 이미 큰 힘을 얻은 것이다.
<배형직 기자>
hjba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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