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법치국가입니까?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입니까? 적어도 지금 내게는 아닙니다. 무고한 희생자인 우리를 위한 정의는 어디서 찾아야합니까?”
LA 사우스센트럴 한모퉁이 잡초가 무성한 빈터 - 12년간 밤낮 없는 중노동으로 마련한 자신의 마켓이 폭동으로 불타버린 자리를 망연히 바라보며 피해상인 주성호씨는 그렇게 반문했었다. 폭동후 2년3개월 동안 3번의 공청회 4번의 주의회 방문을 계속하며 필사적으로 진정하고 투쟁했으나 끝내 재영업을 못한채 그 빈터마저 경매에 부쳐진 94년 8월이었다.
수많은 정치가를 만났다. 그들과 수없이 악수를 나누고 위로와 약속을 다짐받았다. 그러나 말 뿐이었다. 주의회와 시의회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며 한인의 자리가 그처럼 미약하다는 것이 정말 참담했다. ‘stupid Koreans”라고 비웃는 소리를 들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그는 “정당한 보상은 피해상인 개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커뮤니티 이슈다”라고 주저 앉으려는 자신을 타이르며 일으켜 세웠다.
4.29폭동 13주년을 이틀 앞두고 다시 이야기를 나눈 그는 이젠 체념한 상태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재기하셨지요라는 인사에 먹고살기는 하지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정부에서 받은 보상은 6개월간의 아파트 렌트 보조비가 전부였다. “아, SBA 론을 받았군요” 그러나 지난 10년동안 다시 뼈가 부서지게 일했지만 아직도 원금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다. 당시의 피해상인들과 계속 연락하며 서로 돕고 지낸다는 그는 분노를 가슴 속에 그대로 묻은채 생계에 허덕이며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소시민의 평화로운 삶을 억울하게 빼앗긴 후 외로운 투쟁 속에서 사회의식, 역사의식을 익히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4.29를 잊어가는 한인사회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어했다. “물질적 보상엔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폭동의 역사는 바로 남겨져야 합니다. 4.29의 원인이 한흑갈등입니까? 아닙니다” 폭동의 원인은 백인중심의 권력구조이며 경제적 불평등인데 피해한인들에 대한 보상 배려는 없이 원인제공의 책임까지 지우는 주장은 지금까지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한인이 쓴 폭동역사’는 인정받지 못하는 피지배집단의 한 야사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것은 UCLA의 박계영 교수다.
폭동 1년후 UCLA 인류학과 대학원 강의시간이었다. 실력으로도, 인격으로도 존경받는 백인교수의 강의였다. 그러나 강의를 듣고난 한인학생들은 분개했다. 강의 주제가 4.29폭동이었는데 내용이 완전히 흑인의 입장에서 본 4.29였다. 읽어오라는 과제중엔 가장 큰 피해자인 한인상인들에 관한 내용은 단 한줄도 없었다. 바로 내 부모의 가게를 약탈당했던 한인학생들에겐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4.29를 ‘차별당한 흑인들의 당연한 분노’로만 이해한 것은 당시, 아니 지금까지도 진보성향 백인들 대부분의 시각이다. 물론 지난 10년동안 상당부분 균형이 잡히긴 했지만 억울하게 당한 한인들의 폭동체험과 미 주류사회가 인식하는 폭동상황 사이에는 아직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당한 보상요구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먼 훗날까지 역사에 남을 4.29폭동에서 한인사회가 끝내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남아서는 안됩니다. 2차대전때 강제수용 당했던 일본인들도 결국 보상을 받아내지 않았습니까. 1백년 후에라도 우리의 2세, 3세가 한인사회를 위해 정당한 보상을 받아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잊고 싶어도 ‘사이구’를 아주 잊을 수가 없다고 주성호씨는 말한다.
한인의 시각에서 본 폭동이 LA 정사(正史)의 한 부분으로 기록되려면 우선 폭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한다. 피해상황과 복구과정을 알려주는 자료도 갖추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제대로 쓴 책과 논문이 나와야 하고 한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 학술적 주장을 주류사회에 반영시킬 수 있는 힘도 있어야 한다. 정치력 없이는 수십년 쌓아올린 경제력이 하룻밤새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4.29를 통해 이미 경험했다. ‘한인이 쓴 폭동역사’ 역시 힘이 없으면 야사로 파묻혀 사라질 지 모른다.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이젠 ‘한인이 쓴 폭동역사’가 LA정사에 포함되도록 정지작업에 들어가야 할 때다. 어쩌면 그것은 정당한 보상받기에 실패한 커뮤니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일 수도 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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