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노이주의 대표적인 간선도로인 90번 고속도로 로렌스길 입출구에 ‘코리아 타운’ 표지판이 세워졌다. 하루 20만대, 1년 7천3백만대에 달하는 차량의 승객들이 이 지점을 지나며 코리아 타운이라는 표지판을 바라보게 되는, 시카고 한인커뮤니티 홍보에는 안성마춤인 표지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카고에 급속도로 진출하고 있는 남미계·중동계 등 다른 민족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으려면, 한인업소들이 코리아라는 이름을 걸고 어떤 노력을 경주해야하는 지를 되돌아봐야할 시점이기도 하다.
▶소비자 취향 파악이 우선
소비자의 욕구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시장논리는 시카고 일대의 상권에서도 예외 없이 들어맞는다. 경제 상황은 항상 물결을 치면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지금의 경기가 안 좋아서 장사가 안 된다고 푸념하며 그동안 해왔던 경영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주변 환경이 변화하는 이유와 고객들의 취향이 바뀌는 추세를 간파하고 이에 맞는 사업 전략을 세우는 업체에게 손님들을 내주고 도태하게 되는 것이 시장의 생리이다. 알바니파크 커뮤니티 센터의 이진 지역경제 기획개발부장은 한인 상가 업주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이 뭔가를 파악하려는 데 있어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며 예를 들어 남미계 사람들 중에서도 멕시코인과 쿠바인은 겉보기만 비슷할 뿐 선호하는 옷이나 신발이 매우 다르지만 이에 맞춰 제품을 차별화 시키는 사례는 많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소비자가 뭘 사고자 하는 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매상을 극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요즘 같은 불경기일수록 신상품에 대한 정보와 소비자의 기호 변화, 그리고 자신의 상권에 유입되는 인구 변동이나 인종들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시장 조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고객 선호 인테리어·간판 필요
낡고 오래된 간판과 어두침침하고 지저분한 실내 공간, 변하지 않는 유리창 진열대의 물건들... 쾌적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샤핑을 즐기고 싶은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결코 자신의 매장으로 돌리게 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들이다. 뿐만 아니라 실내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두운 조명을 단 점포는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실외 간판과 내부 인테리어를 단장하기 위해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 브린마 한인 상우회의 안선옥 회장은 간판만 새로 달아도 가게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 때문에 일리노이주 차원에서 보조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간판 바꾸기를 시도했던 적도 있지만 영세한 업주들이 1500 달러에서 2000달러 정도 하는 비용을 대기에는 빠듯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간판 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실내 디자인을 변경하는 투자 계획에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투자의 효과는 투자한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에 불경기일수록 작은 부분에서부터 다른 상점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메디슨과 플라스키가 만나는 지점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다 최근에 인테리어를 개선한 김규환 씨는 점점 치열해지는 다른 업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보다 나은 샤핑 환경을 바라는 고객들의 욕구에 부합하고자 오래된 내부 공간을 새 단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투자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대형화·고급화 추구해야
알바니파크 커뮤니티 센터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서울 드라이브를 포함하고 있는 시카고 강과 플라스키까지의 알바니 파크 일대에서의 2003년 총 부동산거래 건수는 179개로 평균 거래가격이 23만7천5백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4년 들어 거래 건수가 181개, 평균거래가격 29만3천 달러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신세대 가운데 고등교육을 받고, 도시 근교에 살며, 전문직에 종사하여 연 3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젊은이들을 뜻하는 여피(Yuppie)족들이 한인 상가가 대거 포진해 있는 로렌스와 그 일대로 몰리며 콘도붐이 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링컨길의 한인회 옆에 대형 월그린이 들어서기 위해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젊은 신세대 소비자들은 크고 넓으며 고급스런 매장을 찾는 것을 선호한다. 결국 1500스퀘어피트 정도의 중소규모 매장으로는 대형 골리앗 상점과 경쟁하기에 벅찬 것이 사실이다. 작년 가을에 3500스퀘어피트 규모의 매장에서 길 건너편의 6000스퀘어피트 공간으로 확장 이전한 언더웨어와 의류·잡화를 취급하는 하나 엔터프라이즈의 황운제 대표는 매장을 늘리면 그만큼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진열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매상이 느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공간이 넓어져서 상품의 종류에 따라 구간을 나눠서 진열을 하니 손님들이 물건을 찾고 구경하는데 참으로 편리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라며 자신의 투자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시카고로 새로 이민 오는 한인들은 70~80년대 이민 붐이 일었던 시대에 비해 그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렇듯 한인 상가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가만히 가게에 앉아서 돈을 벌어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더군다나 시카고 한인 사회의 거주자들은 넓은 지역에 걸쳐 분산돼 살고 있기 때문에 한인 상권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시카고 지역의 타민족 소비자들의 선호와 취향에 맞춰 일대 변혁을 추구하려는 자기 발전이 선행되어야만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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