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새 아침이 밝았다. 새 천년의 동이 튼 지 5년, 미주 한인사회가 이민 제2의 100년 시대에 돌입한 지 2년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는 흥분은 가라앉고, 21세기가, 이민 제2의 100년이 차분하게 우리 삶의 시대적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를 향해 먼 항해를 하고 있는지, 새해 아침 산정에 오른 마음가짐으로 둘러볼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 수천 년이 그러했듯이 새해, 새로운 100년, 혹은 새 세기에 거는 민족적 염원은 하나이다. 바로 힘이다. 힘있는 민족은 살아 남고 힘없는 민족은 흔적을 잃어버리는 것이 역사의 냉정한 법칙이다. 미주 한인 커뮤니티가 지난 한 세기, 가깝게는 개정 이민법으로 이민 물꼬가 트인 지난 60년대 후반 이후 손발이 닳고, 숨이 턱에 닿도록 쉼 없이 달려온 것도 결국은 이 사회에서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다인종의 각축장인 미국사회에서 힘있는 민족으로 자리 매김 함으로써 우리의 후손들은 사회경제적 사다리의 맨 밑바닥부터 기어오르는 수고 없이 쑥쑥 성장해나가도록 받침대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 커뮤니티의 바람이자 개개인 부모들의 바람이다.
‘힘있는 민족’은 한 세기 전 도산의 염원이기도 했다. 일제의 식민통치 하에 있던 고국의 민족, 미국 사회에서 미개인처럼 멸시 당하던 당시의 코리안 아메리칸 모두를 아우르며 도산은 우리가 힘을 길러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도산이 꼽은 힘의 원천은 지력(知力), 체력(體力), 덕력(德力)이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한인사회를 돌아보면 지력, 즉 실력의 발전은 눈부시다. 한인학생들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우수한 학생들로 인정을 받고, 그렇게 자란 2세들은 지금 각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미국사회의 좋은 일꾼으로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1세들의 노력의 결실인 한인타운의 경제 규모도 이제는 자산 30억달러의 은행을 탄생시킬 만한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도 한인사회는 아직도 뭔가 미흡하고, 왠지 두서없고, 급조된 듯한 인상을 버릴 수 없다. 원인은 ‘덕력’의 부족이라고 본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민족이라는 인상은 이제 미국사회에 심어졌다. 그러나 원칙이 분명하고 정직한 민족이라는 인상은 아직 심어지지 않았다. 벤츠 타고 와서 메디칼로 출산하고, 번듯한 살림 살면서 웰페어를 탄다는 오명, 유명 상표 도용, 마사지 팔러 매춘, 탈세 등 각종 단속의 단골 대상이라는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고 있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몰라서, 거짓이 몸에 밴 민족이라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사회에서 빨리 자리 잡고 싶은 조급함이 근본 배경이라고 본다. 미국사회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이민 늦깎이 약소 민족이다 보니 정도 대신 지름길의 편법을 택하면서도 자기 합리화에 빠졌던 측면이 있다.
세상은 파도 거친 바다이다. 이 바다에서 기어이 살아 남겠다는 투지만 있으면 못 헤쳐나갈 것도 없다. 그것이 우리 1세들의 각오였고 이민역정이었다. 그러나 투지만으로 갈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다. 수영을 정식으로 배워야 오래, 멀리 갈 수 있다. 바른 길, 정도만이 대를 넘는 번영의 밑거름이 된다. 풀뿌리 청교도 정신이 오늘의 미국을 만든 밑거름이 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한인사회는 두 가지 의미 있는 사건을 경험했다. 미주 한인사회 최대 투자 사기사건으로 기록된 C+ 투자 스캔들과 백인 보수 지역인 어바인 시의원 선거 결과이다. 투자 사기액수가 1억달러를 상회했다는 사실, 3명 뽑는 시의원 선거에서 한인 2명이 동반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자금력과 정치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힘을 어떻게 누수현상 없이 커뮤니티의 진정한 힘으로 다져나가느냐가 우리의 숙제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막 노동자부터 전문직 종사자까지, 한인이라면 누구나 따르는 원칙이 필요하다. 커뮤니티의 정신이고 가치관이다. 진정으로 힘있는 민족은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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