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우향우’대세 속 국론분열 치유 과제
미국 대선에 촉각을 세우랴, 이라크 전쟁에 거들랴, 테러위협에 긴장하랴, 집안 살림살이에 신경 쓰랴, 게다가 한국 정치에도 기웃거리랴, 그야말로 뒤통수가 뻐근했던 한해였다. 그래도 묶은 해는 가고 밝은 해는 온다. 새해를 잘 맞으려면 지난해를 똑바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집권 2기 ‘부시 호’의 외교 노선에 초미 관심
이라크-테러-경제 불안 해결할 리더십 기대
▲옥세철 논설실장-또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해였지요. 전쟁의 해, 테러의 해로 불릴 정도로 피로 얼룩진 해였습니다. 인재(人災)의 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천재(天災)의 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상기후에, 홍수에, 지진에, 허리케인에 정신이 없었지요. 그러나 올 해 끝자락 에 몰아닥친 동남아 대지진과 해일피해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지요.
▲민경훈 논설위원-올해의 가장 큰 뉴스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아서만이 아니라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인 미국의 리더가 누가 되느냐는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타임지도 그를 올해의 인물로 꼽았습니다.
▲권정희 논설위원-올해는 유난히 가슴을 조이며 결과를 기다렸던 일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대통령 선거, 그리고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었지요.
지난 3월 한국 국회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을 때, 편집국에서는 기자들이 모두 둘러서서 TV로 실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열린 우리당 의원들은 격렬히 저항하다가 의장의 질서 유지권 발동으로 대회장 밖으로 끌려나가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차례로 줄지어 투표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두 가슴을 조였습니다.
▲박봉현 편집위원-한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희망 보단 걱정이 앞섭니다. 지구촌은 1년간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새해를 맞아야 하고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데 큰 기대를 하기 어렵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국제관계도 말입니다.
▲옥-올해 최대의 뉴스는 아무래도 부시대통령의 재선 같습니다. AP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통신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언론들도 모두 부시재선을 톱 뉴스로 선정했습니다. 미국 시대에 미국 대통령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그러나 다른 의미도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부시재선은 우선 테러전쟁을 계속 수행하라는 국민적 소명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유권자들은 부시의 전쟁수행방식에 찬동을 한 것이지요. 강을 건너는 중에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말이 맞은 셈입니다.
지난 대선을 돌아보면 케리는 문제점만 제시했지, 대안을 내놓지 못했지요. 막연히 더 잘 할 수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대안이 없는 비판이 결국 먹히지 않은 겁니다.
▲박-이라크 선거가 잘 치러져야 하고 테러와의 전쟁도 잘 수행돼야 합니다. 표피에 머물지 말고 근원적인 치유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부시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승인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수와 소수의 차이가 미미하다는 점을 지도자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다수결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민심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훌륭한 지도자로 남으려면 말입니다.
▲옥-대선을 통해서도 그렇고 또 영화를 통해서도 그렇고 뭔가 뚜렷한 흐름이 감지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표현이 어렵습니다. ‘christianity’라고 할까요. 그 흐름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 말입니다.
멜 깁슨이 만든 ‘그리스도의 수난’이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복음주의자,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 우파 유권자의 표가 부시 재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요.
이런 면에서 2004년의 대선은 문화전쟁, 가치관의 전쟁이라는 진단이 옳았습니다.
▲권-금년 선거를 도덕성 혹은 가치관 선거로 몰아 부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 미디어들이 급조한 레이블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형제도, 이라크 공격, 빈민층 사회복지 등 개개인의 도덕이나 가치관에 따라 입장이 정해지는 이슈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동성 결혼과 낙태에 대한 찬반을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으로 가르는 잣대처럼 유도한 경향이 있습니다.
▲옥-가치관 전쟁은 진보진영 쪽에서 먼저 일으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에 따른 소송이 계속 됐지요. 거기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자 결혼권을 인정하라는 무브먼트가 확산됐지요.
이에 대한 보수진영이 반발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내 흐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보수로의 방향성을 다시 확인한 것이지요. 그 구체적 결과가 부시재선에, 연방의회 공화당 다수의석 차지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우향우’의 흐름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박-부시는 선거 결과를 ‘정치적 자산’ 확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움켜 쥔 정치적 자산을 십분 활용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자신이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유권자들이 위임한 권한을 충분히 이용해 국정을 펴는 것은 지적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민주제도에서 선출된 지도자는 다수의 횡포의 부작용을 헤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자신을 지지한 다수와 자신을 반대한 소수의 격차가 미미할수록 조화와 균형의 묘를 살려야 합니다.
▲민-이번 대선은 상식적으로 보면 부시에게 유리한 점보다는 불리한 점이 더 많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대선 결과를 좌우해 온 경제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고 일자리도 대공황 때인 후버 대통령이후 처음 줄어들었습니다. 부시 일생일대의 도박인 이라크 침공도 대량살상 무기가 나오지 않은데다 반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아부 그라이브 포로 학대 사건까지 터져 부시에게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성연애 결혼 반대 헌법 개정안을 들고 나와 기독교 보수파를 자극한 칼 로브의 공이 컸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권-선거가 접전이라는 것은 국론의 이분화를 의미하겠지요. 실제로 선거 결과 지도를 보면 미국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빨간 주와 민주당 지지의 파란 주로 확연히 나뉘었습니다.
보수 기독교 진영이 공화당을 적극 지지한 것에 빗대어 빨간 주는 ‘예수 랜드’, 파란 주는 미합중국 대신 ‘캐나다 합중국’이라고 이름 붙이는 조크가 인터넷에 떠돌았습니다.
▲박-새해의 최대 현안은 세계 분쟁 종식과 국내 화합입니다. 특히 대선 이후 긴장 상태는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집권자가 하기 나름입니다. 권력을 잡은 그룹이 권력을 잡지 못한 그룹을 끌어안고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화합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민-개표가 시작되면서 최근 들어 사상 최대의 유권자들이 투표를 한 것으로 나오자 이를 반 부시 열기 탓으로 풀이하고 케리에게 유리한 것으로 해석했지만 막상 결과를 보니 딴판이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반 케리 열기가 식자층의 반 부시 열기를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권-미국 대선은 워낙 접전이어서 2000년 대선의 재판이 될까봐 모두 걱정했지요.
선거일 하루동안 여러 번 승자와 패자가 엎치락뒤치락 한 것은 2000년의 재판인데, 패자인 존 케리 상원의원이 너무 끌지 않고 바로 패배 선언을 한 것은 4년 전과 달랐습니다. 대통령을 법정에서 뽑지 않게 된데 대해 국민들 모두 안도했지요.
▲박-그렇습니다. 하기 쉬운 결단을 내린 것은 캠페인 내내 지루한 모습을 보였던 케리의 멋진 피날레였습니다. 비단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인들도 배워야 합니다.
선거 결과에 얼토당토 않은 이유를 붙여 시비를 걸던 구태를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권-부시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시작하며 가장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은 국민 화합이라고 봅니다. 절반의 국민들은 그의 대통령직 수행 방식과 방향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 심하게는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집권 1기에 밀어 부쳤던 일방주의를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이제는 거두어 들였으면 합니다.
▲민-’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가치관’을 들고 나와 이기기는 이겼으나 부시 2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존슨, 닉슨, 레이건, 클린턴 등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볼 때 부시의 이번 승리는 신승에 가깝습니다. 1억 수천만 명이 투표한 이번 선거에서 오하이오 주 12만 표의 행방이 백악관의 주인을 결정했습니다.
현직과 압도적인 선거 자금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총 표수는 백중세에 가까웠습니다.
나머지 임기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부시에 반대한 절반을 끌어안는 포용력을 보여야 할 텐데 지난 4년을 비춰 보면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북한 핵 위기에 한·미 갈등까지 겹쳐 격랑
편가르는 ‘코드 정치’ ‘파당 의회’에 민심이반
대통령 탄핵, 수도 이전 공방으로 국력 소모
<12면에서>
▲권-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을 보면 대개 집권 2기가 순탄치 못했어요. 가까운 예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에 끌려 다니다가 탄핵까지 받을 뻔했지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역시 첫 4년 동안은 과감한 세금 감면, 예산 삭감, 경기 활성화를 이루며 승승장구했지만 2기에 들어서서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에 휘말려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직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스트레스 많은 직책을 두 번째 맡고 나면 아무리 철인이라도 지치게 마련이고, 각료들 역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우선적으로 골라 쓰다 보니 2기 때가 되면 1기 때만 못해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지요. 부시대통령의 집권 2기는 어떨지, 국민들이 편안하게 잘 살수 있는 정치가 펼쳐지기만을 기대합니다.
▲민-더군다나 집권 2기는 전통적으로 위험한 시기입니다. 레이건의 이란-콘트라 스캔들,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이 모두 2기에 터졌고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쫓겨났습니다. 부시도 전임자들의 선례를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권-부시 대통령 집권 2기 출범이 희망차려면 이라크 사태가 빨리 진정되어야 할 텐데 들려오는 소식들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저항세력이 미군 기지까지 공격해 미군 20여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했다는 소식이 며칠 전에도 들어왔습니다.
미군 기지 내 군인들의 안전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미국이 어떻게 1월 이라크 총선 현장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사방에 할 일이,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업무수행 능력에 따라 그만큼 빛날 수도 망가질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1기 때보다는 보다 신중하게, 과정에 잘못이 발생하면 즉각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 잡는 ‘큰 정치’를 기대합니다.
▲권-국민화합을 위해서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합니다. 미 국민들의 가장 주된 관심 이슈는 테러와의 전쟁과 경제가 되지 않을까요? 테러와의 전쟁 연장선상에서 벌인 이라크 전쟁을 어떤 식으로든 수습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많은 군인들, 그 많은 물자를 쏟아 붓고, 그 많은 이라크 국민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미국이 그 땅에서 이루려는 것은 무엇인지 분명하고 현실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합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국민들의 공감대가 넓어질 테지요.
▲박-이라크에서 선거를 치르는 일보다 그 후유증을 슬기롭게 치유해 나가는 청사진이 더 중요합니다. 총포가 울리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결과가 과연 이라크 국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항세력에게 새 정부를 비토하는 구실을 줄 지 염려됩니다. 밀어붙이기 식은 올해로 마감했으면 합니다. 애당초 명분 없는 전쟁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로 사후 합리화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 이유라면 좀 더 진지하게 이라크 정국을 수습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권-미국의 예산 적자와 무역 적자는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하는 데 이렇게 빚더미에 올라앉아서도 경제가 나아질 수 있는 것인지 서민으로서 걱정입니다. 부시 행정부의 세금 감면 정책이 당장은 고맙지만 그 때문에 더 커진 예산 적자를 우리 아이들 세대가 고스란히 떠 안을 테니 좋아할 일만도 아닙니다.
전쟁하느라 지출은 날로 늘고 거둬들이는 것은 줄이니 적자폭이 늘 수밖에 없지요. 무역적자 폭은 하루에 20억 달러 수준이라고 합니다. 해결책으로 도입한 것이 약 달러 정책이지요. 달러가 싸져서 수입 물품 가격이 오르면 미국 소비자들이 외국산 물건을 덜 사게 되고, 반대로 미국산 수출 가격은 낮아져서 외국 소비자들이 미국 상품을 많이 사게 되면 무역 적자폭이 줄어든다는 이론인데 얼마나 실효를 거둘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옥-부시재선은 테러전쟁은 물론이고 한반도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리라고 봅니다. 이미 짜여진 2기 내각의 면면에서 그걸 감지할 수 있지요. 네오콘이 전면 배치된 게 그래요. 북한에 대한 보다 강경한 노선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그 시그널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됩니다. ‘새 미국의 세기 프로젝트’(PNAC)의 위원장인 윌리엄 크리스톨이 대선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북한의 정권교체쪽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을 워싱턴의 여론 주도층 인사들에게 보냈지요. 한마디로 북한의 정권교체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그 메시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미국 정치보다 더 한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아수라장인 한국의 정치판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의석 수만을 믿고 시시껄렁한 이유로 탄핵을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총선에서의 참패였습니다. 헌법 재판소도 탄핵이 잘못이라는 판결을 내려 여당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한국의 탄핵 사태는 한나라당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옥-‘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2004년의 정치’라고 했던가요. 한 국내신문의 사설 제목입니다. 정치적으로 아주 끔찍한 한 해였다는 지적입니다. 오죽했으면 한 해를 마감하는 사자성어로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선정됐겠습니까. 파당정치, 오만의 정치의 극치였던 셈입니다.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가 빚어낸 한심한 정치 행태라고 봅니다.
▲박-임기 반환점에 이른 노무현 정부가 그 동안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미숙함에서 벗어나는 해가 됐으면 합니다. 반대파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는 어렵지만 지지자들이 내 곁을 떠나기는 쉽습니다. 그것이 정치의 생리이며 현실입니다.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상당수 유권자들이 정책에 불만을 품고 하나둘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를 직시해 이들을 품어야 합니다.
▲옥-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앞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됩니다. 한국정부는 미국, 특히 네오콘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 강경 드라이브를 걸 때 한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됩니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일본이 한 배를 탔고. 한국은 중국, 북한과 라인업을 이룬 것 같이 보입니다. 그게 국내정치에만 국한된 문제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 걱정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나요. 북핵 문제로 누구와 얼굴 붉힐 일이 있으면 기꺼이 얼굴을 붉히겠다고. 미국 내 보수 강경파인 네오콘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지요. 그런데 어디 네오콘에게만 얼굴을 붉혀왔습니까. 미국과의 관계 전체가 내내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한미동맹관계가 붕괴된다는 우려가 나온 판이니.
▲권-탄핵이 가결되고, 그것이 친노 민심에 불을 붙이고, 예상외로 강력했던 국민들의 반발에 놀란 한나라당·민주당 측이 자성하는 모습, 혹은 최소한 제스처를 보이고, 직무 정지 당한 노대통령도 조용하게 때를 기다리던 그때가 어쩌면 한국 정치계가 그중 봐 줄 만한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열린 우리당 측이 기고만장했던 측면이 있기는 했지요.
▲옥-지난 한 해의 한국정치는 파행의 연속 같습니다. 사상 초유로 대통령이 탄핵된 게 그렇지요. 그리고 뒤이은 선거에서 우리 당이 다수당이 된 것도 그렇지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여론의 흐름입니다. 거기다가 과거사를 규명한다, 보안법을 없앤다. 수도를 옮긴다 계속 극한 처방밖에 없었습니다.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는 모습도 걱정입니다. 가이어 주한독일대사가 한 말이었던가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고 있으면서도 독일은 미국과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라크에 3000여 병력을 파견하고도, 소원한 관계에 있다고요. 한마디로 안으로는 이념과잉상태에서 분열과 갈등만 노정 시키면서 밖으로는 고립된 모습입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민-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열린 우리당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줬습니다. 탄핵과 관련된 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더니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오자 “재판관을 탄핵하자”느니 “재판관과 법리 논쟁을 하자”느니 헌법 재판소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재판소면 아예 처음부터 없애자고 할 것이지 결과를 놓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태도는 치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박-두 차례에 걸친 헌법재판소 판결은 한국인들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단 심판대에 올려지고 그 심판대에서 결정이 내렸을 땐 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 깨기’로 점철된 우리의 굴곡 많은 역사는 이 교훈을 뼈 속 깊게 간직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민-열린 우리당과 한국 지식인 계급의 도덕적 천박성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언론 개혁법입니다. 독자가 많은 신문을 ‘시장 지배자’로 규정, 법적 제약을 가하겠다는 발상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 ‘국가 보안법’이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며 철폐를 주장하는 소위 ‘리버럴’을 자처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입도 뻥긋 하지 않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용 언론으로 존재해 온 ‘공영 방송’이 국민들로부터 시청료를 강제로 징수해 가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언론 개악법’과 시청료 강제 징수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은 언론 자유국으로 불릴 자격도 없고 지식인들도 국민의 양심을 대변하는 척 하는 일은 삼갔으면 합니다.
▲옥-내년은 해방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 갑자를 맞는다고 할까요. 한반도정세에 내년이 뭔가 고비가 되는 해가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북한에서 국가해체진행의 징후들이 포착돼서입니다. 고구려사를 삼키려는 중국의 동북아공정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북한 붕괴에 대비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허드슨 연구소의 마이클 호로위츠도 그 가능성을 이야기했지요. 그는 일단 김정일 체제는 현재 무너지고 있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진단했어요. 그러면서 중국이 김정일을 제거하고 북한체제변화를 꾀하면 한국은 비극적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를 했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속령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 경우 미국과 ‘얼굴을 붉히는 관계’에 있는 한국이 과연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박-한반도는 훈풍보다는 삭풍에 익숙합니다.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웬만한 역경에는 이골이 난 게 한민족입니다. 새해 한반도를 휩쌀 것 같은 격랑을 잘 헤쳐나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또 그렇게 돼야 합니다.
▲옥-한국의 현 집권세력이 그런 변화에 대응할 역량이 있는지, 또 준비는 돼 있는지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좋은 일만 있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민-노무현 대통령도 내년이면 집권 2기를 맞습니다. 2007년은 대선 준비로 다 간다고 보면 실제로 일 할 수 있는 기간은 내년과 내 후년 밖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는 특정 정파의 대표가 아닌 모든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대국적인 정치를 펼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정리-박봉현 편집위원>
참석자
옥세철 논설실장
민경훈 논설위원
권정희 논설위원
박봉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