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왜곡, 그냥 둬야 하나
한국은 미국에게 ‘먼 나라’면서 ‘가까운 나라’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오랜 우방이다. 교류 활성화로 지리적 간격이 좁아지는 듯하지만 미국인들의 한국지식은 기대치를 밑돈다. 온존하는 한국사 왜곡 현실이 이를 드러낸다.
“위기 땐 속임수로” 민족성 폄훼 웹사이트
교과서에도 오류… 청소년에 부정적 영향
시정촉구 동시에, 달라진 위상도 홍보해야
북한 핵 개발 프로그램이 부각됐던 올 여름께 CNN 방송의 저녁 뉴스 ‘루 답스’(Lou Dobbs)에서 하루 주요 소식들이 쏟아졌다. 이날 앵커는 휴가간 루 답스를 대신해 여자로 대체됐다. 평소 자주 등장하고 보도도 알차게 했던 이 여자 앵커는 ‘땜 빵’이란 인상을 주지 않고 청산유수로 거침없이 진행했다.
약 5분 정도 지났을까. 북한 핵 문제가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등장했다. 그런데 이 앵커는 ‘남한’(South Korea)의 핵 문제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North’를 ‘South’로 뒤바꿨다. 그것은 도입 문장이었다. 상당수 시청자들이 헷갈릴 수 있었다. 사소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해프닝이지만 전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방송의 앵커가 주요 소식의 도입 부분을 엉터리로 시작한 것은 가벼운 실수로 넘기기엔 석연치 않다.
얼마 후 ‘헤드라인 뉴스’에서 한국 문제를 다루었다. 한반도, 북 핵 문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대응자세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소식이었다. 화면 우측 상단에 한국 대통령의 얼굴사진이 떴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성이 같고 미국인의 눈에 한국인 얼굴을 구별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나라의 수반을 다루는 기본자세라고 할 수 없다.
NBC 방송은 지난 아테네 올림픽 웹사이트에서 한국을 소개하면서 공용어가 한국어와 영어라고 했고 영문국호는 ‘Republic of South Korea’라고 일러주었다. 고의성은 없었겠지만 지구촌이 주목하는 올림픽 경기에서 이런 오류가 발생해선 곤란하다. 여론 주도층의 ‘작은 실수’는 올바른 한국을 심으려는 노력에 ‘커다란 수고’를 요구한다.
그래도 잘 모르고 범한 것이라면 ‘귀엽게’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와 민족성을 논할 때 몇 가지 사례로 전체를 일반화 하든가 평가절하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에서 새우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한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해도 실제 이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비유된다면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미 국방부 한국전 기념 웹사이트에서는 “한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침략 당하고 합병되며 식민지화했다. 고래들 사이에 낀 새우”라고 했다. 이 웹사이트는 교수는 물론 학생들도 들락날락하는 곳이다. 호프스트라 대학의 온라인 교재도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한국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를 새우라고 부르면 몰라도 남들까지 우리를 새우라고 부르는 것은 여간 기분 상하는 일이 아니다. 어찌됐든 ‘한국=새우’란 비유는 21세기 한국에 적절하지 않다.
만주지역에 펼쳐졌던 고구려의 기개, 일본과 중국에 끼친 백제의 문화, 장보고를 필두로 동북아시아 무역에 눈을 뜬 통일신라의 역동성, 실크로드를 통해 아라비아와 무역을 했던 고려의 개척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침탈, 굴욕의 역사에 덮여버렸다.
부적절한 비유를 들어 우리의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는 분을 견딜 수 없다. 유엔의 정책결정 과정을 주시하는 세계 정책포럼(Global Policy Forum)의 웹사이트는 “한민족은 그들의 역사를 통해 생존을 위해 정면 승부를 벌이기보다는 교묘한 속임수를 써왔다. 북한이 핵 프로젝트를 인정한 것도 위협이 아니라 속임수의 한 실례에 불과하다”고 해석했다. 북한의 행동을 한민족의 민족성과 문화로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획일화다. 한민족 전체를 매도한 것이다.
지적 형성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과서에 한국 관련 사실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면 그 폐해는 장기적이고 지대하다. 미국 고교 교과서에서 발견되는 오류들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LA 총영사관이 캘리포니아 역사 교과서 12종을 분석해 발견한 왜곡 내용은 다양하다.
이들 교과서에서 두드러진 오류는 본문과 지도에 ‘동해’를 빠뜨리고 ‘일본해’로만 기입한 경우다. 이는 고교 교과서뿐 아니라 대학 교재에서도 등장한다. 의도성 여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미국의 ‘일본 편애’는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전과 관련해서는 참전국 수를 잘못 계산했다. 참전국이 모두 16개인데 일부에서는 14개, 다른 곳에서는 15개, 17개 등으로 적었다. 지그재그인 ‘휴전선’을 일직선인 ‘38선’으로 표기해 혼선을 빚기도 했다. 남의 나라 역사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약소국으로 여겨 그랬는지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없다.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한 것을 중국의 한반도 식민지화로 표현하고, 14~17세기에 한반도가 명나라의 영토였던 것처럼 잘못 표시했다. 일본의 야마토 왕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내용은 일본 교과서의 근거 없는 ‘임나일본부설’을 원용한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통치 시작이 1910년인데 1904년 또는 1919년 등으로 기록했다. 남북관계를 대화나 무역거래가 없는 관계로 그려, 활발하진 않지만 대화나 무역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미 전역의 중등학교 교과서에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속국인양, 아직도 가난해 찌든 후진국형 농경국가인양 기술돼 있는 경우가 있다. 미국 교과서들에 나타난 한국사 왜곡은 일본이나 중국을 통해 왜곡된 내용을 검증 없이 옮긴 데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특히 일본 역사 교과서에 잘못 기술된 부분이 지난 수십년간 세계에 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 한국 정부가 시정 노력에 게을리 해 역사 왜곡을 방조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이 성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의 위상에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잘못된 부분은 관계 당국에 시정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바로 잡는 작업과 함께, 한국 문제를 취급하면서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이는 게 필요하다. 사후약방문보다 유비무환의 자세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공관들이 미주지역을 총괄하는 전담반을 구성해 유기적인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한인들도 가만히 앉아 지켜만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자녀의 교과서를 들추어보고 한국사 왜곡부분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바로 잡아주고 영사관 등 관계기관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그릇된 정보를 갖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물며 우리 자녀들이 ‘왜곡된 한국’에 노출된다면 어떻겠는가.
박 봉 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