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각양각색의 개성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또는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다양성이 있게 어우러짐이 좋고 훈훈한 인정과 대화가 있어 활기를 준다. 요즈음처럼 송년회로 모일 경우에는 오랜만에 만나게 되기에 더욱 부산하고 할 말이 많다. 모임이 시종 화기애애하게 끝나는 때도 있으나 때로는 불쾌감을 어쩌지 못하는 때도 있다.
오랜 인생의 삶 속에서 걸러진 지혜로 시종 주위를 밝고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가 그 자리에 있으므로 해서 분위기가 경직되고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말이 인격인데, 남의 말에 아랑곳없이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에 흠집을 열심히 내면서 자신은 그만도 못한 사람을 본다.
성격이 원만치 못하여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다에서 인간적으로 소외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무심히 앉아 있는 사람의 표정이 그의 속마음과 일치한다. 늘 엷은 미소가 잔잔한, 평화스런 모습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세상 고통을 다 짊어진 듯 지치고 힘든 얼굴, 무언가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성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무의식 속에서 어떤 표정과 행동으로 나 자신을 보이고 있을까. 혹시 내가 참석하므로 좋았던 분위기를 깨뜨린 적은 없었나. 내 행동에 모난 구석은 없었나, 본의 아니게 남에게 혐오스런 인상을 준 일은 없었나 새삼스럽게 되새겨 진다.
며칠 전, 저녁나절에 걷기 운동을 하던 도중 골목길을 건너가게 되었다. 마침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듯한 어느 중년 부인의 차가 골목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부인에게 먼저 통과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때 그분은 입을 다문 채 머리를 약간 옆으로 숙여 예의를 표했다. 부인의 환한 미소가 무척 우아하게 보였다. 정중한 태도로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준 미소가 어찌나 깊게 와 닿는지 나는 그 부인의 인격이 매우 고상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겪어보지 않은 채 상대를 가늠하는 눈금이 무엇이겠는가. 품위를 곁들인 예절바른 행실, 우리는 이런 것에서 범할 수 없는 기품을 느끼며 우리 스스로의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나의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말과 행동과 사상이 인격을 이루고 여기에 교양이 더해져서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은연중에 배어 나올 때 나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을 숭고하게 만드는 것은 맑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기에 앞서 내가 나에게 반듯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겸손으로 자신을 절제하며 매일 매일 모난 구석을 다듬어갈 때 마침내 윤기 있고 반듯한 다른 모습의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을 열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이 계절, 그가 있으므로 화기가 돌고 웃음꽃이 피며 무언가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라도 갖게 하는 사람.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누구에게나 신뢰를 주는 사람. 삶 속에서 항상 여유를 잃지 않아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줏대가 뚜렷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 소박한 인정을 나누며 헤어진 후에도 여운을 남기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정의 교류와 관계가 빈번해지는 세모에는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더욱 숙고하며 다시 한 번 나의 가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유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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