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터에 거주하는 40대 한인남성이 방 안에서 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신효섭 기자>
성큼 다가온 겨울, 노숙들을 찾아-르포
LA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남가주를 엄습한 한파로 일부지역은 지난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등 겨울날씨는 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추위를 피해 하룻밤 지내려고 홈리스 셸터를 찾아가 보지만 침대부족으로 다시 길거리로 내몰리기 일쑤. 악명높은 빈민촌인 다운타운 ‘스키드 로우’(Skid Row)와 오갈데 없는 한인들이 의지하고 있는 타운내 한인운영 셸터등을 찾아 첫 추위에 떨고 있는 홈리스들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셸터기거 한인 10여명
희망 없는 나날
커뮤니티의 관심 절실
쌀쌀한 아침바람이 불어닥친 지난 30일 오전 8시. 노숙자 밀집지 5가와 로스앤젤레스 스트릿 근처. 흑인, 백인, 라티노, 아시안 등 모든 인종을 망라한 노숙자들이 골목마다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해가 높이 떴는데도 길바닥에 엎드려 누워있는 사람, 박스 안에 들어가 새우잠을 청하는 사람, 행인을 붙잡고 단돈 1달러라도 뜯어내려고 애쓰는 사람-.
기자가 지나가자 40대 흑인 노숙자가 다가와 “동네를 돌아다니려면 돈을 내야 한다”며 텃세를 부린다.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손에 쥐어줬더니 “갓 블레스 유”라고 인사한 뒤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두어 블럭 정도 떨어진 ‘LA미션’.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이 알려진 노숙자 구호기관이다. 정문 앞에서 70세 전후로 보이는 한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 노인은 “지금은 타운인근 노인아파트에 살지만 약 2년간 미션을 들락거리며 노숙자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노숙자 선교단체들이 추산하는 다운타운 노숙자는 줄잡아 수 천명. 이중 한인은 다운타운과 한인타운을 포함, 10여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다운타운 노숙자 구호기관은 LA미션을 포함해 7~8개에 달하지만 불어나는 노숙자 모두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기에는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노숙자 셸터인 ‘이미지 센터’의 실비아 로자노 매니저는 “365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매일 밤 400명 가까이 몰려들어 수십명은 돌려보내야 한다”며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30일 아침 다운타운 빈민촌인 ‘스키드 로우’에 늘어선 노숙자들.
거리선교회 홈리스 셸터에서 김수철(뒷줄 가운데) 목사가 한인 홈리스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효섭 기자>
“하루하루 근근이…” 셸터서 자살시도도
타운 ‘거리선교회’수용 한인들 사연도 다양
오전 11시. 타운 올림픽과 후버 인근 ‘거리선교회’(대표 김수철 목사) 홈리스 셸터. 2,500 스퀘어피트는 됨직한 꽤 큰 규모의 2층집 내부는 깨끗하게 정돈돼 있다. 1층엔 남자방과 서재, 식당, 부엌, 화장실, 뒤뜰 등이 있고 2층엔 여자방과 화장실, 창고 등이 있다.
셸터 신세를 지고있는 한인남성 A씨(45)와 B씨(49)로부터 사연을 들었다. A씨는 불법택시를 하다 경찰단속에 걸려 벌이가 끊긴 불체자, B씨는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해오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 찾아온 이혼남이었다.
A씨는 “체류신분 때문에 언제 추방될지 몰라 불안하다”며 “할 줄 아는게 택시운전밖에 없어 기회가 되면 다시 불법이라도 택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얼굴에 절망의 그늘이 깊은 B씨는 “나이가 너무 많아 뭘 해야할지 막막하다”며 “마켓에서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현재 선교회 셸터에 거주하는 한인 홈리스는 30~60대 남자 6명, 여자 3명으로 지난 4년간 35명정도의 한인 노숙자가 이 셸터를 거쳐갔다. 남자들은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 실직자, 중풍 병자, 우울증 환자가 대부분이며 여자는 타인종과의 결혼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수철 목사는 “셸터에 기거하는 동안 자살을 시도하거나 몰래 노름을 한 경우도 있으며 내노라하는 명문대 출신도 있었다”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홈리스들에게 한인들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셸터문을 나서는 취재진에게 다시 만나자며 손을 흔드는 A씨와 B씨의 표정은 그래도 어둡기만 했다.
<구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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