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수) 오전 6시20분을 조금 넘어 기호 2번 이석찬 후보는 눈을 떴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표밭갈이로 몸과 마음은 적이 지쳤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평소와 별반 다름없었다.
세면을 하고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자택으로 배달된 신문을 훑어보는 동안 약 30분이 흘러갔고, 부인 이은영씨가 차려놓은 커피 한잔과 토스트 몇조각이 식탁위에서 그를 기다렸다. 오늘 하루도 좋은 결과를 보게 해달라고 어제처럼 아무일 없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딸 수지도 공부 잘하고 열심히 뛰는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감사기도를 드리고 토스트를 배어무는 참에,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김응배 사장으로부터였다.
의례적인 아침인사와 오클랜드 노인아파트를 도는 문제 논의, ‘후보로서 시작한 첫 일과’는 이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이 후보 부부는 밴을 타고 집을 나섰다. 그들 소유 한미백화점으로 가는 길에 7시45분쯤, 딸 수지양을 테일러중학교 앞에 내려주는 일은 평소 그대로였다. 내리면서 아빠 파이팅, 오늘 하루도 열심히 뛰세요라고 씽긋 웃어주는 딸에게 그래, 수지도라고 맞받아준 것이 다르다면 다른 풍경이었다.
차창에 이 후보의 벽보가 붙은 밴이 백화점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 순간, 부인 이은영씨의 ‘차중 브리핑’이 시작됐다. 신문에 이런 게 났더라, 인터넷에 보니까 저런 말이 나돌더라 등등. 그때 또 전화가 걸려왔다. 김00 회장이었다.
백화점 도착은 8시40분쯤. 그로부터 약 40분동안 그는 다시 ‘후보에서 백화점 사장으로’ 되돌아갔다. 비뚤어진 물건은 바로잡고, 엉뚱한 데 놓인 물건은 제자리로 갖다놓고, 휴지와 쓰레기를 줍고….
손님맞이 채비를 대충 끝낸 그는 자신의 벽보를 한뭉큼 집어들고 나가 부근 00비디오점, 00카페 등 여기저기에 손수 붙였다. 항상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에다 마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타고난 수줍음을 어쩔 수 없는지 그는 간간이 마주치는 안면있는 사람들이 덕담을 건네도 낮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되받거나 특유의 엷은 미소로 답할 뿐.
어느덧 낮 12시. 인근 S반점에서 열리는 북가주재향군인회 기자회견장을 찾은 그는 역전의 용사들에게 연신 고개숙여 인사하고 읊조리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도와주십시오….
30분뒤 SF다운타운 명동갈비. 20여명의 식사모임에 들른 그는 역시 같은 자세 같은 말로 지지를 부탁하고는 오클랜드 서울식당에서 예정된 ‘표밭 오찬’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베이브리지를 건넜다. 오후 1시10분쯤 도착. 그는 비로소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숨을 돌리며 30여명과 점심을 들었다.
코리아나플라자와 삼원회관 사이 선거대책본부에 들어선 것은 오후 2시30분쯤. 오미자·전일현 공동선거대책본부장 등 참모들과 함께한 약 1시간가량의 비공개 전략회의 뒤, 기자와의 ‘반짝 인터뷰’는 다시금 전화벨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Hello? Which car? My car? Five hundred dollars? Uhoh, I think you got the wrong number.(여보세요? 무슨 차요? 내 차라고요? 500달러요? 어어,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네요.)
늘 웃어야 하고 늘 고개를 숙여야 하는 ‘후보다운 표정짓기’가 조금은 어색해보이는 그가 모처럼 하얀 얼굴보다 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게 만든 것은 뜻밖에도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가요 가, 늦으면 안돼요, 가야 돼요.
오후 3시55분. 놔주지 않는 기자를 뿌리치지 못한 채 대답을 잇던 이 후보는, 속타는 표정으로 먼저 문쪽으로 향하며 던진 이정순 전 한인회장의 독촉을 듣고서야, 기자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주섬주섬 따라나섰다. 대기중인 밴은 벌써 시동이 걸려 있었다. 상황이 그래선지 별로 크지도 않은 엔진소리도 성화가 복받친 소리처럼 들렸다.
어디로 가요? 유니온시티요, 4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거… 누구 만나요? 아는 목사님이요. 어느 목사요? 이름은 좀…
그러나 밴은 이미, 설령 대답을 해줘도 들을 수 없는 거리로 줄달음쳤다. 오후 5시20분쯤 샌프란시스코에서 젊은 코리안 열댓명과 만나고, 표 주인들과 저녁식사를 들며 지지를 호소하고, 식사뒤 다시 유지나 유권자들을 일대일로 혹은 그룹으로 만나는 등 이 후보의 ‘조용한 강행군’은 계속됐다. 그가 자주색 계통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짙은 곤색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믿음직한 남편으로, 다정한 아빠로 되돌아간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정태수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