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병 속에서 자유 함을 얻고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떠난 지 어느새 반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따금 나는 꽃을 사들고 그의 무덤엘 간다. 그곳에는 고별 예배 때 그의 잠든 몸을 매장했음으로 그곳에 그의 흔적이 있다는 약속 때문에 그곳에 간다.
그의 무덤을 향해 차를 몰면서 생각한다. 그가 내게서 죽음의 이름으로 떠나갔다는 것이 내게는 진실로 만회할 수 없는 “상실”이고 “결함“인가 하는 것을 말이다. 물론 죽음이란 누구와도 더불어 할 수 없는 고독한 사건이며 남겨진 자에게도 그만한 분량의 고독을 끼치고 가는 것이 사실이다. 난 다만 이젠 그가 가족 곁에 없고, 식탁 맞은편도 비어 있으며, 침상도 비어 있고 그의 모습을 벽에 걸린 사진으로밖에 만날 길 없다는 사실이 꼭 상실이고, 고독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상실도, 결함도, 고독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저 분리이며, 거리이고, 짧은 이별일 뿐인 것이다. 이것은 물론 완력을 다해 밀어붙이는 슬픔과 상실감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닌 신앙생활을 통해 배운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의 이행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아 돌이 가까울 무렵 40세 중반 나이에 시숙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후 시댁 쪽 남자들은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한결같이 인생이란 배에서 일찍 하선들을 했다. 단명한 집안 내력에 남편도 단명하리라는 불안감이 늘 내 속에 갇혀있었지만, 남편은 연구와 책을 벗삼아 외길을 걸어가며 행복해 했고, 무사히 60세를 넘기며 가족들 곁에 있어주어 안도의 숨을 쉬며 감사해 했다. 그러나 한치 앞의 일을 모르는 것이 인생사 라 더니, 그 다음해 그는 혈압으로 쓰러져 자리에 눕게되었고, 6년이란 세월을 투병의 생활로 보내야 했다.
남편과 함께 한 6년 동안, 그 고통의 기슭을 같이 거닐면서 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수십 번의 입원과 퇴원, 수 차례의 수술, 일주일에 세 번씩 받아야 하는 피의 세척, 가슴이 내려앉고 하늘이 노래지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는 투병의 고통을 잘 치러냈다. 가족들이 남편에 병상의 길에 뿌린 시간과 정성을 저 하늘의 구름만이 알았으리라. 그러나 가족들의 기대하는 마음과 달리 그는 점점 질병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살아있는 일이 즐거움이나 축복도 아닌 어린애처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원초적인 본능에 의지하며 지내게 됐다. 날로 병이 깊어 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건강한 몸으로 마음껏 나들이하는 내 또래의 부부들을 부러워 한 적도 많았다. 함께 지쳐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눈물 짖던 고통스런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의 생존은 가정을 이끌어내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꽃피는 4월에 그는 세 딸을 내게 남기고 67세의 나이로 지상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6년 동안 존재를 다해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죽음의 모습은 너무 우아하고 평화로운 귀족의 모습으로 떠난 것이었다. 그 기품은 그의 신앙이 주님에 의해 죽음을 뛰어 넘어 승리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사람이 가장 어려운 일은 굶는 일이고, 가장 슬픈 일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괴로운 일이 자기의 건강을 잃는 일이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이 세 가지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그는 우선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굶는 일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고, 앓는 것도 나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것은 내 생명과 같이 하게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슬픔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런 사별의 슬픔은 나만 당하고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었다. 이제는 환하게 웃으며 지난날의 회상을 현실 속에 접목시키며 보석처럼 아름다운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나는 이따금 꽃을 사들고 그의 무덤엘 가지만, 그는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가슴에 묻혔고, 묻혀서도 부드럽게 숨쉬고 있다. 지금은 그와 함께 한 병상의 생활을 아무런 회한 없이 그리워하며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기도 속에서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내 마음에는 안정과 평화의요함이 가만히 스며든다.
김영중
약 력
▲크리스찬 문학 입상 창조문학등단
▲재미수필가협회이사장
▲순수문학상,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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