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이 물러났다. 라이스가 들어섰다. 아미티지도 물러난다. 그 자리에는 볼튼이 기용된다는 소문이다. 미 외교의 총본부, 국무부의 1인자와 2인자 모두가 바뀐다는 이야기다.
안보보좌관도 교체됐다. 라이스가 국무부로 자리를 옮겼으니 당연한 후속인사다. 후임 보좌관은 체니 부통령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는 스티븐 해들리다.
CIA는 마치 벌집을 쑤신 것 같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주요 파트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아웃’되어서다. 조용한 곳은 국방부뿐이다. 럼스펠드도, 월포위츠도 모두 건재하다.
W. 부시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불고 있는 인사 바람이다.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건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두 주가 지났다. 그런데도 화두는 여전히 ‘부시가 어떻게 이겼는가’다. 경제도 아니고, 테러전쟁도 아니다. 이슈는 도덕적 가치관이었다. 미국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독교 우파가 나선 덕에 부시가 승리를 했다.
이 지적이 진보세력 쪽에서 나올 때는 어딘가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미국은 ‘christian redneck’(기독교도 백인 쓰레기)들이 설치는 신정(神政)체제가 됐고, 이름하여 ‘Jesusland’가 됐다는 식의 비꼼이다.
‘도덕적 가치관이 중요하다’-. 대선의 흐름을 결정지은 이 말의 포인트는 그러나 그게 아니다. 동성애자 결혼권, 낙태 등 국내 아젠다에만 도덕적 가치가 요구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해외정책에서도 도덕적 가치가 중요시됐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국내 아젠다와 테러전쟁 등의 이슈는 각기 벽돌로 볼 수 있다. 도덕적 가치는 이 블럭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시멘트로 보아야 한다는 것.
해외정책에서 요구되는 도덕률은 미국적 가치, 다시 말해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이다. 테러전쟁의 궁극적 목적도 마찬가지다. 이 점을 중요시한 유권자들은 부시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도덕적 가치관을 새삼 끌어낸 건 다름이 아니다. 부시 해외정책팀의 대대적 물갈이가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테러전쟁의 목적은 민주주의의 확산에 있다. 중동·아랍권이 민주화될 때 세계는 평화를 맞는다. 대선 승리 직후 부시가 다시 확인한 대목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때로 일방주의로 갈 수도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해외정책에 있어 도덕적 가치관을 확립한 사람들은 체니, 라이스, 럼스펠드, 그리고 월포위츠, 볼튼 등이다. 거기다가 ‘체니 사단’으로 분류되는 일단의 참모들, 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와 국방부에 포진돼 있는 네오콘들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들은 다른 말로 하면 대선 승리의 공로자들이다. 부시의 제 2기 안보팀 인선은 이 측면에서 보면 그 윤곽이 확실해진다. 선거 승리의 논공행상의 성격이 짙다고 할까. 그런 인상이다.
네오콘의 시대는 끝났다. 대선이 치러지기 전부터 나온 전망이었다. 그리고 재선에 성공해도 부시는 보다 조심스런 해외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었다. 전망과 관측은 그러나 모두 빗나갔다. 네오콘 시대가 끝난 게 아니고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돼서다.
우선 라이스를 보자. 태생적인 네오콘은 아니다. 그러나 9.11 이후 부시와 마찬가지로 세계관이 달라졌다. 네오콘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그녀는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점에서도 부시와 같은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국무부 부장관으로 유력시되는 볼튼은 전형적인 네오콘이다.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에도 역시 네오콘으로 유명한 플레티카가 기용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국무부의 주요 라인업은 모두 하드라이너로 바뀐다.
NSC 진영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조용한 건 이미 강성의 인사들로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럼스펠드가 그렇고, 월포위츠가 그렇다. 앞으로의 관심사는 고령의 럼스펠드가 물러날 때 월포위츠가 그 자리를 승계할 것인가 하는 정도.
이들의 해외정책 우선 순위는 이미 결정돼 있다. 첫 번째가 선거 실시를 통한 이라크 종전 처리다. 팔루자 공격은 그 수순의 일환으로 이미 오래 전에 예정돼 있었다.
두 번째 순위가 이른바 ‘정권교체’(regime change)다. 그 대상은 이란과 북한이다. 그리고 시리아가 새로운 타겟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8월이었나. 국방부의 윌리엄 러티는 이런 말을 했다. 최소한 5, 6개 나라는 문제가 있는 나라라고. ‘악의 축’으로 분류된 이란, 북한 외에도 손 볼 나라가 더 있다는 뜻이다.
반드시 선제공격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네오콘의 전면부상. 한반도에는 어떤 바람을 불러올까.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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