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데일 소방학교에서 훈련 중인 케빈 구 소방 대원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글렌데일 25 소방서’1일 르포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 정적을 찢는 굉음이 글렌데일 노스 셰비 체이스 353번지를 가득 메운다. 연이어 돌아가는 소방차 엔진 소리를 뚫고 한인 견습 소방관 케빈 구(25)씨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남들보다 1시간30분 앞서 소방서에 들어서는 구씨는 매일 아침 소방차와 호스 등의 이상유무를 점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7월 2,591명의 경쟁자를 뚫고 소방학교를 졸업한 구씨는 글렌데일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소방 대원이다.
<글 이석호 기자-사진 신효섭 기자>
‘훈련 끝났다’훈련을 마친 케빈 구 소방 대원이 방그레 미소를 짓고 있다.
한인 신참대원 케빈 구씨
새벽 6시 출근 장비 점검부터
“체력단련도 일과”구슬땀
출동 콜 기다리며 긴장 못풀어
명문 UC버클리를 졸업한 그는 “현장에서 직접 몸을 부딪히며 뛰고 싶다”며 컴퓨터 회사를 박차고 글렌데일 소방국에 똬리를 틀었다.
글렌데일의 유일한 한인 소방관인 구씨를 보기 위해 기자도 이날 하루 ‘소방국 동반근무’를 시작했다.
‘힘 들지만 다리를 돌리고 팔을 올려야 한다.’글렌데일 25번 소방국 대원들은 매일 오전 무거운 역기와 씨름을 시작한다.
오전 7시30분 여명을 깨뜨리며 하루를 책임지는 6명의 소방관들이 바쁜 발걸음으로 소방서로 미끌어져 들어온다. 앤소니 캡틴이 주관하는 짧은 회의를 마친 대원들은 건물 2층 체력단련실에 자리를 잡았다. 3평 안팎의 체력단련실은 금새 굵은 땀방울이 바닥을 적셨다. 구씨는 “무거운 소방 장비를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어야 된다”고 체력훈련의 이유를 설명한다.
‘부르릉, 부르릉’소방차는 오전 10시가 돼서야 기지개를 켰다. 글렌데일 소방학교로 훈련을 나가는 소방대원들은 저마다 헤드폰을 머리에 얹고 공중에 떠도는 본부의 무선 통신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25번 소방서 앤소니 캡틴이 실시간 화재 발생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소형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다.
앤소니 캡틴은 “소방차가 글렌데일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조차 신참 소방관인 케빈 구에게는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소방차가 육중한 몸을 띌 때마다 앤소니 캡틴은 케빈 구에게 지나쳐가는 각각 건물에 대해 물으며 화재에 대비한 견습 소방관 훈련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방학교로 들어서자 훈련 중이던 28번 소방서 대원들이 손을 흔들며 동료들을 반겼다. 반가움을 뒤로 한 채 실전을 방불케하는 훈련이 시작됐다. 소방차에서 호스를 이리저리 빼내던 구씨는 “소방차 앞으로”를 외치며 소화전에 성공적으로 호스가 연결됐음을 알렸다. 50파운드의 육중한 소방 장비를 착용하고 날렵한 제비처럼 손과 발을 놀리는 구씨를 보자 매일같이 체력훈련에 여념이 없는 소방관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훈련은 3층 높이의 건물에서 시간당 200갤론을 쏟아 붓는 소방호스의 화력 시범을 보이며 막을 내렸다.
선배들은 점심을 먹고 농담을 즐기는 중에도 구씨는 소화기 재원 교육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교육 시작 전 선배들은 “교육받은지 너무 오래돼서 다 까먹었지”라고 구씨를 안심시켰지만 막상 교육이 시작되자 선배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1시간을 꼬박 채워 노익장을 과시했다.
시계가 오후 2시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지만 출동 콜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심 긴박한 출동을 기대했던 기자의 심정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경력 15년의 셸튼 소방관은 “시원찮은 가짜 소방관이 껴 있는 걸 아나봐”라며 기자를 타박했다.
25번 소방서는 동쪽과 서쪽으로 글렌데일 시청과 하비 드라이브, 남쪽과 북쪽으로 글렌데일 칼리지와 LA경계지역까지 관할하는 글렌데일 소방국 중 가장 분주한 곳이다. 화재 발생율이 높은 만큼 25번 소방서는 화재 예방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후 3시 사우스 버두고(S. Verdugo) 길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의 화재 경보기 등 점검에 나섰다. “‘똑똑’ 안 계십니까” 인기척을 느낀 구씨가 연방 문을 두들겨도 대답이 없다. 앞문과 뒷문을 서성이기를 10여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앤소니 캡틴은 “벌금을 먹을까봐 아무도 없는 척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며 자신들을 낯설게 쳐다보는 사람의 시선이 아쉬울 때가 많다고 털어 놓았다.
오후 5시30분 한 가족처럼 식당에 나란히 둘러 앉은 25번 소방서 대원들의 표정에서 ‘오늘도 불행한 화마의 위협이 비껴갔구나’하는 안도의 빛이 새어 나온다.
해가 지며 25번 소방서의 하루도 저물어 갈까. 천만의 말씀이다. 25번 소방서는 이날 밤 14시간 동안 기나긴 긴장의 세계로 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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