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 군부는 포크랜드 섬을 침공했다. 가혹한 인권 유린과 악화 일로를 걷는 경제로 인기가 추락한 훈타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영국 식민지였던 이 섬을 접수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보겠다는 도박을 한 것이다.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 섬을 점령하는 등 초반에는 군부의 계획대로 일이 돼 가는 듯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불과 300마일 거리에 있고 인구 1,000명 남짓한 이 섬을 되찾겠다고 8,000마일 떨어진 영국이 군대를 파견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총리였던 대처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영국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기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결의를 보였다. 영국이 국운을 걸고 대함대를 보내자 아르헨티나 군은 꼬리를 내리고 부랴부랴 도망쳐야 했다.
남대서양의 자그마한 섬에서 벌어진 뜻밖의 전쟁은 20세기 후반 세계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실정을 만회해 보려고 남은 정치 자본을 모두 털어 도박을 한 아르헨티나 군부는 국민의 신망과 함께 권력을 잃었다. 아르헨티나 군부의 몰락은 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켜 중남미 전역을 뒤덮고 있던 독재가 사라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전쟁은 영국에서도 남미에 못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당시 대처가 추진 중이던 감세, 규제 철폐, 민영화 등 경제 개혁은 더딘 경기 회복과 좀처럼 줄지 않는 실업자 등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소위 ‘대처리즘’은 실패했으며 곧 정권을 내주게 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대처가 아들까지 이 전쟁에 내보내고 영국 해군이 대승을 거두면서 그녀의 인기는 상종가로 치솟고 시장 개혁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자본을 쌓게 됐다. 아르헨티나 군부는 자유 시장 경제체제가 전 세계에 확대되는데 톡톡히 한 몫을 했다.
노벨 경제학 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는 강의 시간에 ‘세계 경제 자유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영화는 무엇인가’ 하는 숙제를 종종 낸다. 그에 따르면 정답은 로버트 드니로와 조디 포스터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다. 존 힝클리는 이 영화를 보고 포스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레이건을 저격했다. 저격당하고도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의사가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다”고 농담하는 등 침착한 모습을 보인 레이건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이것이 감세와 규제 완화를 기조로 한 레이거노믹스 정책이 실현되는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재집권에 성공한 부시 대통령은 제2기 구상을 설명하는 기자회견 장에서 “소셜 시큐리티와 세제 개혁에 대선 캠페인 중 축적한 정치 자본을 쓰겠다”고 밝혔다. 아닌게 아니라 이들은 국내 현안 중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소셜 시큐리티 개혁안 중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칠레식 모델이다. 1981년 개인이 투자종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은퇴 기금을 민영화한 칠레는 가장 모범적으로 연금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다. 칠레 국민 95%가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고 있으며 만족도도 매우 높다.
미국 소셜 시큐리티의 연 수익률은 1% 남짓인 반면 칠레 국민들은 개인 은퇴 구좌를 통해 연 11%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그 결과 국민소득은 미국의 1/5에 불과한 칠레 은퇴자들은 미국 노인들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달 받아가고 있다. 칠레 모델의 성공이 널리 알려지면서 남미 7개국이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폴란드 등 동유럽 각 국까지 이를 따라 배우고 있다.
특정 기업과 로비 그룹을 위한 특혜로 가득 차 있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미국의 세금 제도도 반드시 고쳐야 할 개혁 대상이다. 매년 미국인들은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세법을 뒤적이며 세금 보고에 60억 시간 이상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슈는 유세 기간 중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출구 조사 결과는 동성 연애 결혼과 낙태 반대가 오히려 경기와 이라크 전쟁을 능가하는 유권자들의 관심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통상 재선은 경제와 외치 등 대통령의 4년 간의 업적에 대한 평가인데 이번에는 엉뚱한 이슈가 결과를 좌우한 것이다.
이라크 사태가 풀리지 않고 사상 최고의 연방 재정적자, 후버 이래 처음 일자리 감소를 초래한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부시는 동성 결혼반대 헌법 개정안을 내걸어 기독교도 등 사회적 이슈에 보수적인 지지층을 자극, 재집권에 성공했다. 과연 그가 이렇게 축적한 정치 자본을 미국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는데 쓸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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