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창 밖을 보니 맑고 투명한 햇살이 가득히 와 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베란다에 시선이 간다. 가을이 짙어 갈수록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화초들도 추워 보인다. 언제나 그 자리에 하얗게 맑은 햇살을 안고 있는 의자의 모습이 오늘도 그대로 있다. 제법 멋 부려 디자인 해낸 플래스틱 의자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의자이다. 간이 음식점이나 쉼터가 있는 곳이면 흔히 있기에 낯설지가 않다. 우리 부부가 미국에 오기 전, 시간이 나면 찾아가는 숲 속에 찻집이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은근히 기다리며 반기던 하얀 의자, 그와 똑같은 의자가 우리 집 베란다에 마주보며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국으로 떠나기 전날 석별의 아쉬움을 나누며 차를 마시던 분위기는 그대로 그 곳에 남아 있다. 집을 나설 때에도 찻잔을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다짐하던 모습도 선하다. 끼니 거르지 말고 술 자제하라는 말과 그리고 운동 열심히 하라는 아내의 말은 깊은 톤으로 끝을 내었다. 그냥 건성으로 넘겼지만 나를 염려하는 아내의 뜻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고개만 끄덕이었다. 차분히 찻잔을 든 아내의 손마디가 유난히 야위어 보인다. 연민의 정이 느껴 오는 것은 나이 탓인지. 서로 마주한 우리를 편안히 안겨 준 의자는 그 날밤 그 모습 그대로이다. 처음 깨끗한 의자의 자리가 아내가 떠난 며칠 사이 먼지가 쌓여 있고 몹시 지저분하다. 걸레를 가져와 깨끗이 닦아 내었다. 아내가 앉은자리를 더 관심을 두고 닦아 내었다. 티 하나 없이 보들보들 하게 닦아 내었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 같다. 같이 있을 때 느끼지 못한 감정은 은근히 보고싶은 생각뿐이다. 입버릇처럼 성화이던 잔소리까지 따뜻한 정표로 여겨지니 아쉬움에 몹시 마음이 정화되었나보다. 왜 이렇게 바보처럼 가슴이 시려올까. 조금이라도 반듯하고 따뜻이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아내의 바람에는 조금도 틀림이 없다. 의자에 묻어 있는 때를 닦아 내듯이 내 속에 오랫동안 묵힌 때를 씻어 내야 되리라. 아내를 생각해서라도 서둘러야 할 숙제일 것만 같다.
의자의 역할은 무수한 상념으로 일깨워 주기도 한다. 어느 늦은 가을날 변방의 간이 역사 플랫폼에는 빛 바랜 의자가 낙엽에 묻혀 쓸쓸하다. 그 초췌한 모습 속에는 무언가 간절한 느낌을 부여하고 있다. 이별의 서러움을 지탱해준 연연한 슬픔 같은 것이 묻어 있다. 새벽부터 달려간 도서관의 딱딱한 나무의자는 냉랭한 분위기도 아랑곳없이 참을성을 요구한다. 끝없이 독려하는 탐구의 집념을 엉덩이를 아프게 자극시킨다. 여운과 갈망의 뜻이 다른 특별한 자리들이 있다. 권위와 위선을 나타내려는 의자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졸하게 소유하였다면 아무리 크고 호사스러워도 비약한 의자 보다 못할 것이다.
나의 어릴 때 기억에는 너무나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책상다리와 널빤지를 맞추어 만든 나무의자는 조금만 힘이 가해지면 뻐걱거리고 사뭇 자지러졌다. 그 곳에는 어머니가 앉으시어 잦은 일도 하시고 소일도 하시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스산한 바람이 차가웠다. 며칠씩 소식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흐르는 눈물을 훔칠 때마다 영락없이 나무의자는 삐걱거리며 장단을 맞추었다. 슬픔이 격하여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그 잘난 의자의 삐걱대는 처량한 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집안의 가장역할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되면 가정에 파경이 오고 너무나 힘든 상황이 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 가정과 국가와의 밀접한 관계는 서로 부여하는 뜻과 의미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늘 같이 믿는 가장이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과 국가의 사활을 짊어진 사람들이 자리싸움이나 하며 앉을 의자에 잣대나 잰다면 그 가정과 국가는 말 안 해도 뻔할 것이다. 윗사람들이 잘못하면 가정이던 국가이던 간에 전체가 흔들리고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절실히 알고 있다. 지금 고국에는 무슨 불행이 오고 있는가 왜 그렇게도 모든 소식들이 절실하기만 한지 답답하기만 하다.
서울에 간 아내의 소식이 절망적이다. 앞만 보고 열심히 노력하여 놓은 보람들이 눈덩이 같이 녹아 내린다는 소식이다. 공들여 놓은 자존들이 이리 저리 찢기고 무언가 잘못된 현실에 망연 할뿐이라니 걱정이 된다. 정치와 경제가 한꺼번에 제자리에서 추락한다면 도대체 소외된 권익과 기대치의 바람들은 어디에서 찾아야 될 것인지 갈수록 아득하기만 하다. 혹시라도 바다 건너오는 소문들이 지나치는 바람이었으면 좋겠다. 존경받을 수 있는 탁월한 역량들을 기대하며 누구든지 편안히 의자에 앉아 쉴 수 있는 걱정되지 않는 세월이길 바란다.
아내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짓던 어머니 생각이 왜 자구만 떠오르는지 안타깝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실 때 의자가 바스러지도록 반가움에 뛰쳐나오시는 어머니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책임 있는 가장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
불신과 능력 부족으로 원망의 대상이 되어 가는 이 나라의 가장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집안이 무너져 내리면 비통함과 뼈저림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나 있는지 모를 일이다. 민생이 울어야 되는 불행만은 없길 바란다. 모든 위정자들은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가는 조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느 곳을 가나 다소곳이 기다리는 의자는 많다. 그러나 우리가 앉아서 좋고 심신을 달래어 주는 여유로운 자리는 우리가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가을날 서늘한 바람을 안고 짙은 커피를 마시며 브람스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 넘치는 그런 자리를 찾아야겠다. 가을 같은 의자, 아내와 같이할 따듯한 보금자리가 그리워진다.
베란다 옆에 자그만 안락의자를 준비하여야겠다. 고국에서 돌아오면 여정에 지친 몸 쉴 수 있는 편한 의자를 전망이 있는 남쪽으로 놓아야겠다. 바로 옆에는 하얀 의자를 지긋한 정으로만 담을 나의 마음의 빈자리로 남겨 놓고서.
안주옥
약력
문학박사, 시인
한국문인협회, 재미시인협회 회원
국제문화교류협회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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