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에 총구 겨눈 남한에 돌아가지 않겠다”주장
첫 망명재판 타코마 이민국 법정서 3시간 반 계속
담당판사, 빠른 시일 내에 서면결정 통보 약속
지난 7월 캐나다에서 블레인 국경검문소를 통해 미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 윤인호씨(29)에 대한 첫 재판이 한국정부의 비상한 관심 속에 4일 타코마 이민국법정에서 열렸다.
이날 청색 반팔의 수의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윤씨는 사용언어를 묻는 빅토리아 영 판사의 질문에‘북한어(North Korean)’라고 답하며 자신이 북한인 임을 강조했다.
윤씨는 판사가 지켜보는 앞에서 지난달 18일 발효된 북한 인권법안에 의거, 이미 변호사를 통해 법정에 제출한 자신의 망명신청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이날 하오 1시 시작된 재판은 무려 3시간 반이나 계속됐으며 영 판사는 그동안 북한·중국·남한에서의 윤씨의 행적과 망명동기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심문했다.
윤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귀순한 친구로부터 자신의 부모가 3년 전 수용소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며 자신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처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씨는 자신의 탈북으로 부모에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죽고싶은 심정이라며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흐느끼자 영 판사는 윤씨가 감정을 추스르도록 10여분간 휴정하기도 했다.
남한에서도 남한사람과 똑같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언급한 윤씨는 국정원의 탈북자 조사기관인 대성공사에서 북한 및 중국에서의 행적에 관해 6일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 차례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차례의 거짓말탐지기 조사에 이어 손목에 신문지를 감고 수갑을 찬 상태에서 조사관들로부터 고무방망이로 20여분간 맞아 살려달라며 애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윤씨는“조사관이 고문을 끝낸 후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며 이 (고문)사실을 외부에 발설할 경우 사살해 사체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겠다며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고문 사실을 공개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편안하다고 밝힌 윤씨는 만일 자신이 남한으로 돌려 보내지면 이전과 같은 대우마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 법정통역사인 박건홍씨의 통역 서비스를 받은 윤씨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밝히고 탈북 당시 함경북도 회령시의 김일성 생일을 기념하는 7월8일동에서 조모·부모·두 동생과 함께 거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의 식량사정이 극도로 나빠져 줄 곳 모자라는 풀죽으로 연명했다며“풀 죽은 풀을 우려서 쌀겨에서 나온 쌀가루와 함께 끓인 죽”이라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호구지책과 출세를 위해 입대를 자원했으나 친척이 정치범으로 수용된 내력 때문에 거부당하고 생활안정을 보장해주는 사회안전부 입대마저 거부당해 결국 국가대표 스키선수로 한동안 생활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지난 97년 7월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한 후 이곳저곳 떠돌며 농장 막일과 부엌일 등을 하며 폭행도 당했고 중국경찰에 체포되기도 하는 등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며 돈을 벌 수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청도의 한국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배척받았다고 주장한 윤씨는 한국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몽고로 들어가 울란-바트르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남한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남한에 귀순하면 북한의 남은 가족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느낌이어서 감행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몽고의 한국대사관에서 발급해준 임시 여권으로 남한에 입국했으며 대성공사에서 4개월 체류하며 조사를 받고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영구아파트단지에 거주지를 배정 받았다고 밝혔다.
윤씨는 처음 공공 근로사업인 도서관 책 정리 업무로 한 달에 5백달러의 임금을 받았으며 정부에서 생활보조비로 250달러 정도를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미국으로 가는 길을 찾는데 골몰해 있었다며 특별보호기간 2년이 지난 후 여권을 신청했으나 거절된 후“중국에서 도와준 분들에게 인사하러 가고싶다”는 뜻이 받아들여져 세 번째만에 탈북자들에게만 발급되는 일종의 여행증명서인‘단순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올해 초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 5개월 동안 거주하며 망명길을 수소문하던 중 한국영사를 만나 난민신청을 원한다는 뜻을 전했으나 오히려 한인교민단체 등을 통해 지원을 하지 말라는 요청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미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를 얻어 블레인 국경을 통해 망명신청을 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이날 재판에 미국정부측 대표로 나온 국토안보부 국경세관단속국(ICE)의 태미 피팅스 검사는 반대심문에 나서 윤씨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확인했지만 결정적인 반격을 하지는 않았다.
북한실정을 이처럼 외부에 공개할 경우 반역자로 간주되지 않느냐는 피팅스의 질문에 윤씨는“이는 개인·가족차원이 아닌 북한사회전체의 문제”라며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한, (탈북자를 대하는) 남한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공개하고싶다고 말했다.
모델로 일한 내용을 묻는 질문에는 한국체류기간 동안 연습기간 8개월을 포함, 모두 2년여 동안 모델로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받은 보수총액이 20만원으로 직업이라 볼 수 없었다고 답했다.
영 판사는 심리를 종료한 후 윤씨의 변호를 담당한 토마스 도노반 변호사가 핵심사항으로 언급한 북한인권법안의 입법동기와 핵심사항에 대한 설명자료를 오는 15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영 판사는 또, 이에 대한 정부측 입장을 25일까지 제출하도록 피팅스 검사에게 요구하고 관련자료가 제출되면 빠른 시일 내에 서면결정을 내리겠다고 윤씨에게 말했다.
/김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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