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직후 폐허가 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을 향해 잔해 작업 중이던 인부들이 “USA, USA”를 연호했다. 이 연호는 테러 당한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뭉쳐 위대한 미국을 바라는 열광적인 외침이었다.
대법원 판결로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됐던 부시는 이 때부터 대 테러전의 중심에 서서 미국 중심주의를 힘차게 이끌었다. 이리하여 그는 90%의 지지를 받는 미국 역사상 최고 지지율의 대통령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대 테러전의 일환으로 수행했다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저항세력의 항전으로 미군의 피해가 속출하면서 그의 인기는 계속 추락했다. 더욱이 회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불경기로 인해 그의 재선 가도는 먹구름에 가려져 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민주당의 케리 후보가 반 부시 세력을 결집하여 선거에 도전하여 이번 선거는 근래에 보기 드문 치열한 선거가 되었다. 이 치열한 선거에서 우여곡절 끝에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된 3일 새벽까지 오하이오의 잠정 투표에 대한 개표 문제로 대통령 당선 확정이 법정투쟁까지 비화될 우려마저 있었으나 이날 오전 케리 후보의 패배 시인으로 부시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됐다.
부시의 재선은 부시가 대변하고 있는 미국주의의 승리이며 전통적인 미국 가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9.11 테러 직후 연호했던 “USA, USA”의 재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힘의 논리로 대 테러전을 밀고 나가면서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국가들로부터 심한 반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케리 후보는 동맹국들과 협력으로 대 테러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오늘날과 같은 국제시대에 최강국인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지지를 받지 않고 고립된다면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므로 이 주장은 일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테러를 당할 때 프랑스나 독일이 막아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프랑스나 독일은 전통적으로 영미에 경쟁의식을 가진 나라로 미국의 일방적 우위에 배 아파하는 나라들이다. 미국과 미국인을 지키는 것은 미국 스스로의 힘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이상 미국은 미국에서 이탈한 세계의 여론을 끌어들이는 작업도 해야 하지만 대 테러전에서 미국의 결연한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어야 한다. 아직도 체포하지 못한 오사마 빈 라덴을 하루속히 붙잡고 알 카에다 테러집단을 뿌리뽑아야 한다.
이라크 저항세력을 완전 소탕하여 이라크의 민주정치와 경제부흥, 사회 안정을 조속히 이룩하고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또 북한과 이란 등 미국의 대외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나라들에 대해서 단호한 조치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미명 아래 허물어지고 있는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도 부시 대통령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이번 선거에서 실업자의 양산으로 부시 대통령의 참패가 예상됐던 중서부 북부에서 그가 의외의 선전을 한 것은 동성결혼 반대 등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즉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도덕성을 강력히 지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청교도 정신을 계승한 도덕성이란 두 발로 지탱할 수 있는 나라이다. 도덕성이 부패하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도덕성은 미국주의를 지탱해 주는 또 다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강해지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되고 미국의 도덕적 가치를 널리 펼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경제적 번영이다. 미국은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선 과정에서 새로운 번영의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제부터 경제회복과 번영을 위한 획기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국이 세계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경제 초강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게 될 때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고 세계의 중심국가, 지도 국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미국인들이 부시의 재선에 바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USA, USA”를 연호한 미국인들의 열망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기영/본보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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