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접전 같았다. 처음에는 케리가 앞서는 것으로 보도돼 더 그런 느낌을 주었는지 모른다. 한동안 혼전의 양상이었다. 결과는 그런데 부시의 대승이다. 어느 틈에 포퓰러 보트에서 과반수를 넘겼다. 선거인단수 확보에서도 ‘마의 270’ 고지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뿐이 아니다. 연방 상·하 양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했다. 그것도 과반수 의석을 훨씬 초과해서. 주지사 선거전도 그렇다. 그러니까, 백악관에서 연방의회, 그리고 주 정부까지 공화당 일색이 된 것이다. 완봉승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1928년 이후의 대기록이다. 기록은 또 있다. 대통령의 아들로 대통령이 된 데 이어 대통령 아들 출신 대통령으로서 처음 재선에 성공한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그리고 테러전쟁 추이에 따라 부시는 또 다른 차원에서 역사적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빙의 접전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뭔가가 있을 것 같다. 숨겨진 코드 같은 거 말이다.
마르크스가, 트로츠키가, 또 누가 있나. 그렇지, 모택동이다. 하여튼 이들이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가난한 근로계층 유권자들이 초특급 부자들의 세금을 마구 깎아주는 정당을 지지하고 나섰다.
부시 승리를 확정지은 오하이오의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경제적으로 가장 타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 몇 시간을 기다려 한 표 행사를 했다. 부시의 재선을 돕기 위해서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앨라스카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가난하다. 경제난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경제문제는 결코 선거의 이슈가 아니다. 가치가 이슈다. 미국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은 표를 던진 것이다.
11개 주에서 동성애자의 결혼을 막는 안이 투표에 부쳐졌다. 결과는 모두가 성공이다. 뭘 말하나. 경제가 이슈가 아니었다는 거다. 테러리즘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윤리와 도덕, 다른 말로 하면 가치가 당면의 이슈였다는 이야기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여기서 새삼 거론되는 게 미국적 예외성이다. 80% 이상의 미국인은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밝히고 있다. 게다가 30% 이상이 보수 복음주의 신앙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40% 정도의 미국인은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 미국적 예외성, 다른 말로 해 ‘God’s Factor’가 그 질문의 많은 부문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진짜 아젠다는 가치관이었고, 그 가치관 전쟁의 흐름을 읽어내는 중요한 코드가 바로 이 ‘하나님 요인’이라는 말이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정치계의 현자(賢者)들이 일찍이 충고한 대목이다. 청교도 전통의 나라다. 이 나라에서 정치는 신앙문제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이 미국적 예외성을 간과할 때 대선은 필패다. 경고가 한 두 번 나온 게 아니다.
칼 로브인가. 부시를 도와 선거불패의 기록을 세우고 있는 인물이. 그는 이 ‘하나님 요인’에 맞춰 전략을 짰다. 지난번 선거, 그러니까 2000년 대선 때 투표를 하지 않은 보수 기독교 유권자 400만을 동원한다는 전략이다.
전략은 성공했다.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접전지역으로 분류된 주에서 이 보수 기독교 세는 맹위를 떨쳤고 부시 대승의 선거결과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도를 하기 위해 두 손을 모은다는 것, 그것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분연한 저항의 시작이다.” 칼 바르트의 말이다. 그들은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가치관이다. 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정책으로 반영시키기 위해 움직인다.
해외정책에 있어서는 일종의 윌슨주의자라고 할까. 민주주의에 의한 세계평화가 그들의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선제공격도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그 공격목표가 ‘악’(evil)일 때는. 그리고 조지 W 부시에게서 그들은 동질성을 본다.
보수 기독교 세의 대두, 그에 힘입어 날개를 단 부시. 요약한 이번 선거의 결과다. 이를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벌써부터 비명이 나온다. “…거침없는 일방주의. 앞으로 4년 동안 네 차례의 전쟁이 있을지도 모른다…”
상당히 신경질적 반응이다. 그건 그렇고 한국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이 이에 미치니까 머리 속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보수 기독교와 싸우고 있는 한국정부다. 부시는 보수 기독교의 힘을 받아 재선됐고, 그러니….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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