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한국이 IFM 체제였을 때, 인터넷에는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글들이 많이 올랐다. 어둡고 침울했던 당시, 외롭고 고단한 아버지들의 모습을 잘 그려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딸들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 나가는 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아들딸들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 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때-아빠는 정말 아는 것이 많다. 8세 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 때-우리 아버지요? 세대차이가 나요. 25세 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 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어. 60세 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싶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배쯤 될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란, 내 어릴 때 뛰어 놀던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이 글들이 인터넷 바다를 떠다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아버지, 특히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아버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떤 아버지가 있다. 그는 25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특별한 기술이 없던 그는 처음 시작했던 일이 중국집 일이라 조그마한 중국집 주인이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안정을 얻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새벽부터 밤늦도록 주방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만 했다.
어떤 사람은 바보가 아니냐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내 고생 안 시키고 집에서 아이들이나 돌보며 편히 살게 해 준 좋은 남편이었다고 할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사람이란 누구나 완전할 수는 없다. 직장에도 충실하고, 대인 관계도 완벽하고, 가정에도 빈틈없이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몸은 하나고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한나절을 골프를 치면 집에서 아이들과 공원에 나가 놀아줄 수가 없고,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골프를 거절하면 친구들 사이가 소원해 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훌쩍 커버린 자식들은 자신들이 힘들어 할 때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항변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대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 아내가 자동차 대형사고를 내 오순도순 살던 집과 사업체가 모두 넘어가게 생겼다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밖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돌아와 집에서 소파에 기대 잠시 쉬고 있으면, 아이들은 아빠가 잠만 자는 사람이라고 하고 아내는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는다고 바가지를 긁어댄다. 설 땅이 없는 아버지…, 속이 상하면 베란다에 나가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아버지는 원래 울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남자로 자랐고 그렇게 한평생을 사는 동안 어깨는 축 쳐지고, 이마엔 주름이 늘어가며, 표정은 굳어간다. 내가 죽고 나면 아내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는 말아야지…,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그 고단한 아버지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최종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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