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백남준’이 얼마 전 신작’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헌사’ 퍼포먼스 및 ‘메타 9.11’ 신작 발표를 가졌다.
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투병 중인 그는 어눌한 말투로 “한국, 특히 어려서 자란 서울 창신동에 가고 싶다. 그 집에는 대문이 있었다”며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민 1세들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할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세계적 작가도 자신의 태를 묻은 고국 땅으로 돌아가 죽고 싶다는 회귀본능을 보고 반가웠을 것이다.
신인작가와 2인전을 준비하며 뮤지엄 측에 당부하여 그 후배의 작품을 가장 좋은 자리에 놓게 하는 배려라든가, 평소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예술세계 및 주류사회에 관한 일화는 예술가들에게 말 그대로 귀감이 되고 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구겐하임 뮤지엄이 박물관 전체를 온통 ‘백남준의 세계’로 꾸며 박물관 개관이래 최대 관람인파를 기록했던 일이나 아스토리아 영상 박물관에 그의 이름을 딴 방이 있어 견학 온 학생뿐 아니라 관광객들, 한인들에게 가슴 뿌듯한 자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 묻히고 싶다고 하니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그는 이미 개인이기 전에 세계적 인물로서 자신의 사적 감정은 양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롱아일랜드 시티에 이사무 노구치 뮤지엄이 있다. 그는 20세기의 대표적 주요 작가로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LA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사춘기를 거쳐 컬럼비아 대학을 다녔고 파리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반평생 이상을 살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가 살며 작품을 만들었던 공간이 그의 사후 뮤지엄이 되어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2년 반의 개보수 공사를 거쳐 지난 6월 새롭게 단장한 노구치 뮤지엄은 선불교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노구치가 생전에 완성한 대리석, 나무, 흙, 금속을 소재로 한 조각, 가구, 램프들이 정원, 실내 전시실 등에 수백여 점 전시되어 있다. 그는 돌을 소재로 사용했음에도 만지면 따스한 체온이 있을 것처럼 자유자재로 바위덩이를 주물럭거려 돌아서 올 때마다 다시 또 가고 싶다. 그 때마다 부러운 것이 한국계 작가도 이렇게 전 작품이 뮤지엄으로 남겨져 그의 체취와 숨결은 그대로 남아 영원한 우리의 긍지와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백남준 역시 1932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를 졸업하고 1949년 홍콩을 거쳐 도쿄로 이주하여 동경대학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서독으로 유학, 쾰른 대학을 다녔으며 1958년 동양의 ‘선’ 사상에 기반을 둔 미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남으로써 그의 새로운 예술세계가 열렸다. 1964년 뉴욕에 이주, TV와 비디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본격 전위예술의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이민자들은 누구나 은퇴하면 고향의 냄새를 맡으며 노후를 보내다가 고국 땅에 묻히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묻히면 이곳에 사는 2세나 3세들이 얼마나 찾아가기 힘든가. 1년에 혹은 몇 년에 한번씩 부모의 묘를 찾아 참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 되는가.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살고 있는 집과 가까운 곳에 묻히는 것이 후손들에게 편리하고 그들에게 더욱 핏줄을 느끼게 할 것이다.
백남준 그는 왜? 한국에 가면 누가 있을까? 그는 좀더 이곳에 살고 이곳에 묻혀 그가 살던 집, 작업실, 스튜디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유치부 어린이는 물론 중고등학생, 미술대학생, 관광객들의 견학 및 방문 코스가 되어 시대를 앞서간 그의 치열한 예술혼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남준 그는 이미 개인이 아니다. 한국인만도 아니다. 그는 전 세계인이 아끼는 세계인이다. 그는 우리 곁에 남아 한인들의 영원한 자랑이자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민병임 뉴욕지사 편집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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