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와 헬싱키 중간쯤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국경을 통과한다. 서방 세계의 친절한 공무원이나 항공기의 상냥한 승무원 접대에 익숙한 일행에게 러시아의 열차 승무원이나 국경 수비대 세관 관리들의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는 불쾌감과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군인 제복을 입은 그들이 조를 이뤄 각 객실마다 찾아다니며 확인점검을 한다. 미화 3,000달러 이상이면 신고를 하게 된 규정이 있는 처지에 일행 중 어느 팀이 무료함을 달래며 객실에서 신나게 포커판을 벌리는 중에 ‘임검’을 당했다. 칸막이 객실 구조는 한 쪽 의자에 세 사람씩 마주 앉게 되어 있어 카드게임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밀실 방이다.
현찰이 오가는 노름판을 보고 그들의 심기가 불편했는지 게임 가담자들은 각자 조사를 당하고 규정을 초과한 달러 소지자들은 곤욕을 치르는 중 촌지를 찔러주고 곤란을 무마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객실 화장실은 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문을 잠가 놓고 교외지역으로 빠져나가야 차장이 문을 열어주어 사용할 수 있다. 서울이 한양, 한성, 경성 등 역사의 부침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가졌듯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피터 대제가 수도로 건설할 당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명명된 이래 레닌그라드, 스탈린 그라드, 다시 옛 이름으로 돌아가 상트 페테르부르
크로 불리고 있으나 러시아 현지 발음과 영어식 발음 ‘세인트 피터스버그’ 등 각 나라마다 독특한 억양으로 불리어지고 있고 어느 이름으로 불러도 모두들 알아듣는 걸 보니 그만큼 유명한 도시이기 때문인가 보다.
네바강과 바다와 중세의 건축물이 어울린 호반의 도시 같은 곳에 피터 대제가 지은 겨울 궁전이 있다. 러시아의 보물은 다 이곳에 모였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제정 러시아 황제들이 누리던 호화로운 궁전은 이제 ‘에르미타쥐’라는 박물관으로 바뀌어 회화, 그래픽, 조각, 장식, 매달, 주화 등 300만점에 이르는 소장품들을 간직하고 일반에게 공개되어 하루에도 수 천명에 이르는 관람객이 세계 도처에서 몰려든다.
짙푸른 네바 강변에 자리한 3층의 백색 건물에 황금으로 도금된 장식물과 지붕위 석상들이 석양을 받아 출렁이며 흐르는 강물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 장관을 볼 수 있다. 이 도시의 건축물 하나 하나가 예술 작품으로 시가지 전체가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든다.
이 도시의 첫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파울 요새에 있는 파울교회의 황금 첨탑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눈부신 황금의 첨탑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잘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의 한 곳에 3인조 악단이 민속 악기인 커다란 삼각형의 기타와 아코디온을 열심히 연주하며 관광객들의 후한 인심에 기대를 걸지만 앞에 놓인 돈통엔 몇 장의 지폐만 놓여 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그 기타(Balalaika)로 애절한 선율을 연주하던 바로 그 로서아의 민속 악기이다.
베니스가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이 도시는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북구의 베니스이다. 겨울 궁전의 명성은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 내 눈으로 실감하니 그 호화의 극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각 방마다 특색 있는 디자인과 그 규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얀 인조대리석 벽면에 붉은 색과 황금을 도금한 벽장식의 갖가지 입체 문양은 한 말 말로 더 이상 호화로울 수가 없다, 그리고 천장에서 내려온 대형 금빛 샹데리어. 황금의 옥좌, 에메랄드색 대리석 기둥 등 현란한 치장을 볼 적마다 입에서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에카레리나 여제 때부터 수집하여 왔다는 각종 초상화, 조각, 반 고흐, 앙리 마티스의 작품, 피카소의 현대 작품까지 고루 소장하고 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이곳에도 한인 유학생이 400 여명에 이른다고 하며 미술 전공 유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인 방문객이 매년 증가하니 이곳이라고 빠질 수 없는 것이 한국 식당이다.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서울가든이란 식당에서 한식 비빔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오니 이곳이 그렇게 멀리 있는 나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만도 한식집이 6곳이나 있다고 한다.
오후에는 러시아 민속공연관에서 러시아의 민속춤을 보고 이어 소형 유람선을 전세 내어 푸른 네바강위에서 캐비어알을 안주삼아 본 고장의 보드카를 마시며 6인조 악단의 러시아 민요를 들으며 한동안 시름을 잊었다.
그들이 관광객들의 비위를 맞히는 일은 통달한지라 오 서울 코리아를 외치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난번에는 한국에서 오신 어느 분이 기
분이 절정에 달해 춤추는 무희에게 백달러짜리 지폐를 팁으로 준 사건이 있었다는데 분별없는 호의는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제해 달라는 가이드의 당부도 있었다. 그 선착장 지붕위에 삼성 광고판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