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에서는 남의 과녁에 활을 쏘지 않는다. 평범한 궁수라도 이 정도는 기본이다. 그러나 명궁이 되려면 한가지 더 따라야 할 것이 있다. 자기 과녁이라도 가장자리에 수두룩하게 꽂히면 어디 가서 궁수라고 명함 내밀기가 쑥스럽다. 명궁소리 들으려면 과녁 중앙에 명중시켜야 한 다.
1990년대 말 미국 기업인들이 후진국의 경제개혁을 훈수들기 위해 몽골에 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표단은 몽골경제를 진단하고 비방을 일러주었다. 몽골관리들의 경청에 대표단은 흡족했다. 어느덧 몽골을 떠날 때가 됐다. 대표단은 작은 씨앗을 심었다는 자부심으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게다가 대표단은 “미국에 가면 두툼한 증권거래법 서적을 여러 부 보내달라”는 몽골관리들의 배우려는 자세에 더할 나위 없이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나중에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대표단은 어이가 없었다. 몽골은 만성적인 용지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 몽골관리들이 책 사본을 부탁한 것은 법규를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사본의 뒷장을 빈 종이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미 대표단은 수맥이 없는 곳에서 지하수를 찾아 헤맨 격이었다. 엉뚱한 과녁에 화살을 쏘아댄 궁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 정부가 카자흐스탄에 자본주의를 이식하기 위해 뉴욕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러와 계약을 맺었다. 버슨-마스텔러는 홍보용 미니 홈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하기로 했다. 공산권이었던 카자흐스탄에 사유화를 찬미하는 내용을 전파할 작정이었다.
이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는 이런 내용이었다. 카자흐스탄 두 가정이 새 집을 원하는데 집 짓는 법을 몰라 낙담하고 있다. 이 때 갑자기 하늘에서 ‘소로스 재단’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열기구가 내려오더니 여기에서 미국인들이 나와 집을 지어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두 가정은 입을 딱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는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는 있었겠지만 제작비용 때문에 중도하차 했다. 제 과녁에는 맞혔지만 사방 귀퉁이에만 화살을 몰아 쏜 비효율적인 궁수나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선거가 보름 남았지만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상당수다.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명궁의 요건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어느 후보가 제 과녁에 화살을 쏘는지, 그리고 과녁의 중심부에 명중시키는지를 보면 된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얘기로만 장광설이거나, 설령 관심사를 언급하더라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들을 쏟아낸다면 탐나는 지도자 감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진저리 치는 흑색선전을 애용하는 후보는 오른 발이 저린데 왼발을 주무르는 가짜 안마사와 다름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부시 집안의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왕실의 독재와 부패를 은근슬쩍 부시 쪽에 갖다 붙인 광고나, 1945년 전범행위가 2003년엔 외교정책이 되었다는 문구와 함께 히틀러와 부시를 오버랩 시킨 광고는 ‘벨트 아래’를 친 것이다. 한편, 민주당 후보가 집권하면 9.11과 같은 테러가 또 발생할 것이란 발언이나, 민주당은 동성애 결혼을 허용하고 성경을 금서로 할 것이란 선전도 ‘제 과녁’을 벗어났다. “부시는 흑인지도자들과 일체 만나지 않는다” “케리가 당선되면 알카에다가 좋아할 것이다” 등 발언도 같은 급이다.
의료보험과 소셜시큐리티,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해 놓고 정작 재원마련에 대해서는 태연자약한 후보나, 다분히 시장원리로 굴러가는 일자리와 경제 회복을 밀가루 반죽하듯 처방하려는 후보도 함량미달이다. 저마다 국제사회로부터의 존경과 미국의 안위를 약속하지만 장삼이사도 부담 없이 내뱉을 수 있는 구두 선에서 맴돈다.
이번 캠페인은 ‘R등급’이다. 그러니 솎아낼 것은 솎아내고 걸러낼 것은 걸러내야 한다. 공약의 절반은 허망한 약속으로 끝날 소지가 다분하다. 제 과녁에, 그것도 한 복판에 화살을 명중시키는 명궁처럼 국민의 관심사를 잘 짚어주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도자를 뽑고 싶지만 두 후보 모두 난형난제다.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 하나 하나에 솔깃하다 보면 나무의 외형에 빠져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오히려 그 실천방안 해부에 남은 보름을 투자하는 게 현명한 선택과정이다. ‘무엇’보다는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지도자로서의 신뢰성과 현실감각을 종합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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