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父子) 도둑이 있었다.
어느 날 이들 부자는 부잣집 창고에 들어갔다.
아비는 아들만 창고에 남기고 살짝 빠져 나와 밖에서 자물쇠를 잠근 뒤흔들어 주인을 깨웠다.
창고가 잠겨진 것을 확인한 주인이 들어서는 순간, 창고에 갇힌 아들은 일부러 쥐가 긁는 소리를 냈다. 쥐를 내쫓기 위해 주인이 자물쇠를 열자 쏜살같이 빠져나간 아들은 주인의 추적을 피해 연못가를 돌다 물에 뛰어든 것처럼 큰돌을 못에 던져 주인을 따돌렸다.
집에 돌아온 아들. 아비에게 따졌다. 아비는 말했다.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응용이 무궁하다. 더욱이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완숙하게 만드는 법. 너를 궁지로 몬 것은 너를 안전하게 위함이요, 위험에 빠뜨린 것은 너를 건져주기 위한 것이었다.’
다소 길게 인용한 이 글은 조선시대 문신 강희맹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쓴 글에서 나오는 얘기다. 나쁜 일까지도 스스로 곤경을 헤치고 깨달아야 할 수 있음을 말함이니 인생의 다른 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수일전 만난 한 지인(知人)의 자식 농사 넋두리는 강희맹의 훈계를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외교관 출신으로 지금은 은퇴해 LA 근교에서 과수원을 하는 이 분은 명문대를 졸업한 아들이 수년째 과수원에서 풀을 뽑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죽겠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동부의 대형 금융회사에서 사회의 첫 발을 내디딘 이 청년은 1년여만에 직장을 그만두더니 특별한 이유도 없이 3년째 집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중·고교를 수석으로 졸업, 기대가 컸던 아들이기에 충격이 더 크다고 했다.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 싶어 대화도 해보지만 내성적인 성격 외에 특별히 다른 조짐은 없다는 것 이다.
요즘 명문대를 졸업한 많은 1.5세, 2세들이 한인타운으로 몰리고 있다.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가업을 물려받거나 쉬운 일자리를 찾아 부모 곁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주류사회에 도전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쉽게 포기하고 돌아선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의 온실 속에서만 자라 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한다. 작은 장벽에만 부딪쳐도 포기하고 만다. 사회를 스스로 터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이 자 녀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고갈도 안되지만 사랑의 과잉은 자녀를 나약하게 만든다. 이민생활 속에 맞벌이를 하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직접 돌보지 못한다는 자책감으로 자식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다. 맹목적인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스스로 터득하고 헤쳐나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생명력이 약하지만 벌판에서 비바람을 맞고 자란 들꽃은 끈질긴 생명력이 있는 것과 같다. 한번쯤 실패할 자유도 주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사회에 나가기 전 비바람을 대신 막아주는 것만으로 부모역할을 다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자식이 조금만 어긋나도 ‘널 위해 어떻게 했는데…’라며 보상심리를 갖는다. 이같은 보상심리는 자녀들에게 실패를 두렵게 만드는 부담감만 줄뿐이다.
가을이다. 한번쯤 자녀들과 산으로 들로 나가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를 키워주자. 눈앞의 이익만을 취할 것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가르치자. 역경이 고난이 아님을 알게 하고 열심히 벌어서 자기만을 위해 사는 개미 같은 사람보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꿀벌 같은 사람이 더 가치 있음을 알려주자. 그리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봉사 속에 큰 비전과 도전이 있고 참 사랑이 있는 것이다.
권기준<부국장 대우·경제부장>
kj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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