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악의 축’ 이야기 아닌가. 부시와 케리의 TV토론을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토론의 핵심은 이라크 전쟁으로 비친다. 온통 이라크를 둘러싼 논박으로 이어져서다.
그렇지만 뒤집어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나머지 ‘악의 축’에 대한 입장 정리가 토론의 맥이고, 이번 토론 주제는 본격적으로 펼쳐질 ‘악의 축’ 속편 줄거리의 예고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한마디로 잘못된 전쟁이다. 미국을 공격한 건 오사마 빈 라덴이다. 거기다가 대량살상무기도 없다. 그러니 오판에 의한 잘못된 전쟁이다. 아니, 테러전쟁이라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이라크는 그 전선의 일부다. 민주화된 이라크는 미국 안보에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상당히 열띤 논쟁이다. 논쟁의 한 부분에서는 그렇지만 안도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어찌됐든 ‘악’(Evil)의 한 축을 이루었던 후세인은 제거됐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이다. 그래서 그런지 때로는 말장난 같이 들리기도 한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하는 식의.
정작 클로즈업 된 건 나머지 ‘악의 축’이다. 핵 장난을 하고 있는 이란이, 또 북한이 미국의 안보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새삼 재확인시킨 것이다. 부시든, 케리든 그러나 정작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 언급은 없다.
엄청난 도전이다. 자칫 대전쟁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그래서 말을 아낀 것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대응한다는 것인가.
데이빗 프럼. ‘악의 축’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가 책을 내놨다. 제목은 ‘악의 종언’이다. 같이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리차드 펄과의 공저를 통해 그 답을 제시한 것이다.
한해 전에 집필을 했다. 그런데 대선의 해를 맞아 ‘선거정치’에 함몰될 전쟁상황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리고 테러전쟁이 이 때쯤에는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전쟁의 방향을 설정했다. 처방전을 제시한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맞은 최대의 적은 호전적인 이슬람세력이다. 이야기는 이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과거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에 뒤지지 않게 독소적인 세력이 호전적 이슬람세력으로 김정일 체제는 이들의 동맹으로 파악된다. 핵 제휴를 통한 동맹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방안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핵심은 체제전복이다. 독소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한 독재정권, 다시 말해 ‘악의 축’은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의 타겟이 이란이다. 이란 내 민주세력을 지원해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의 정권전복, 더 나아가 분할점령도 꾀할 수 있다. 네온콘답게 단호하다.
이란 회교정권 전복설은 요즘 들어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북한이 버티는 데 자극 받아 이란이 오판을 하고 있다는 전망이 대두되면서다. 그 방법의 하나가 폭격론이다. 이란이 핵으로 가면 이스라엘의 입지는 없어진다. 폭격론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북한은 이란과 달리 지정학적으로 복잡한 환경에 놓여있다. 이런 북한의 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된다. 그중 가장 실행가능하고, 또 비용이 절감되는 방법은 중국을 내세워 김정일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쿠데타를 통해 친(親)중 괴뢰정권을 세운다는 복안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다시 말해 ‘악의 축’의 한 부분은 미국의 무력개입으로 이미 무너졌다. 나머지 ‘악의 축’도 결국은 정권전복을 통해 제거할 수밖에 없다. 방법만 다를 뿐이다.
일부 네오콘의 제안이다. 대권 후보들의 공약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고 사항일 뿐이다. 그렇지만 뭔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대선을 바로 앞두고 워싱턴 일각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다.
11월 선거 후 그 어느 시점 테러전쟁과 관련해 뭔가 대담한 새로운 조치가 이루어 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부시의 재선이 손에 잡히는 분위기에서, 주로 네오콘 사이에 그 이야기는 무성하다는 거다.
무슨 조치일까. 그 방향성은 이미 시사된 게 아닐까. 핵 확산 문제는 미국이 맞은 최대 위협이고, 그 위협의 주체는 북한과 이란이다. 남은 ‘악의 축’ 체제가 결국은 미국의 최대 위협이라는 사실이 이번 토론에서 새삼 확인돼 하는 말이다.
‘악의 축’ 이야기의 속편은 그러면 한반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걱정부터 앞선다. ‘386’ ‘이념과잉’ ‘좌우대립’ ‘노무현’- 이런 단어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떠올려져서다. 누가 한 말인가. ‘2005년은 한반도 운명의 해가 된다’고.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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