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식품인 간장, 참기름을 일본산이 압도하고 있다. <서준영 기자>
‘장류 시장’까지 밀리는 한인 식품업계 현황
올해 식품업계에 닥친 ‘쓰레기 만두’ 파동의 후유증은 컸다. 만두와 라면 판매가 급감, 일부 마켓은 몇 달간 매출에 타격을 입을 정도였다. “한국산 식품을 믿고 먹지 못하겠다”는 성토가 쏟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산 식품 판매가 늘기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더 건강하고 맛좋은 먹거리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바이 코리아’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한인 가정에 도요타 소유가 압도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문제는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문화라는 데 있다. 장류와 김치 등 아시아권에서 공유하는 음식일 경우 더욱 그렇다.
식품도매업체 ‘CJ아메리카’의 최동환 부장은 “입맛을 다른 나라에 잠식당하는 건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라며 “특히 한국 고유의 전통음식인 장류 시장에서 한국산이 밀린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의식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과제”라고 강조한다.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해 식품업계에서 일본산의 소비현황과 이에 대한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기꼬만·가도야 등 한인입맛 70%잠식
나머지 시장 놓고 한국브랜드끼리 경쟁
한인 식당들 90%이상 “일본산 쓴다”
한국산 판로개척 현지공장 세워 “반격”
■한국 브랜드·일본 브랜드의 정의
생산지가 아니라 제조회사를 중심으로 한 구분이다. 일례로 기꼬만은 미국서 생산하고, 미국내 공장이 없는 샘표는 한국서 생산해 수입한다. 쌀의 경우 시라기꾸와 대풍 둘 다 미국서 재배한 쌀을 미국공장에서 도정한다. 일본 제품은 JFC, 니시모토, 뮤추얼 트레이딩 등 일본 회사들이 공급한다. 일본 제품을 많이 팔아줄수록 그들의 매출을 올려주는 셈이다.
■현황
식품업계에 따르면 한국 전통식품인 간장, 참기름을 일본 브랜드가 압도하고 있다. 조미료와 두부, 카레 등 반조리 식품, 어묵 등 가공 수산물, 그리고 소스 등도 저펜 파워가 막강하다. 최근엔 ‘나또’라고 하는 일본식 청국장과 우롱티, 일부 탄산음료도 수요가 크게 늘었다.
간장시장은 샘표, 삼양, 몽고, 해찬들, 수복, 신송 등 한국산 브랜드를 제치고 기꼬만, 야마사 등 불과 2가지의 일본산 브랜드가 약 70%를 장악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식당계에서 더 두드러져 한인 운영 식당 중 90% 이상이 일본산을 쓸 것이라는 게 업계 자체의 추정이다.
참기름 역시 가도야, 마루혼 등 일본산이 약 70%를 점유하는 가운데 수라상, 오뚜기, 맑은 샘이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특등, 오복 등 한국 브랜드가 나머지 시장을 나눠먹는 형국이다.
가다랭이맛 조미료인 혼다시도 조미료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다시다 등을 생산하는 CJ아메리카에 따르면 한국 브랜드는 요식업계에 ‘공짜로 줘도 안 쓰는’ 실정이다.
식품도매업체 관계자들은 JFC나 니시모토, 뮤추얼 트레이딩 등 대형 일본 업체들의 한인 시장 점유율이 30%가 넘어 가뜩이나 영세한 한인 도매업체들이 ‘텃밭’에서조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해태 아메리카’의 심진수 과장은 “일본산은 한국산 식품 수입이 활발하지 않던 80년대 이전부터 일본산이 자리 잡았다”며 “‘간장=기꼬만’으로 인식될 만큼 견고하게 쌓은 아성을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격은 간장의 경우 1리터 용기는 샘표가, 1갤런은 기꼬만이 약간 더 저렴하다. 이유는 기꼬만은 현지생산인 데 비해 샘표는 물류비용이 들기 때문. ‘샘표 아메리카’는 판로를 어느 정도 확보하는대로 미국에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할말은 있다” vs “그래도 한국 브랜드”
타운의 대표적 한식당 ‘조선갈비’는 고기 양념에 100% 기꼬만을 쓴다. 참기름도 100% 가도야다. 조선갈비 관계자는 “수년간 이 제품들을 써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바꾼다면 손님을 잃을 수도 있다”며 “요즘은 한국산이 워낙 잘 나오긴 하지만 맛이 생명인 식당의 입장에선 이미 정착된 맛을 고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죽향’이 쓰는 간장은 한국 브랜드와 일본 브랜드 비율이 7:3 정도다. 참기름은 100% 한국 브랜드. 기꼬만의 경우 5갤런씩 대형으로 팔아 가격이 싼 데도 이 식당이 한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하 마리아 사장은 “불고기, 떡갈비 양념을 만들 때 일본 간장은 향이 강해 한국 고유의 맛을 내기 어렵다”며 “전복죽에 쓰는 참기름도 일본 브랜드는 덜 고소해 한국 브랜드만 쓰고 있다”고 밝혔다.
남가주, 시애틀, 한국 등에 12개 체인을 운영하는 ‘북창동 순두부’는 히노이찌 두부를 쓰고, 간장은 일본산이 70%, 한국산이 30%이다. 이기평 매니저는 “맛은 비슷하지만 대량으로 끓였을 때 부서짐이 덜하고 질이 유지되는 장점이 있어 히노이찌를 쓰고 있다”며 “순두부가 한식의 대표주자로 커가고 있어 한국 브랜드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고객 만족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인 마켓들이 기꼬만, 가도야 등의 세일을 많이 해 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에 대해 ‘플라자마켓’의 케빈 박 매니저는 “한인 시장의 규모를 아는 일본 도매업체들이 공격적 마케팅을 펴는데다 마켓 입장에선 소비자 인지도가 높은 제품으로 손님을 끌 수밖에 없다”며 “전보다 한국 브랜드의 가짓수가 급증하고 있으나 소비자들의 입맛을 하루아침에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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