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논란이 많았던 ‘북한 인권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였다. 하원과의 조정을 거친 후 대통령이 서명하면 내년부터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중요한 법안으로 발효하게 된다. 향후 남북 및 북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미국 및 한국 내 기독교를 비롯한 보수적인 그룹에서는 인권법 통과를 강력히 지원한 반면, 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진보적인 그룹에서는 침묵 내지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물론 북한에서는 외세에 의한 내정간섭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탄압과 탈북자들의 비참한 상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유엔이나 유럽연합을 비롯 많은 인권단체들이 이 문제를 자주 거론해 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상원에서의 만장일치 통과에서도 보였듯이 북한의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과연 인권법안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유도하는데 효과적인가 하는 점에 있다. 북한이나 진보진영에서 반발하는 것은 인권법 통과에는 미국의 복선, 즉 북한 체제의 붕괴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으며 한반도의 긴장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인권법안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국제적으로 공식화하고 탈북자 지원 등을 구체화 할 수 있는 포괄적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인권법안에 명시된 중국 내 탈북자 상황에 대한 면밀한 조사나, 탈북자들의 미국 난민이나 망명지위 허용 등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인권법안의 시행이 북한 내 인권상황을 개선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나 남북 및 북미관계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불행히도 이 질문에 대해선 상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즉각적인 반발은 제외하고라도, 앞으로 미국의 대북 협상에 있어 인권문제는 단골메뉴가 되어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압력에 대해 북한정부가 인권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주민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 인권법의 최대 피해자는 북한 주민이 될 수 있다. 전환점에 서 있는 한미관계 역시 더욱더 어렵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침묵은 인권법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고, 소위 ‘자주파’의 입장에서 보면 인권법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의 내정을 간섭하는 냉혹한 국제현실의 단면일 뿐이다.
한국정부나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에서는 인권법안의 시행 과정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정부입장에서는 단순히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제는 북한 인권문제 거론을 피할 수도 없게 되었고, 정부의 분명한 입장표명과 함께 필요하다면 미국과 입장 조율도 해야 한다. 인권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중국 내 수많은 탈북자들이 당장 미국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의 망명이나 이주는 상징적인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고, 대부분은 한국의 몫이될 가능성이 많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상원에서의 만장일치 통과에서 보였듯이, 미국 지도층에서 북한을 보는 기본 시각에는 공화든 민주든 큰 차이가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북미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듯이 기대하는 것은 큰 잘못이며, 북한 내 인권문제는 중요한 이슈로 남을 것이다.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 또한 탈북자 문제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상당한 재정적인 지원을 받게 됨에 따라, 커뮤니티 내에 유사 단체들이 우후 죽순처럼 생겨 비생산적인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만일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이 실현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될 때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어려움과 고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언어와 문화가 생소한 미국에 온 탈북자들의 삶이 어떨지 상상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진정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탈북자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특히 이들의 미국 행이 이루어진다면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결국 우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사회학/국제학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