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중순이었다. 농사의 기본도 모르는 내가 모종삽을 들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우리 집 뒷마당엔 시아버지가 일구어 놓으신 서너 평 남짓한 텃밭이 있다. 지금은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 있을 뿐이다. 긴 옷을 입고도 뜰에 나가면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모기의 집중공격을 받다보니 텃밭을 가꾸는 일엔 애당초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느 집사님 댁의 밭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한 달 전이다. L집사님 댁엘 갔었다. 그 부부는 자영업을 하고 있어 개인적인 시간의 여유가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마당 한 모퉁이에 텃밭을 만들어 미나리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채소가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주 엿새를 일하며 일요일엔 교회에 출석하고 언제 밭을 가꾸느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기만 한다. 그 날도 1부 예배를 마치고 저녁에 있을 구역예배의 친교음식을 위해 두 분이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산에 올라가 고사리와 취나물, 두릅을 뜯어다가 밭에서 난 미나리와 함께 정성스런 상을 차렸다. 고국에선 시골에서나 먹을 수 있는 산나물이 이곳 산엔 지천으로 널려 있다. 식탁에 둘러선 여자들은 집사님부부의 지극정성에 놀라면서 “우린 안 먹고 말지 그렇게 까진 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산에 가봐야 무엇이 산나물이고 독초인지를 구별할 수 없으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산나물과 미나리의 독특한 향만큼이나 진한 사랑의 향기를 물씬 맡고 왔다. 그 날 이후, 산나물 채취는 가당치 않더라도 수확의 기쁨만은 체험해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마음속에 싹텄다. 오랜만에 생명력 있는 땅의 흙냄새를 맡고 싶었다. 어머니의 아늑한 품속 같은 흙, 각기 다른 성품의 자식들을 정성껏 키워 결실을 맺게 한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하리라.
나는 먼저 모종삽으로 잡초를 뽑고 돌멩이를 골라냈다. 쭈그리고 앉아 처음 해보는 밭일이다. 손에 익숙지 않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호미도 아닌 모종삽으로 힘껏 잡초를 캐냈다. 텃밭의 일부만 가꾸었다. 손바닥만하다. 텃밭이라기보다는 조그만 화단을 가꾼다고 해야 옳았다. 요령 없이 한 탓에 손목이 아팠다. 어느새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농부의 땀방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텃밭의 반 이상을 버려두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흙을 뒤엎어 고르고 씨앗을 뿌렸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물주기와 잡초 뽑기를 해줘야 하리라.
몇 해 전, 지금은 홀로 되신 연로한 시아버지를 막내며느리인 내가 모시고 살았다. 아버님은 소일삼아 텃밭을 일구어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곤 하셨다. 어느 이른 봄날, 씨를 뿌려 얼마만큼 가꾸어 놓고 고국에 사는 시숙과 시누이 집을 다니러 가셨다. 나머지는 남편과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는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각자의 일로 서로 바쁘다. 집안일은 주로 내가 하고, 남편은 바깥일을 도맡아하는데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잔디를 깎는 일부터 시작해 잔디밭에 물주기, 잡초 죽이기, 나뭇가지 쳐주기, 낙엽 긁기 등 할 일이 부지기수다. 특히 잔디가 쑥쑥 자라는 여름철엔 하루걸러 운동장만한 뒷마당의 잔디를 1시간 30분이나 걸려 깎아야 한다. 그러면서 남편은 골프와 테니스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느라 밭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련데 어느 날 밭에 나가보고 아연실색했다. 토끼가 제집 마냥 들락날락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잡풀은 채소와 같은 키로 자라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남편이 잡초라고 뽑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쓸데없는 것은 애지중지 키우고, 진짜배기는 몽땅 뽑아버린 것이다. 그해 농사(?)는 망치고 말았다. 우리의 삶에서도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고, 버려야 할 것을 지니고 사는 건 아닌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때 농사를 지으셨던 시아버지는 농사꾼답게 여러 종류의 채소를 쉽게 재배하셨다. 정원에서 깎아낸 잔디를 썩혀 거름을 만들어 영양분을 주기도 하고,동네의 자잘한 나뭇가지란 가지는 다 주워와 한나절 앉아서 뚝딱뚝딱하면 야생토끼나 기타 짐승들로부터 보호할 근사한 울타리가 쳐진다. 그 안에선 상추,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 배추, 근대, 깻잎, 부추 등의 채소들이 싱그럽게 자라 거름냄새가 바람에 솔솔 날리는 한 여름날의 우리 집 뒷마당은 시골 밭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육군 장교출신인 친정아버지는 땅을 갈아 씨를 뿌리셨는데 씨앗에 군기를 넣었는지 자란 상추를 보니 연병장에서 사열을 받기위해 정렬한 군인의 모습과 흡사했다. 친정아버지가 심으신 푸성귀는 기개와 절도가 있어 보였다. 그에 반해 밭일에는 순전히 왕초보인 내가 뿌린 씨에서도 싹이 나고 자라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얼마 후, 밭에 나가 보았다. 신기하게도 연초록의 싹이 돋아나 있지 않은가. 가슴이 벅찼다. 남들이 씨를 부려 싹이 나올 땐 당연하게 여겼으나, 실제로 체험해보니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동안 나름대로 정성들여 가꾸었다. 비록 한쪽으로 쏠려 듬성듬성 나오긴 했으나 싹을 틔운 것이다. 모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손으로 흙을 만지며 씨를 뿌려 가꿔보니 신비로운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머나먼 고향의 흙냄새가 온몸에 배어들었다.
오정자
약 력
제4회 재외동포문학상 입상
미주문협 회원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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