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우리가 고전을 읽고 되새기는 것은 단순한 복고주의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고전이 바로 ‘지금 여기’ 현재의 삶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전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읽히는 것이다.
현재진행형으로 고전을 읽는 것은 고전을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이야기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흔히 지금까지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가히 스승이 될 수 있다로 해석을 해왔다. 그러나, 그 구절의 해석은 다르게 되어야 한다. 온고(溫故)하여 지신(知新)한다고 할 때의 신(新)은 새롭게 대두된 새 것이 아니라 ‘옛 것을 익히게 되는 가운데 옛것으로부터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다. 知新을 이렇게 해석할 때, 知新은 바로 현재진행형 해석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야 한다: 옛 것을 익혀서 새로이 알면, 그것으로써 스승을 삼을 수 있다.
스승이 되는 주체는 익히고 아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옛 것을 익히고 새롭게 이해하게 될 때, 그 옛 것을 우리가 스승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자기보다 몇 백년 앞서 산 주공(周公)을 그리워하며 스승으로 삼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승은 비록 앞서 산 옛사람이지만, 스승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인생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다. 스승은 단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전해 주는 이가 아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해석하면서 그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것도 현재의 삶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가르침을 고전이 전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은 한 두 번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비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고전은 진지하게 온고(溫故)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재해석되어 그 의미가 되살아나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탐구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 그렇게 재해석된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미래를 전망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고전의 해석도 그러한 것이다.
고전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해석할 때, 또한 우리는 고전을 새롭게 아는 지신(知新)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창신(創新)’의 시사점도 얻을 수 있다. 조선조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옛 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원리를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 것을 본받으려는 자는 옛날의 자취에 구애되는 병폐가 있고, 새 것을 만들어내는 자는 법도가 없는 것이 폐단이다. 진실로 옛 것을 본받되 변통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내되 법도가 있다면, 오늘날의 글이 옛날의 글과 같을 수 있으리라.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듯 천박한 글이 난무하는 오늘날, 연암의 이 말은 글쓰는 이라면 깊이 되새겨 봄직하다.
한편, 현대해석학에서도 고전 텍스트가 악보라면 재해석은 연주와 같은 창조행위라고 말한다. 그런데, 연주를 위해서는 악보의 보표의 의미가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나, 악보의 의미만 파악하는 것으로는 악보가 아무 소용이 없다. 악보가 악보로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은 연주자의 연주를 통해서이다. 연주를 위해서는 살아있는 현재의 소리로 재생해야 한다.
이러한 살아있는 소리로의 재생이 바로 고전의 현재진행형 해석이다.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은 악보를 연주해 내는 것과 같이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현재진행형으로 고전을 해석하는 작업은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들의 생생한 삶의 현실이 된다.
그러므로, 고전은 고정된 옛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여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변주해줄 연주자를 기다리는 악보인 것이다. 그러한 연주를 함께 듣고 알아줄 벗, 지음(知音)은 어디에 있을까? 아아, 그리운 벗, 지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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