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랑하기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여정이 너무나 메마르고 바빴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꽃을 보고도 별로 좋은 줄 몰랐고 사무실에 놓여 있는 화초도 보는 둥 마는 둥 그저 액세서리 정도로 놓인 채 사랑하는 마음이란 전연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밸런타인 데이에 그 수많은 연인들이 주고받는 꽃 한 송이. 나는 그저 계면쩍은 생각만 들어 나의 아내에게 선물 한번 못하고 그저 마음의 꽃만 보내곤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의 아내는 내 마음의 꽃을 소중히 받아 간직하는 것 같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바쁜 생활의 연속이 꼭 풍요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게으름을 부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보자는 것이다.
요즈음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주5일 근무로 또 이따금 연휴가 끼어 하고 싶은 일 다하고 가고 싶은데 다 가고 정말 좋은 세상이 된 것 같다. 60년대, 70년대의 한국의 경제 개발시기에 무역업계에 종사했던 젊은이들은 어디 제대로 휴가 한 번 가보았는가. 지금은 여당 내에도 노조가 형성되었다니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의 직장생활은 너무나 대조적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꽃은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가을을 좋아해서인지 코스모스를 좋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옅은 분홍색의 코스모스가 쓰러질 듯 넘어질 듯 휘청거리는 그 모습이 보기가 좋다.
그것도 해변 따라 인천에서 수원 쪽으로 조그만 기차길 따라 조그만 시골 마을 조용히 피어 있었던 그 꽃이 잊을 수 없는 나의 귀중한 추억이다. 지금도 옛사람은 찾아볼 수 없겠지만 그 꽃은 변함없이 피어 나를 부르듯 가을바람에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느 땐가 꽃을 좋아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이 텅 비었을 때 더욱 사랑하는 것 같다. 요즈음은 날마다 시력이 나빠져 간다. 돋보기를 쓰고 컴퓨터나 책을 보면 더욱 잘 보이질 않는다. 한 눈을 가리고 시력이 없는 눈으로 내가 활동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해 본다.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옆에 있는 아내에게 여보 내 한눈 수술하게 되면 나는 한쪽 눈 가지고 활동을 할 수가 없어 그 때는 내 옆에 당신이 있어 주겠지? 아 걱정마슈 하는 농담 섞인 아내의 말을 들으며 아 옛날 육군소위 기백은 다 어디로 갔나 중얼거리며 이름도 모르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딸이 보내준 한아름의 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딸이 결혼을 몇 달 앞두고 꽃 한 다발을 보내왔다. 꽃을 받은 나의 아내는 정말 기쁜 모양이다.
어머니날도 훨씬 지났는데 웬 꽃인가. 처음에는 수신자도 발신자도 알 수가 없었다. 포장을 뜯어본 후에야 알았다.
예쁜 색깔의 꽃을 잘 정리하여 화병에 넣어 탁자 위에 며칠 놓고 보고 또 보고하였다.사실 말은 하지 않지만 아내는 “고맙다 딸아 네가 벌써 어른이 되어 시집갈 때가 됐구나 꽃도 이렇게 엄마에게 보내어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해주니 말이다. 나는 너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하는 눈치였다. 눈치 챈 나는 같이 있어주고 말동무되어 준 것이 해준 것이지 하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꽃은 사랑과 기쁨을 전한다고 한다. 꽃은 사랑 고백, 축하 인사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담은 선물이다. 꽃에 얽힌 전설은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런 전설을 떠나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탁자 위에 정돈 된 꽃을 바라보면서 그 꽃에서 나오는 애정 사랑으로 우리의 관계를 더욱 끈끈해지게 하고 마음을 나누자고 중얼거린다. 늘 희망 사항이지만 잠자리에 들어가 푹 단잠을 자고 나면 새벽이 됐으면 한다. 그러나 자다 깨고 꿈꾸다 깨고 서너 번씩 이방 저방 옮기다 보면 잠을 설친다. 그러다가 한 밤중에 탁자 위 아름답게 놓여 있는 꽃을 보게 된다. 정말 예쁘다.
새벽에 피어 있는 꽃은 보기도 좋다.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이 어떤 계기에 뚜렷해지고 멋있어 보이고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한 번쯤은 인생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유명해 지는 것도 싫지 않은데… 언제 그런 날이 올 것인가 늦었지 늦었어.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사무실에 놓여 있는 화초는 물 한번 주지 않아도 시퍼렇게 잘도 자란다. 무슨 화초인지 이름도 모른다. 물을 주지 않으면 며칠만 지나도 말라죽는 것이 자연법칙인데…
사실은 내가 물을 안 주었지 나의 사무실에 같이 있는 동료 K씨가 정성껏 물을 주기에 죽지 않고 새파랗게 원기 있게 자라는 것이다. 이 단순한 법칙을 깨닫고 역시 내가 살았다는 것은 내 힘만으로 산 것이 아니고 그 누가 나를 살게 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꽃을 바라보고 또 나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또 이 꽃을 통해서 이웃에 사랑을 나누며 나의 존재는 남의 존재를 인정할 때 솟아오르는 진리도 발견한다.
백인호
▲한국수필 등단
▲미주수필 문학가협회 이사
▲미주크리스찬 문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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