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는 3,550만 명이 산다. 주별 2위인 텍사스보다 1,340만 명, 3위인 뉴욕보다 1,630만 명이 더 많으며, 4위 플로리다보다는 2배가 넘어 인구수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정치인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에 후하다. 1억3,240만 달러를 기부해 전국 선두를 달린다. 뉴욕이 9,660만 달러, 워싱턴DC가 9,140만 달러, 텍사스가 7,570만 달러를 각각 기부했지만 캘리포니아에는 어림도 없다.
캘리포니아에 배정된 대통령 선거인단 수는 55명이다. 텍사스 34명, 뉴욕 31명, 플로리다 27명을 제치고 최대이다. 백악관을 노리는 정치인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경제 규모에서도 캘리포니아는 압권이다. 국내총생산 순위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다음이 바로 캘리포니아이다. 국가가 아니지만 경제로만 따지면 “웬만한 나라는 저리 가라”이다.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 일자리에서도 캘리포니아는 맨 앞자리를 고수한다. 90만 개로 전국 2위인 텍사스보다 60만 개가 많아 명실상부한 ‘미국의 굴뚝‘이다. 농업에서도 양보를 하지 않는다. 이 분야의 규모는 261억 달러이다. 2위 텍사스와 3위 아이오와를 합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2000년 센서스와 연방선거위원회 자료를 보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런데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고 있는 캘리포니아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대통령 배출 통계가 그것이다. 캘리포니아 요바린다에서 태어나 1968년 대권을 거머쥔 닉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얼마 전 타계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지만 일리노이 출신이므로 엄밀히 말해 캘리포니아 출신 대통령엔 결격이다.
‘대통령 제조공장’은 8명을 배출한 버지니아이다. 오하이오가 7명으로 바짝 추격한다. 그 다음이 각각 4명을 기록한 매사추세츠와 뉴욕이다.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버몬트도 저마다 2명을 냈다고 자랑한다. 캘리포니아의 체면이 확 구겨지는 대목이다.
‘정치 1번지’인 동부와 멀고, 주민의 인종구성이 모래알처럼 다양해 응집력이 약하며, 임기제한 규정으로 정치인이 전국적 인물로 인식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이유이다. 게다가 현재 슈워제네거 주지사가 미국출생 제한규정에 묶여 있고 연방상원의원 2명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상당기간 캘리포니아 출신 대통령은 기대난망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속상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른 주들에 꿀릴 게 없으니 굳이 캘리포니아 출신을 백악관 주인 만들려고 골치 썩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다고 해서 깔보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인사회는 다르다. 정치 무기력증에 덤덤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주 의회는 고사하고 한인들이 많이 사는 LA, 풀러튼, 다이아몬드바, 가든그로브 등지에 시의원이 단 한 명 없다. 주 의회 의원 4명, LA카운티 내 13명의 시의원을 갖고 있는 중국 커뮤니티에 견주면 어깨가 축 쳐진다. 막강한 교육위원도 어바인에 1명뿐이다. 교육위원장 2명 교육위원 7명인 중국계에는 비교도 안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분야에서 짱짱한 것도 아니다. 미국 내 아시안 가운데 한인 수는 중국, 필리핀, 인도, 베트남 계에 이어 5위에 불과하다. 잘사는 줄 알고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LA 카운티 내 가구 당 중간 소득이 필리핀, 중국, 베트남 계에 뒤쳐져 있다.
객관적인 조건이나 상황으로는 내세울만한 게 드물다.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해도 여유 있는 캘리포니아와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이민자인 우리는 정치력 신장 없이는 다른 부분의 성장도 천장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자질 부족한 후보, 제 기능 못하는 단체들, 범 커뮤니티 지원체계 결여 등으로 정치 무력증을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철벽 장애물은 무관심이다.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가 ‘관심의 불꽃’에서 역설했듯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세상사의 시작이다. 용광로 쇳물처럼 뜨거운, 한국정치에 대한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사는 곳에 쏟아 붓자. 분명 한인사회 정치력이 매섭게 달아오를 것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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