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보안법상 반국가 단체에서 북한을 제외시킬 방침이다. 북에서 밀파된 간첩이 민주화 공로자로 기림을 받는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간첩죄로 복역했던 사람들이 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초 예상은 이랬다. 길어보았자 5∼6년이다. 그 이상을 넘기기 힘들다. 온실서 자란 그다. 군부를 통제할 수 없다. 과도기에 명목상의 지도자다. 그 체제라는 것도 그렇다. 도대체 얼마나 갈까. 소련이, 동구가 무너진 상황이니.
10년 전 이 무렵의 예측이다. ‘김일성 사망’- 이 보도가 나온 후 쏟아진 전망들이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나. 이 말이 무색해졌다. 김정일이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어서다.
건재 정도가 아니다. 군림하는 느낌마저 준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듯’ ‘위원장 동지’의 오심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분위기이니 말 이다.
열린 우리당이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현실화하기 위해 구체적 추진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에게도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별로 싫어하는 눈치도 아니다. ‘위원장’의 답방 성사를 위해서는 물고 싸우던 여·야가 하나가 된 모습이다.
경제는 진작 결단났다. 거기다가 잇단 천재지변이다. 가뭄에, 홍수에…. 아무래도 하늘이 노한 것 같다.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 최소 수십만이라고 했다. 최대 300만이 넘는다는 보고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멀쩡히 굶겨 죽였다.
국가 원로라는 사람들이 계속 사망했다. 최소한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이 망명을 했다. 김정일의 전처 등 측근의 탈출이 줄을 이었다. 수십만 명이 단지 먹을 걸 찾아 국경을 넘었다. 그러면서 10년 넘어 핵 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국가적 불행이다. 20세기도 지나, 21세기에, 그것도 평화시에 수백만 주민이 굶어죽고, 탈출하다 맞아죽는다. 전시에도 그런 유례가 없다. 그 와중에 3대로 이어지는 권력세습이 거론된다. 3남이 유력하다. 아니다. 그래도 장남이다. 별별 소문이 나돈다. 그래도 국가 꼴이 유지되고. 권력승계가 운위되다니. 가위 초현실적 상황이다.
김정일이 웃고 있다. 타임지의 결론이다. 김일성 사망 10년을 맞은 해. 2004년은 어쩌면 김정일로서는 왕운(旺運)의 해 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의 언론은 북한의 경제개혁에만 초점을 맞춘다. 인권문제니 탈북자의 참상 같은 건 아예 관심 밖이다. 초·중·고 교육은 전교조가 장악했다. 그리고 이런 식 통일교육을 하고 있다. 남과 북은 로미오와 줄리엣. 그들은 강을 맞대고 살고 있다. 그들의 결혼을 악한 용이 가로막고 있다. 강은 DMZ다. 악한 용은 미국이고….
상황은 김정일 체제 유지에 절대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좌향좌로 방향을 튼 한국의 정치, 사회 분위기. 거기에다가 한미동맹은 점차 금이 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김정일은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고 한국의 우파는 탄식만 하고 있다는 타임의 보도다.
그 왕운은 그러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2005년이 그 갈림길이 될 수 있다. 10년을 끌어온 핵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되어야 할 시점이 바로 2005년이다. 때문에 제기되는 관측이다.
이라크 전쟁은 어린애 장난이다. 한반도에서 있을 수 있는 상황과 비유한 말이다. 미국은 그만큼 북한 핵 위기를 심각히 보고 있는 것이다. 공화·민주당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근본적으로 같은 시각이니까.
북한 핵 문제는 그러므로 11월 대선 이후 초미의, ‘넘버 1’ 아젠다로 급부상할 수밖에 없다. 부시가 재선되면 강공 드라이브의 연속이다. 더 이상 선거를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까. 전쟁을 불사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케리가 당선됐을 때 상황은 더 꼬일 수도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수도 있어서다.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장악한다는 계산이다. 이 경우 케리도 결국은 부시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1994년 핵 위기 시 북한 공격을 준비했던 클린턴은 민주당이었다.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005년은 전쟁으로 가느냐, 아니냐. 미국으로서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중요 갈림길이 되는 해가 된다는 관측이다. 왜 그러면 2005년인가. ‘인계철선’ 역할을 해온 주한 미지상군 주 병력의 철수가 완료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얼굴에서 미소 사라지다.” 2005년 어느 시점. 타임지 커버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되지 않을까.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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