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늦둥이로 딸과 아들을 두게된 우리 부부는 뒤늦게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더군다나 이민 초기에 아이들이 어렸었기에 조심스럽게 싸준 도시락에 의해 툭하면 선생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음식마다 팻이 많아서 노티스를 보낸 것이다.
그러잖아도 한국음식과는 차이가 많은 미국 음식에서 행여나 하고 골고루 챙겼는데도 말이다. 아마 사립인 크리스천 스쿨이라 더 관심을 많이 베풀어준 모양인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이 커가던 어느 날 기대로 가득한 딸애의 생일이 돌아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엄마 아빠가 곱게 싸 주던 선물을 받고 땡큐하며 좋아하던 딸이었다. 그런데 좀 머리가 컸다고 해서 이번에는 선택권을 발휘하여 이미테션이 아닌 살아 있는 강아지를 선물로 달라는 주문이 온 것이다. 그래 할머니, 엄마, 아빠가 상의 끝에 만장일치로 예쁜 강아지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열심히 사는 우리에게 부러울 것은 없었지만 크게 부담스런 값비싼 돈을 투자하여 사주는 건 사치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한국 집에서 강아지를 판다기에 LA를 단숨에 찾아가 부담 없는 쌈직하고 백불 남짓한 예쁜 강아지를 안고 오게 됐다. 아이들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고는 발길이 왜 그리 빨랐던지 아마 80마일은 족히 달렸으리라. 상상외로 딸은 기뻐 함성을 지르며 반겨주었다. 치와와 종류였고 암놈이라 티나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우유로 시작해서 마치 아이 하나를 더 낳아 기르는 셈이며 여섯 식구가 되었다. 다행히 아이들과 함께 몇 달 잘 자라주던 어느 날 갑자기 감기에 걸린 티나… 밤새도록 열이 오르고 기침을 하며 가래가 사람 이상으로 끓고 숨이 턱에 찼다. 그 옆에 이불을 펴고 딸아이는 간호를 했고 남편은 딸 옆에서 덩달아 밤새워 500개 넘는 티슈 한 통을 비워가며 가래를 받아내는 것이다. 부모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어느 효자의 갸륵한 모습도 스쳐갔다. 날이 밝자 수북히 쌓인 휴지 옆에 해쓱해진 티나는 보기에 퍽 안쓰러웠다.
그러나 아직 이른 시각이라 병원 문 열기를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되어 달려간 수의병원에선 입원시키라 했고 희망적임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었다. 실망할 아이들의 마음을 읽었던지 그 방법을 사용한 수의의 말이 고마웠고 그의 재치에 우리는 따르기로 했다. 아직 죽음에 대하여 깨닫지 못할 어린 아이들에게 실의와 좌절을 건네주기는 싫었던 까닭이었다. 그 이튿날 수의에게서 티나의 명을 거뒀다는 슬픈 말이 전해 왔다. 다시 할머니와 상의 끝에 우리 부부는 차마 그 말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가 없어 다른 방법론을 찾기로 했다. 그것은 가장 아끼고 좋아하던 티나의 죽음에 대한 충격을 넣어주기가 싫었기 때문이며 수의 말을 믿고 매일매일 손을 꼽고 기다리는 아이들을 실망시키기는 더욱 싫었던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미국 신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라고 했었고 그것도 안 통한다던 아이들 아빠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하여서는 거짓말을 하던 기억이 좀처럼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하루의 일을 제치고 패사디나 등등 온 하루해가 다 가도록 함께 누비며 찾아봐도 강아지는 많으나 같은 종류 같은 색깔의 강아지는 그렇고 비슷한 종류마저 찾지 못했다. 땅거미 지도록 두 어깨가 축 쳐진 우리는 시어머님 그리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터덜터덜 맥없이 돌아왔다. 그래도 이실직고를 못하고 아이들이 묻는 대답에 좀더 기다려야 완쾌한다더라 라는 3차 4차… 선의의 거짓말을 해놓고 그 이상 이하도 더할 말이 없었다.
다음날 가게에 교회 친구가 강아지를 들고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놀랍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해 웬 강아지냐고 하니까 기르고 싶으면 기르라며 내게 안겨주는 것이다. 얼떨결에 그 놈을 받아 안은 채 요즈음 벌어지고 있던 피치 못할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은 티나는 암놈이었는데 내 품에 안긴 새로운 것은 수놈이었다. 예쁜 모양새는 비슷했지만 색깔이 죽은 티나는 갈색이었고 새로운 놈은 약간 갈회색이었다. 어찌됐던 기뻐 땡큐를 연발하며 한턱 내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안고 집에 온 나는 티나가 퇴원했다고 끝까지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했다. 아이들의 기다림 끝에 함성은 온 집안을 순식간 기쁨으로 사로잡아 버렸다.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치료받느냐고 애먹어 사이즈가 좀 작아졌다고 했고, 아픈 통에 시달려 색깔도 변했다고 하는 나의 변명까지도 쉽게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남자를 여자로 알고 있었다는 것도 수의가 말해 주었다고 했다. 마침 아이들이 강아지의 남녀를 구별 못하고 있었기에 그 말이 통했으며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 것이다. 나 역시 다 크도록 그것을 몰랐었던 옛날이 스쳐갔기에 말이다. 그 후의 일도 반가움 속에서 일사부조리로 진행되어 아이들이 확실하게 믿고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수의, 어머니, 우리 부부, 네 사람의 모의는 일단락 재치 있게 선의로 끝이 나고 이름을 다시 지어주자고 하여 샘이라고 불렀다. 아직도 ‘샘’이를 13년이 되도록 사랑하던 죽은 티나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 순박할 뿐이다.
그런데 재롱을 떨며 잘 있던 샘이 지난해 겨울 내가 서울에 외출했을 때 신장관계로 입원을 했다는 충격적인 전화를 딸로부터 받았다. 일 관계로 바로 오지 못하고 달반 정도 후에 도착해 보니 이미 퇴원해 집에 있었지만 수의 지시에 의해 열심히 약을 복용시키는 중이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관계라도 맺어진 인연이란 이렇게 정이 들게 마련이며 우리 집에 와서 평생 노총각으로 뒤뜰에서 고작 충정 노릇만 한 것이 측은하기 그지없다. 아이 아빠는 경상도 토박인 데다 워낙 과묵하기로 정통이 난 사람이지만 정성만은 가이없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밤이면 오줌을 싸놓고 찜찜해 울면 기계처럼 일어나 도맡아 기저귀를 갈아주던 사람이다. 그 말없는 행동은 곧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 믿고 고마웠다. 내가 기프트 샵을 하고 있을 때도 다른 기프트샵 앞에서 아이들이 말 꺼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냥 지나치지를 않았다. 아이들의 입맛대로 따르는 사람이란 걸 아는 나는 사랑이 앞서기보다는 낭비하는 걸로 생각하고 가끔 그를 향해 투정을 했었다. 필요하면 집에 것으로 대처하라는 나의 좁은 견해였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게끔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듯 키우는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애완동물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섭리를 이미 스스로 받아들인 성숙된 딸아이가 된 것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처녀로써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가족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지구촌을 향해 다함께 사랑의 손길을 편다면 전쟁이 없을 것이련만… 샘의 완쾌를 수의는 뭐라 하드냐고 모르는 척하고 물어본 것이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땐가는 가는 거라고…
삶과 죽음에 대해 딸애의 대답의 끝말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맡겨진 나이를 계산하면 그것은 노환이라고 말해둔 거겠지! 티나의 명을 살아준 샘을 향해 빠른 회복을 바라는 온 가족의 치료의 손길은 쉬지 않는데…
▲재미시인협회 사무국장
▲국제 펜클럽 회원
▲한국문인협 회원
이별 뒤엔 대중탕으로 갔다
한 정
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비집고 들어앉은 그
곳에서 묵은 때 벗겨내듯 그리움 때를 벗겨내고
한쪽 벽에 시위하듯 서있는 샤워기를 잡아 비튼 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눈물 한 바가지와 슬픔을
토해낸다.
고열을 앓는 내 아픔들은 뜨거운 한증막에서 더
눈물을 흘리라고 명령하지만 함께 간 이별은 툴툴
털고 일어서 시계도 없는 탕 안을 잔인하게 등
돌리고 나선다.
저울에 단 아픔 그램을 빼고 시퍼렇게 멍든 문신
같은 자국을
지우고 나니 잊으려던 우윳빛 그리움이 되 살아나
서둘러
조소하는 내
그 것들을 대중탕에 놓아두고 왔다.
▲해외문학협회 회원
▲미주시문학회 회원
▲시집「발가벗은 시인」
믿는 도끼
박영보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었을까. 믿음이 있을 때는 편안한 마음이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과 대할 때는 항상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대체로 사람들을 대할 때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 이외에는 섣불리 말을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소신 같은 것이 있다 고나 할까. 특히 비즈니스에 관련된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끼고 있기도 하다.
벌써 몇해전, 강원도 태백의 폐광지역에 카지노가 개설 할 때의 일이다. 나는 이 카지노 장에 보안감시 시스템을 설치하는 일에 참여하기 위해 일년 이상을 뛰어다녔다.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해야 했었고 두어 차례 태백지역의 현지 답사도 했었다. 관련된 업체를 방문하기 위해 뉴올리언스나 미시시피 지역을 포함하여 라스베가스에도 뻔질나게 다녀야 했었다. 보안감시 시스템에 관하여는 나름대로의 보고들은 풍월이 있어 강원 도지사 일행이 사업설명 차 방미를 했을 때 가지고 있는 약간의 지식을 바탕으로 애드바이스도 해준 일도 있었다. 라스베가스의 벨라지오 호텔에 자기 지신이 개발한 보안감시 시스템이 채택되어 전량의 공급 권을 받아내 개가를 올린 이십 년 지기 J사장의 자문과 기술적 뒷받침도 있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가는 듯 했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워커힐이나 인천의 올림포스 호텔 같은 데에 소규모 카지노가 몇 군데 있기는 했었지만 태백의 K랜드 정도 규모의 카지노에 대한 노하우가 없는 한국 측에서는 우리에게 매달리듯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이 분야의 도사가 돼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할 정도였었다. 아닌게 아니라 J사장은 이 분야에 있어 앞서가는 사람이기도 했고 이분의 경험과 지식이 나의 참여 의욕을 불타오르게 하였던 것 같다.
한국 쪽에서 미국 쪽의 우리 일을 맡아 입찰 준비를 해주기로 한 X씨는 우리가 한국에 갈 때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이른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어야할 시간까지 모든 일정은 그가 정해놓은 계획대로 움직여야 했다. 이 프로젝트 자체가 작지 않은 규모였고 우리의 한국방문도 이 일이 목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의 모든 일정도 그 일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우리를 마치 VIP를 대하듯 열성껏 뒷바라지를 해주기도 했다. 가끔은 우리의 개인적인 일에도 자기가 직접 운전을 하며 교통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현장에 가는 중에 명승지 같은 볼만한 곳에 잠깐씩 들려주기도 하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에게 접근해 오는 다른 경쟁업체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X씨를 단일 창구로 삼기로 하고 있는 것 없는 것 모든 자료를 모아 전해주곤 하였다. 한국에서의 입찰에 제출할 서류작성을 위한 제반 사양과 관련 자료로부터 프레센테이션을 위한 제반 준비까지도 해 주었고 입찰 날짜에 맞추어 가격을 정리하고 있었다.
X씨는 입찰을 며칠 남겨두고 품목별 가격과 납기에 대한 확인과 기타 기술적인 제휴문제를 매듭짓는다는 명분으로 다시 미국에 왔다. 우리는 전략상 각 품목에 대한 가격과 납기는 최종 입찰 날짜에 임박해서 알려 주기로 했었다. 이것은 사전에 X씨와도 합의된 사항이었다. 가격과 납기 등의 중요한 자료를 미리 노출시킨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요한 정보가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한 부서의 직원이라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가 그를 믿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속된 표현으로 우리는 순진하게도 ‘X씨는 우리와 한통속’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나 큰 결과를 초래하게된 실수가 될 줄이야.
우리는 X씨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밤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에서 가격표를 전해 주었다. 사전에 계획된 X씨의 배신은 일년이 넘도록 뜀박질하며 흥분 속에서 입찰의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와 J사장을 ‘닭 쫓던 개’꼴로 만들어 놓고 만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가져다 준 결과이기도 했다.
실수이기도 했다. X씨는 나에게서 받은 수십 개에 달하는 품목에 대한 가격표를 건네 받은 즉시 호텔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를 통하여 우리의 경쟁업체에게 일일이 불러줬던 것이다. 그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노릇이었다. X씨는 우리에게 상당한 액수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면서 이것을 우리를 낚는 미끼로 삼아 농락했던 것이다. 우리는 ‘나중에 K랜드의 VIP 카드도 해주고 왕처럼 모시겠다’는 그의 말에 솔깃해하며 간까지 꺼내 바칠 사람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어리석었던 우리들 자신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고 말았던 일이 떠오른다.
우리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만사를 제쳐놓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그와 함께 행동을 하게 된 것은 그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우리가 또 다른 유사(경쟁) 업체와 만나는 것을 막게 하려는 의도에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당시 K랜드의 모든 임직원들은 카지노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하여 모든 일을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입장이고 모든 의사 결정도 자기가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었다.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가 주관하여 설립되는 대규모 업체 같은데서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데 X씨라는 사람 하나의 행동이나 말재간에 목을 걸고 있을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전수(?) 받은 얄팍한 카지노 지식으로 큰소리 치고 다니는 것이 용납되는 것이 당시 K랜드 쪽의 입장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는 현재 이 지식을 밑천으로 하여 K랜드에 간부급으로 입사하여 중책을 맞고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그는 무슨 술책으로 관련업체나 사람들을 만나며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법적으로 문제를 삼아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잘먹고 잘 살아라’라며 돌아서야 했던 일. 상당한 시간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개운치가 않은 마음으로 맴돌고 있다. 쉽게 믿고 쉽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과연 실수였을까. 그는 우리의 경쟁업체로부터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간 현재 얼마나 흡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는 지금도 자기의 개인적 유익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뛰고 있을 것이다. 그 부지런의 일부를 공익을 위하고 자기 가정의 순수한 행복을 위해 나누어 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일년 여 동안 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오며 농락을 당하고 만 나는 지금 그의 행운과 건투를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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