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풀하우스’ 주연…카멜레온처럼 변시 매력적
▲ 결혼요? 30 넘어서 하고 싶어요. 평소 워낙 무뚝뚝한 편이라 절 이끌어줄 수 있는 여자면 좋겠어요.
얼굴을 가리는 큰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 꽉 끼는 붉은 색 조끼와 검정 바지를 차려 입었다. 일자로 접은 스카프를 목에 둘러 포인트를 줬다.
6일 인천시 옹진군 수기 해수욕장 앞바다에 자리한 풀하우스 세트장에서 가수 비는 예의 강인한 육체를 화려함으로 치장했다. 우리시대 새로운 문화 키워드의 하나인 ‘메트로섹슈얼’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신드롬 같은 걸 만들었다, 트렌드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만족한다는 비.
가수 박진영의 백 댄서에서 출발해 단숨에 정상을 밟은 스물 세 살의 청년 비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매력들이 한데 섞여 광휘를 발하는 존재다. 미소년 같은 해사한 얼굴과 섹시한 육체, 무대를 압도하는 폭발적인 춤 솜씨와 흠 잡을 것 없는 반듯한 태도가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엘비스 프레슬리나 제임스딘처럼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그런 비에게 새로운 미덕이 추가돼야 할지 모른다. 2003년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에서 뻔뻔한 제비족 ‘상두’를 얄미울 정도로 잘 소화해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던 그가 다시 연기에 도전한 까닭이다.
14일부터 방영되는 KBS 2TV 미니시리즈 ‘풀하우스’(극본 민효정 연출 표민수)에서 그는 거만함으로 무장한 아시아 최고의 배우 이영재 역을 맡았다. 영재는 싸가지 없고 돈이면 다 된다고 믿는 스타지만 한 여자에게 열정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고 사랑을 알아가는 인물이죠.
백수 제비족에서 하루아침에 재벌급으로 탈바꿈했다며 싱긋 웃어보이던 그는 연기력을 업그레이드 하려고 공부를 많이 했다며 금세 진지해진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욕심이 그의 말 군데군데서 묻어난다. 발음 교정을 하고 있어요. 배우와 가수의 발성은 완전히 틀린 데 몇 년간 가수의 발성법에 익숙해져 있어서요.
주변 사람들에게 비란 이름 대신 연기자일 때는 본명인 정지훈이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니 말해 뭘 할까. ‘상두야 학교 가자’ 할 때 정말 잠도 안 자고 죽도록 열심히 했어요. 하도 자주 넘기며 봐서 찢어져 버리길래 대본을 아예 3권씩 받았다니까요. 상대역을 맡은 송혜교의 촬영장에서 수시로 사라진다. 알고보니 조용한 데서 혼자 연기연습을 하더라는 증언도 이어졌다.
그러기에 ‘풀하우스’에 출연하는 비의 입장도 분명하다. 첨에 제안이 들어왔을 때 꼭 하려고 했어요. 전부터 표민수 PD의 ‘푸른 안개’ ‘고독’ 같은 작품을 보면서 감독님 작품에 출연해 보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상대역이 송혜교씨라서 더욱 그랬죠.
송혜교를 비롯한 다른 연기자들이 ‘풀하우스’ 출연의 변을 원작만화가 좋았던 것으로 돌린 반면, 비는 ‘연기학습론’을 거듭 폈다. 전 만화책 안 좋아해요. 책 읽는 걸 워낙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근래에 ‘풀하우스’ 만화를 3번이나 읽었어요. 만화에서 주인공인 라이더가 그랬듯 턱을 자주 괴거나 고개를 45도로 꺾어 쳐다보는 제스처를 선보일 거에요.
재벌집 자식도 거지도 제비족도 돼 볼 수 있는 연기의 매력에 빠져있다는 비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꿈꿨다. 언젠간 영화 ‘파이란’에서 최민식 선배가 선보인 건달이지만 풋풋한 사랑을 하는 슬픔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본업인 가수활동은? 비는 아직 젊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게 현재의 마음이다. 가수에 대한 꿈도 크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요. 저는 복 받은 거 같아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계속하면 지치기 마련인데 노래하다 질리면 연기 연습하고, 그러다 그것도 질리면 춤추면 되니까요.
그러나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는 법’. 얼마 전 일본에서 제 앨범이 나왔는데 반응이 좋다던데 ‘풀하우스’ 촬영 때문에 본격적으로 활동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태국ㆍ중국 로케이션 때문에 체중도 7㎏이나 빠졌고, 그래서 체력보충하려고 예전엔 시금치 같은 건 안 먹었는데 이젠 아무거나 다 먹어요.
촬영 틈틈이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의자를 이용해 운동을 한다는 비는 팬들이 보내준 건강 식품을 아버지와 함께 나눠 먹는다고 말해 사람들을 웃겼다.
비는 9월에는 새 앨범을 들고 가수로 팬들 곁을 찾을 예정이다. 저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노래도 잘해요.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배우도 있듯이 댄스가수라고 노래 못하는 게 아니죠.
뭐든 지 120%는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보이는 비는 30대엔 춤 안 추고 노래만 부르겠다고 했다. 발라드 가수는 무대 위에서 노래만 잘하고 내려가면 되는데 댄스 가수는 땀 흘리며 춤을 춰야 하거든요. 근데 전 땀 흘리는 거 정말 싫어해요.
한없이 어른스럽다가도 이내 아이 같은 미성숙함을 살짝 내비치는 비. 그래서 그는 매력의 복합체인 것일까?
슬픈 멜로 정통 표인수PD가 로맨틱코미디 도전
● 드라마 관람 포인트
‘4월의 키스’ 후속으로 14일부터 방영되는 KBS 2TV ‘풀하우스’는 같은 이름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16부작 미니시리즈.
1993년 첫 출간 당시부터 끊임없는 화제를 모아온 ‘풀하우스’(전 16권)는 만화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원수연 작가의 대표작이자 히트작이다. 영화배우 라이더 베이와 아빠가 물려준 풀하우스를 지키려는 엘리가 계약결혼을 하면서 사랑을 싹 틔워 간다는 게 줄거리.
드라마 ‘풀하우스’는 이런 만화의 기본 설정만을 남겨 둔 채 인물들의 느낌이나 사랑에 대한 방식을 70~80%는 다르게 꾸밀 계획이다. 연출을 맡은 표민수 PD는 ‘풀하우스’를 두고 ‘재창조’라는 단어를 썼다.
가수 비가 라이더 베이의 한국적 변형인 이영재 역을 송혜교가 엘리를 모델로 한 한지은 역을 맡았다. 이외에 탤런트 김성수가 지은을 놓고 영재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유민혁, 한은정이 영재를 사랑하는 여자 강혜원으로 나온다.
비의 두 번째 연기도전이라는 점 빼고 ‘풀하우스’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경쾌하고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를 표민수 PD가 연출 한다는 것. 작가 노희경과 손잡고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등의 슬픈 정통 멜로드라마를 만들며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그의 변신치고는 놀라운 대목이다.
“밝은 걸 밝게 표현해 보고 싶었고, 또 밝은 사람의 이면엔 무엇이 숨어 있는 지 알고 싶었어요.” 표 PD는 “올해 2월쯤 팬 미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찬반이 반반이었다. 그래서 ‘이 길을 나는 꼭 가봐야 한다. 결과가 잘못 되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송혜교가 엘리의 한국 버전인 한지은 역을 얼마나 잘 소화해 낼지도 관심거리. 한때 만화작가 원수연과 ‘풀하우스’의 팬들은 송혜교를 지은 역에 캐스팅 한 것은 잘못이라며 온라인 상에 항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만화 ‘풀하우스’에서 엘리에 대한 설정이 ‘키 170센티 몸무게는 태풍부는 날 약간 흔들릴 정도’로 돼있어 송혜교와는 이미지가 맞지 않다는 것.
이에 대해 송혜교는 “그렇다면 라이더 베이는 영국 사람인데 영국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 한 뒤 “원작은 원작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대성기자 loveli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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